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서 뭐래. "
" ..원인을 모르겠다구.. "
아침 댓바람부터 자신의 운세를 봐 달라고 찾아 온 김순희라는 젊은 여자다.
첫인상부터 굴곡이 많아 보이는 상이기에 예사롭지 않다 싶었다.
이제 서른 중반인 그녀의 남편이 시름시름 앓은지 4년이 넘었단다.
" 자식이 또 있네. "
" .................. "
" 숨긴다고 하늘이 가려 질까, 까발려야 처방을 하지. "
" ..네, 사실은.. "
20대 초반 또래의 남자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해서는 자식까지 낳았으나 그 인간은 밖으로만 나 돌았고, 술만 먹으면
폭행에 노름까지 하는 터라 결국 갓난 애를 시댁에 주고서는 혼자가 됐단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친정에서는 난리가 났고, 무서운 아버지의 강요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애까지 낳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한다.
잠시 행복하리라 여겼던 적도 있었으나, 남편이 원인 모를 병에 시달리게 되고 이 곳을 찾았단다.
" 두고 온 아이 죽었구나. "
" ..네. "
사실을 짚어 주자 그녀의 목이 움추러 들어 땅바닥에 닿을 기세다.
삼신할미의 점지를 받아 이 땅에 나왔으나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늘의 뜻은 거스리지 못한다.
" 그 애 때문이야. "
" ................... "
" 이승을 떠 돌아.. 위로해 줘야 해. "
" ................... "
입고 온 입성을 보더라도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듯 하다.
" 돈 없구나. "
" ..얼마나.. "
" 자네 마음이 문제야, 아이한테 용서를 빌어야지.. "
" ..어려워서.. "
" 20만원만 만들어. "
" ..네. "
넉넉한 집안이라면 그 열배인 200만원도 적은 액수다.
있는 사람에게는 가혹하게 해도 벌 받을 일이 없지만, 빈곤한 사람의 주머니를 노린다면 신령님께서 노할 일이다.
마음이 독하지 못해 이 모양 이 꼴로 살아 온 지난 날이다.
" 다음주 쯤에 좋은날 받아서 핸폰할께. "
" 네, 도사님. "
점심 먹은 후 빈둥이는데 용호 선배가 찾아 왔다.
" 무슨 일이유. "
" 사업이 잘 안돼, 무슨 마가 끼었는지.. "
" 형이 뭘 안다고 마 씩이나.. "
격의없이 어울리는 술친구나 마찬가지인 선배와 신당에 마주 앉았다.
" 잘 좀 들여다 봐. "
" 반말하지 마쇼, 신당에서.. "
" .................... "
" 돌아가신 어머니한테 소원하셨네, 화가 많이 나셨어. "
" 그랬구나..요. "
광명천지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 하겠지만, 조상님에게 불효하고 잘 되기를 바란다면 도둑놈이나 마찬가지다.
돌아가신 선배 어머니의 위패를 가끔씩은 찾는 절에 소개시킨 일이 있다.
아무래도 액땜이나 하려면 그 곳을 찾아 치성을 들여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 며칠후에 어머니뵈러 갑시다.
" ..네, 도사님, "
선배가 돌아가고 잠시 쉬려는데, 옥상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나오지 말라니까.. "
" 그래도 남자가 빨래너는게 영.. "
" 참, 사람두.. "
며칠전에 살림을 합쳤다고 떡까지 들고 온 아랫집 내외가 사랑타령 중이다.
" 보기 좋시다,후후.. "
" 어머~ 도사님. "
" 시끄러워서 나오셨네. "
" 괜찮아요. "
참하고 이쁜 아랫집 여자지만 웬지 모를 그늘이 있더랬다.
지금은 그런 그늘이 많이 밝아졌고, 그 상대인 택시 아저씨도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음양화합이 한몫 한 게지만, 진작에 엮어주고 싶었을만큼 보기에 좋다.
그나저나 저녁부터 바빠지리라는 생각에 짜증이 밀려 든다.
주차장에서 잠을 자는 승용차를 꺼내 여의도로 향했다.
증권회사의 부사장이란 연숙이 남편 퇴근시간을 맞춰 가는 폭이다.
미행하는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기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차 안에서 폰에 저장된 연숙이 남편의 사진을 보며 건물에 오가는 사람들을 살핀다.
여러시간 죽때린 덕에 남편 모습이 눈에 띄길래 촉각을 곤두 세운다.
직원인듯 한 무리와 담소를 나누더니, 건물앞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길래 집으로 가는가 싶었다.
하릴없이 그 차를 따르는데 두어번 꺽여 진 차가 다른 건물의 입구에서 아가씨 하나를 태운다.
( 요 놈 봐라, 영계 스타일이로세. )
올림픽 도로에 오른 차가 김포공항쪽으로 방향을 잡기에 놓치지 않으려고 가까이 뒤 따르는데, 어렴풋 차 안의
실루엣은 운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아가씨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 딸이나 다름없는 애라니.. 저 자식 완죤 철면피네. )
한참이나 달리는 차 속에서 그 놈의 손은 이리저리 주물럭거리지 싶다.
공항 가까운 오피스텔에 다다른 승용차가 지하 주차장으로 사라진다.
족히 30분은 차 속에서 유배나 진배없는 시간이 지났는데 사라진 그들이 현관을 통해 바깥으로 나온다.
둘 다 제집인 양 옷차림이 캐주얼로 바뀐걸 보면 대놓고 동거 비슷하게 지내리라 보여 진다.
( 자식 제대로 걸렸네, 넌 이제 죽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