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이를 못 본지 보름이 넘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녀 생각을 지우고자 바쁘게 일에 매달렸던 국진이다.
호시탐탐 매달리는 연숙이는 일이 마무리 단계인지라 몸조심하기로 했다.
" 뼈 삭어, 무슨 여자가.. "
" 피이~ 동갑이면서.. "
다행히 정애에게 나머지 인감도장을 받아 넘겼기에 만나고 있다.
수고비를 주겠다길래 그녀 집을 찾아 한잔하는 와중에 담배까지 시원스레 내 뿜는다.
딸 하나를 데리고 연립주택에 사는 계집이 땅까지 욕심내는걸 보면 모르는 지출이 있지 싶다.
" 허허.. 동갑이라 맞 먹겠다는 소리로 들리네. "
" 당연한거 아닌가. "
" 맘대로 하시게나, 워낙 개성이 강한 사주니까. "
그녀의 사주나 얼굴에도 나타나 있듯 누구의 구속을 받고 살 여자는 아니다.
" 솔직이 얘기해 봐요. "
" 뭘.. "
" 연숙이 언니랑 썸씽있죠. "
" 없어 그런거.. "
연숙이가 바람둥이 남편과 대치중인지라 당분간은 숨겨야 한다.
정애에게서 1억이 곧 입금 되겠지만, 연숙이도 정리가 되면 적지 않은 돈이 나올 것이기에 비밀을 지켜야 한다.
" 거짓부렁. "
" 뭐 눈엔 뭐만 보이나니.. "
" 난 어때요. "
" 뭐가.. "
애초부터 짐작한 일이지만 눈에 띄는대로 남자를 노리는 년이다.
오늘만 해도 통 넓은 치마를 입었는데, 은근히 한쪽 무릎을 굽히자 허연 허벅지가 유혹 한다.
연숙이와 여정이 비슷하긴 하지만 같은 과로 매기기엔 곤란하다.
이미 세상에서 절개라는 아름다운 말이 사라지는 추세지만, 그녀와 연숙이 차이는 크다고 본다.
" 모른척 하기는.. 여자로 보이나요? "
" 이쁘기야 하지. "
" 됐네 그럼.. "
" 아직 안됐어, 계산은 끝나야지. "
흐지부지 했다가는 되려 뒷통수를 치려는 계집이다.
누가 됐든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 들어 곶감 빼 먹듯 제 배만 불리려는 욕심많은 계집이다.
" 내일 입금시킬께요, 남자가 의심이 많다니.. "
" 그럼 내일 보자구. "
느긋하게 집안을 정리중에 메시지 음이 울린다.
~ 바쁘세여 ~
인아가 메시지를 할 이유가 없기에 급한 마음이 되어 저절로 폰에 손이 간다.
" 네. "
" ..저기..
" 빨리 얘기해요. "
" ..희정이가 얘기하지 말랬는데.. "
" 에이~ 숨 넘어 가겠네. "
자꾸 말꼬리를 늘이는 그녀의 답답함에 조급해 진다.
" 죽었어요.. 신랑이.. "
" ....... 언제.. 어디.. "
" 병원 영안실.. "
폰을 끄고는 순간적인 판단을 해야 했다.
인아에게 함구하라고 시켰을땐 내가 알게 되는것이 싫어 그랬을 것이다.
그 남편의 죽은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가뜩이나 지친 삶을 살아 온 그녀로서는 더욱 힘들어 하지 싶다.
부리나케 검은 양복을 챙겨 입고는 은행까지 거쳐 택시를 집어 탓다.
" 빨리 왔네요. "
" 네. "
영안실 밖에서 인아를 불러 냈다.
" 자살했대요, 한참후에 발견됐고.. "
" 희정이는.. "
" 넋이 나갔어요. "
" 들어갑시다. "
" .................. "
장례식장 한 귀퉁이 작은 영안실이다.
첫날이기 때문인지 두 곳에 조문객이 있을뿐 전체적으로 썰렁하다.
구두를 벗고 올라 서는데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녀의 고개가 쳐 들린다.
그녀의 입이 뭔가 얘기하고 싶은듯 오물거렸으나 모른척 조의함에 갈무리 해 온 봉투를 넣고 빈소를 향했다.
향을 피워 청동그릇에 꽂으며 보니, 영정 사진틀 속의 남편이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예를 다해 망자에게 절을 한 후, 내심 기다렸을 동훈이 형제와 맞절까지 했다.
" 같이 한잔 합시다. "
거들어 주는 친척이 없는지 인아가 상 위에 주섬주섬 챙긴다.
" 손님이 없어요. "
" 그러네.. 잠시.. "
혼자서 밤 새기로 작심했으나 쉽지 않으리란 생각에 용호선배를 불러내려 한다.
~ 어디유 ~
~ 집 ~
~ 나오슈 ~
~ 어딘데 ~
~ 영안실, 인아씨랑 같이 있어 ~
그제서야 영안실 분위기가 읽혀지기에 느긋하게 한잔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