잔생(殘生)

잔생 29

바라쿠다 2016. 12. 25. 19:32

" 밥 안 먹었지. "

" 응, 가다가 너랑 먹지 뭐. "

" 아냐, 여자랑 먹어. "

" 여자? "

속리산으로 가기로 한 날, 선배 승용차에 동승 했다.

규모있는 사업을 하는 터라, 힘 좋은 승용차를 끌고 다닌다.

" 그런게 있어, 봉천고개쪽으로 갑시다. "

" ..................... "

희정이와 같이 있고 싶어 별짓을 다 한다 싶다.

고개를 넘으니 등산복 차림의 그녀들이 보인다.

" 저기 세워요. "

등산 다닐 기회가 적었는지 신발이며 옷이 좀 그렇다.

미리 그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기에 후회가 되는 중이다.

조수석에서 내려 그 자리에 인아를 앉게 했다.

" 안녕하세요. "

" 네,반가워요. "

의외의 여자와 동행하게 된 선배는 기분이 좋아보이고, 인아 역시 그리 보인다.

첫만남이 어그러지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괜한 기우였지 싶다.

" 저년 입 찢어지는거 봐. "

" 어울려 보여 다행이다. "

귀 옆에 입을 가져와 속삭이는 희정이도 다행이다 싶었을게다.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니 가슴이 뻥 뚤린듯 시원하고 머리마저 상쾌하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자연과 가까이 해야 좋은 법이거늘, 태만스럽던 그간의 게으름이 후회스럽다.

 

속리산 초입의 사찰음식을 하는 곳에서 끼니를 때우고는 내쳐 위패가 모셔진 절에 도착했다.

미리 절에서 사무를 보는 보살님에게 부탁을 했기에 선배와 둘이서 볼일을 봐야 한다.

" 두시간쯤 걸릴거야, 산에서 바람이나 쐬고 와. "

" 알았어, 다녀 올께. "

희정이에게는 며칠전부터 간략하게 일러 뒀기에 그녀가 인아를 데리고 길을 잡는다.

남편까지 있는 유부녀가 쉽게 외박할수 없는지라 친구랑 놀러왔다는 증빙을 하기 위해 사진까지 찍는다고 했었다.

" 갑시다. "

" 그래. "

돌아가신 선배 어머니의 혼령을 위로하는 자리인지라, 준비 된 젯상에는 정성이 깃들어 있다.

나와 보살님의 가르침대로 예를 다해 추모하는 선배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조상님께 잘 해야 집안이 평안하고 하는 일이 술술 플리는 법이다.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 반박할수는 있겠으나, 나를 낳아주신 분들에게 바치는 효도라 보면 된다.

" 맘이 좀 편해지셨수? "

" 죄송하더라, 그렇게 이뻐해 주셨는데.. "

예전의 추억이 떠오르게 되면 당연히 우울한 맘이 들지만, 그건 돌아가신 분과의 교감이라 봐야 한다.

어떤 이는 대성통곡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만큼 맘이 후련해 지기에 자주 찾게 되는 것이다.

" 자고 갈거지? "

" 그러지 뭐. "

서울로 올라가도 되지만 기왕에 바람쐬러 왔으니, 이제부터는 그녀들의 기분을 맞춰줘야 하는 시간이다.

 

" 몇살이에요. "

" 인아씨보다 두살 많아요. "

궁금해 하는 인아에게 대신 답 해주는 이유야 그들이 친해지기 바라는 중매장이 비슷한 마음일게다.

초저녁에 시작된 술자리는 처음 만난 두사람의 탐색으로 인해 흥이 날수밖에 없다.

다들 이해하겠지만 둘이서 먹는 것보다야  넷이서 어울리면 그만큼 화기애애해 지는 법이다.

" 희정씨는 국진이 어디가 좋아요. "

" 음.. 이뻐요,사람이.. "

여자들과 어울리는걸 본 적 없는 선배는 솔로인 내 곁에 앉은 희정이의 됨됨이가 궁금했지 싶다.

" 잘 봤네요, 이름하고 같아요. "

" .................... "

" 꺼꾸로하면 진국이라구여,후후.. "

" 어머,호호.. "

이렇게 풀어헤치며 웃고 떠드는 것도 오랜만이지 싶다.

서울이라면 술이 거나해서도 내일의 일 때문에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건 처음 만난 선배에 대해 나이 외에 캐묻지 않는 인아가 다시 보인다.

그저 수다스러운 여자라 생각했지만 나름 조심스러운 면도 있지 싶다.

하기사 고급차를 끌고 다니는 남자인데 다른 궁금증이야 천천히 풀어도 될 것이다.

 

" 피곤하겠다, 우리 여보가.. "

" 그래 보여? "

선배와 인아를 호텔방에 있게끔 등을 떠밀고 우리방으로 들어 왔다.

" 응, 눈이 띠꾼해. "

" 이리 와. "

" 벌써 잡아 먹을라구? "

" 이거 받아. "

그전부터 생각해 왔기에 지갑에서 50을 꺼내 건넸다.

" ..나 이런거 싫어, 도로 집어넣어. "

남자를 우려먹는 대상으로 보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건 익히 아는 바다.

홀로 가정을 꾸리고자 꼴난 식당에서 밤일까지 감수하는데, 나로 인해 그 일마저 자주 빠지는게 미안했다.

" 걍 옷 사 줬다고 생각해, 돈 밝히는 여자 아니란거 알아. 어쩌냐 이래야 나도 편한데.. "

" ..여보야.. "

자존심이 쎈지라 구김살없는 모습만 보이려던 그녀의 눈에 습기가 찬다.

알량한 돈이나마 건네고자 하는 내 맘이 보인다는 듯 눈물을 떨구는 것이다.

" 또 그런다, 도도하게 굴라니까.. "

" ..먼저 씻을께. "

" 같이 가자, 씻겨 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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