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잘 마시네. "
" 기본이지. "
국진이가 소개시킨 용호씨와 단 둘이서는 처음 만나는 인아다.
처음 만난 날 속궁합까지 맞췄지만 서로간에 시간이 여의치 않아 오늘에서야 얼굴을 보게 됐다.
이 곳으로 오면서 은근한 기대가 생기기에 혼자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 그런거 보면 여자가 더 독해. "
" 치사하게 술 때문에 짱구 만든다니.. "
" 후후.. 이쁜 짱구잖어. "
" 이쁘다니까 용서해 줄께,호호.. "
비싼 승용차를 끌고 다니기에 처음 만날때부터 호감이 갔더랬다.
성격도 그만하면 온순해 보이고 때에 따라 그럴듯한 선물 역시 안기는 능력도 있을게다.
유부남 유부녀이지만 각자 집에서 조심만 한다면 애인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 잠깐, 핸폰이 오네. 응.. 여기 신림동.. 인아씨랑 같이 있어.. 그래. "
" 국진씬가 보네. "
" 응, 자기 보고싶대. "
" 보면 뭐해. "
아마도 희정이가 궁금해서 그러겠지만 사랑이란 억지로 짜 맞추는 가구가 아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편히 국진이를 만날 형편은 아니다.
집안이 시끄러운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는건 애들에게도 못할 짓이지 싶다.
" 무슨 일이야. "
" 별거 아냐. "
" 데이트 방해해서 미안하네. "
술집에 들어서니 둘의 모습이 깨가 쏟아 질 기세다.
하기사 이제 만나는 셈이니 무엇인들 즐겁지 아니 할까.
희정이와의 지난 시간이 그립다.
" 괜찮어 임마. "
" 힘들어요, 만나기.. "
새로이 만나는 선배와 인아의 시간을 뺏지 싶어 망설인 국진이다.
직접 희정이에게 메시지나마 보낼 맘은 굴뚝같았지만 그녀를 불편하게 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두사람에게 미안하지만 이 곳까지 온 것이다.
" 잘 있나 궁금해서.. "
" 기다려 봐요. "
폰을 들고서는 자리에서 일어 나 술집 밖으로 나가는 인아다.
" 무슨 일인데.. "
" 술이나 한잔 줘요. "
연거푸 빈잔에 술을 따르는 선배에게 옮길 말은 아니지 싶다.
답답하고 궁금한건 내 맘이지, 다른 이에게까지 전파할수는 없다.
" 츠암, 천하의 도사님이.. "
" 묻지 마요. "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단단히 열병이 걸렸지 싶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희정이 생각에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처리해야 할일이 많은데 모든게 심드렁하다.
" 기다려 달래요. "
" ..................... "
" 걔도 힘든가 봐. "
" 미안해요, 먼저 가 볼께. "
더 이상 앉아 있어봐야 그녀의 근황을 알기는 틀렸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밤이지만 우중충한 하늘이 내 맘같이 느껴진다.
술이 취했었나 보다.
쓰린 속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 난 국진이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들이킨다.
차츰 정신이 들고 어제밤의 기억이 조각조각 떠 오른다.
" 더 불러~ "
웬만해선 취하지 않은 자신이 아가씨 둘과 함께 레이저 조명이 번쩍이는 룸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그 것도 만족스럽지 못 했기에 아가씨를 더 찾으며 되지 못한 객기를 부렸지 싶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중에도 바지 주머니에서 영수증을 찾아내 보니 150만원이나 결제가 돼 있다.
( 한심한 놈. 정신을 맑게 해야 할 인간이 속세의 때가 덕지덕지 끼다니.. )
희정이의 사진이나마 보고 싶어 핸폰의 파워를 켰다.
그렇게 그리워 하는 희정이의 메시지가 와 있다.
~ 여보야, 왜 그래. 나까지 맘 아프게.. 나 힘들어, 그래도 당신 생각하면서 참는거야.
인아한테 들었더니 당신 힘들어 보이더래. 그래도 여보야가 중심잡아야 나도 아프지 않지.
믿을 사람도 없는데 당신까지 그러면 난 어쩌라구. 바보야 당신은..
나 좋아한다며.. 아무리 보고 싶어도 견디자고 했잖아. 난 누굴 믿고 사니..
아프지 마. 우리 웃으면서 만나자. 알았지? 말 잘 들으면 뽀뽀해 줄께. 사랑해.
- 당신의 여보야가 -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기 어렵기로 5통이나 보낸 것이리라.
그 메시지를 보고 또 봐도 절절한 심경이 괴롭힌다.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만나고 싶고, 만나서 끌어안고 싶은 생각만 들 뿐이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는게 이렇게 힘든 고통을 주는지 처음 맞닥뜨리는 국진이다.
머리속에서야 그녀의 당부처럼 의연하게 버텨야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이래서 쉽게 사람이 허물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