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19

바라쿠다 2016. 12. 23. 12:10

연숙이가 가져 온 반찬들을 냉장고에 갈무리하고 집을 나섰다.

" 여기.. "

큰 길가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섰더니 안쪽에서 손을 든다.

몇군데인가 손님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뜨일만큼 옷매무새가 화려하다.

깊은 밤 들려오는 고양이의 교미소리까지 내는 년이다.

어제 찐한 에로를 찍으며 몸을 불태웠기로, 그 기억이 떠 올라 아랫도리에 힘이 실린다.

" 어쩐 일이야. "

" 반찬 맛있길래.. "

또 한편의 영화를 찍고 싶은 욕망이 생긴 때문이지, 반찬운운은 핑계일 것이다.

착착 감겨오는 몸짓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리만치 유혹적이기에 한번 맛을 본 사내들은 또 다시 입맛을 다실것이고,

그렇기에 똥파리처럼 주위에 꼬일 것이다.

툭하면 들이대지 싶은데 어느정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 앞으로는 전화하고 와. "

" 혼자면서..  청소나 빨래라도 해 주면.. "

" 헐~ 계집이 드나들면 약발 떨어져. "

" ..넹~ "

( 어휴~ 저 놈의 고양이 소리, 애간장을 녹이네. )

천성이 그쪽으로 타고난 팔짜인지라 작은 손짓 하나에도 교태가 뚝뚝 묻어 난다.

그나저나 최면 비슷하게 빠져 있을때 작업을 끝내야 하기에 맘이 조급해 진다.

" 반찬 직접했어? "

" ..엄마가.. "

대답이 늦는걸로 봐서 음식솜씨는 꽝일게고, 그 나이에 엄마 운운 하는걸 보면 살림살이가 짐작 된다.

" 일주일에 한번정도..  미리 전화하고.. "

" 넹.. "

차라리 피곤에 찌든 희정이를 위해 그 반찬들을 건네 줘 시간이나마 아껴 주는게 현명하지 싶다.

 

" 이것 드시라구.. "

" 괜찮은데. "

기대하지 않았는데 길순이가 몇가지 반찬을 가지고 내려 왔다.

" 잘 드셔야죠, 일 힘들다면서.. "

" 아냐, 적당히 하니까. "

택시를 하면서 12시간 교대하는게 일반적이지만, 내 경우는 교대없이 혼자 영업을 한다.

나름 장단점이 있겠으나 손님이 많은 시간을 택할수 있고, 중간중간 느긋하게 쉴수 있어 좋다.

" 출퇴근할때 내가 태워줄께. "

" 일하는 시간 뺏길텐데.. "

워낙에 복잡한 택시운행 방법이 있는지라 길순이가 그런 지식까지 이해될리는 없다.

그녀의 일과에 따라 노래방에 있는 시간에 맞춰 영업하는게 낫지 싶다.

쉬는 시간이 비슷해야 얼굴이나마 한번 더 볼수있는 여유도 생길 것이다.

" 월세하고 생활비는 내가 책임질께. "

" 미안해서.. "

어제 얘기한대로 둘이 합쳐진다면 그 비용은 내가 대기로 했다.

어차피 한달 들어가는 경비를 주는 것이기에 부담이 크지 않을것이고, 그녀 입장에서는 그 돈을 절약할수 있어

고향으로 송금하는 액수가 늘 것이다.

" 아니라니까, 어차피 쓰는 돈인데.. "

" ..네. "

외로움이 뼈에 사무칠만큼 혼자되는 시간이 힘들기에 그녀를 구슬린 것이다.

한가한 시간 같이 술 마실 벗이 없고, 죽게되면 젯상 차려줄 자식마저 없다. 

남은 생 그녀와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남편처럼 그녀를 구속하게 된다면 서로가 힘들지 모른다.

여자가 아쉬울때 애써 번 돈을 써 가며 이곳저곳 업소를 찾는 것도 시들해 진 요즘이기에, 노래방에 출근하는 그녀를

이해하리라 맘 먹어 본다.

 

" 이리 와, 안아 줄께. "

" 이쁜짓까지,후후.. "

연숙이를 돌려보내고 침실문을 조심히 열었더니 막 잠에서 깨어난 희정이가 두팔을 벌린다.

씻기 전 몸이지만 그녀만의 체취가 코로 스미기에 잔뜩 숨을 들이켜 본다.

" 어디 갔었어? "

" 응, 잠깐.. "

다른 여자가 있다는걸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

연숙이와 마주치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국진이는 속을 쓸어 내린다.

" 밥 먹었어? "

" 아냐, 자기 일어나기 기다렸지. "

" 호호.. 립써비스 이쁘다. "

속옷 차림의 그녀가 바지를 꿰 차고는 욕실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갈아 입을 속옷이 없다.

그녀와 함께 있고픈 욕심이 나는지라 몇가지 옷이라도 사 놔야지 싶다.

" 차려주고 싶었어. "

시간이 지난 뒤 머리에 수건을 둘둘말아 올린 그녀가 주방으로 향한다.

샤워를 한 뒤라 그런지 보여지는 맨살이 싱싱함을 머금은 듯 반질 윤이 난다.

" 반찬많네. "

" 많기는.. "

작은 식탁에 반찬이며 가짓수를 늘어놓는 그녀가 이뻐 보인다.

전에는 느끼지 못한 욕심이지만 그녀라면 함께 해도 괜찮을듯 하다.

" 얼른 먹어. "

" 그러자. "

그까짓 여자야 맘 먹기 나름이지만, 이렇듯 마주 앉아 있자니 왜 진작 가정을 꾸리지 못했는지 아쉬움이 인다.

" 희정씨~ "

" 왜. "

" 아들놈 뭐 좋아해? "

" 몰라, 대책없어. "

아마도 삶에 찌들어 돌아 볼 여유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할수만 있다면 대신 챙겨주고픈 마음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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