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17

바라쿠다 2016. 12. 21. 23:39

~ 여보 ~

밤 12시쯤 집에 온 국진이가 샤워를 마치고 폰을 들여다 보니 메시지가 와 있다.

지금쯤 가게에서 일할 시간이건만 바쁘지 않은듯 하다.

~ 네, 마님. ~

~ 마님은..   자기 차 있어? ~

~ 응, 왜. ~

~ 내일 안양가야 하는데.. ~

~ 무슨 일이야. ~

나쁜 일인지 걱정이 앞서지만 차츰차츰 희정이와 가까워진다 싶어 좋긴 하다.

~ 큰 놈이 학교에서 사고쳤나 봐, 밤새서 졸릴텐데.. "

~ 몇시에 만날까. ~

그녀에게 쓰임새있는 인간이 된듯 싶어 오히려 흐뭇해지는 국진이다.

~ 9시. ~

~ 가게 어디야. ~

대충 위치를 전해 듣고 핸폰에 알람을 저장했다.

별것 아닌 호출이지만 그녀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하리란 생각이다.

오랜만에 찾아 온 인연이기에 남의 일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 방이 작네요. "

" 원룸이 그렇지,뭐. "

얼추 술울 마시던 태식씨가 50만원씩이나 건네 주었기로 그가 사는 방까지 따라 왔다.

같은 건물에 사는지라 따로따로 제 갈 길을 가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자연히 발길이 이 곳으로 향했을게다.

하루 일당이야 많이 벌어야 20만원 정도이기에, 과한 친절이 부담스러웠고 그에 따라 봉사나마 한다는 심정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업소에 나가게 되면 뻔히 짓궂게 시달리는지라, 하루지만 편케 해 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부랴부랴 간단한 안주를 작은 상 위에 챙긴 그와 마주 앉았다.

" 힘들죠? "

" 다 하는 일이야, 나름 재미도 있고.. "

" 벌이가 시원찮다던데.. "

이 곳에서 7년을 살았기에 남들이 아는 최소한의 기본 지식이야 가지고 있는 길순이다.

택시기사가 한달내내 버는 돈이라야 밑바닥에서 허덕일만큼 별 볼일 없다고 들었다. 

" 길순씨는 얼마나 버누. "

" 얼마 안돼요, 연변에 송금하기 빠듯할만큼.. "

" 한달에 100만원 더 보낸다면 어떨까. "

" 100만원이나? "

" 응, 내가 보태면.. "

" 내가 무슨일 하는지 알잖어요. "

돈을 주겠다는 얘기는 나를 욕심내지 싶은데, 애들까지 있기에 새 인생을 꾸리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사고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애들만을 바라보며 악착같이 살아 온 지난 세월이다.

그 애들 때문에 떳떳치 못한 도우미 생활까지 참고 견디는 중이다.

" 오해는 하지 마요, 법적으로 결혼하자는게 아니니까.. "

" ..그럼.. "

" 내 주제가 변변치 않다는거 알아요, 길순씨를 차지하고픈 욕심은 없어..  자식들 때문에 이런 일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걍 옆에 있어주면 안될까? "

부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을지라도 100만원이나 더 송금할수 있다는 얘기에 솔깃해 진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애들을 봐 주고 있지만, 학비며 생활비를 더 보낼수 있다면 숨통이 트일 것이다.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친오빠처럼 순하고 자상하지 싶은 태식씨가 다시 보인다.

꼴난 돈을 벌기 위해 모르는 남자들과 엮어져야 하는 지금의 이 생활에 환멸이 느껴지는 터이다.

" ..글쎄요..  자신없는데.. "

" 힘들겠지만 서로 이해합시다. "

처해 진 현실이 있기에 남자라는건 언감생심 꿈 꿔 보지 못했던 길순이기에, 태식씨의 프로포즈는 받아 들이기 쉽지만은

않다.

 

" 피곤하겠다. "

" 여보야가 피곤하겠지. "

가게 근처 일러 둔 장소에 이르니 국진씨가 미리 와 기다리고 있다.

급한 마음에 그에게까지 도움을 청한 희정이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미안하기만 하다.

" 어디야? "

" 안양 만안동 00번지.. "

" 세상 좋아졌어, 모르는 길도 찾아 주네. "

신호에 걸렸기로, 네비를 찍는 국진이가 믿음직스럽다.

심하게 다친 이후로 애들 아빠는 자식들의 소소한 보살핌마저 귀찮아 했다.

따지고 보면 쌩까도 되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는 그가 다시 보인다.

" 에어컨 시원하다. "

" 고물이야, 외제차로 뽑아야 했는데.. "

" 됐네요, 좋기만 하구먼.. "

" 미안합니다, 차가 후져서.. "

" 비싼 차 돈이나 잡아먹지. "

" 담엔 제대로 모시겠습니다,마님.후후.. "

" 쓸데없이 돈 쓰지 마. "

이런 작은 행복이나마 느껴 본 기억이 없는 희정이다.

각박한 이 세상에 누가 있어 이런 보살핌을 챙겨 주겠는가.

아둥바둥 쫒겨 살다보니 평범한 웃음마저 잃어버린듯 싶다.

" 잠깐 기다려. "

" 응. "

어느새 큰 아이의 학교에 도착했기로 차에서 내렸다.

그 녀석의 잘못으로 인해 선생과 학부모에게까지 머리를 조아릴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 여보 고마워. "

" 에이, 돌쇠 하는 일이 뭐야, 마님 받드는거야 당연하지.. "

무려 한시간이나 지나 승용차로 돌아올수 있었고, 그나마 챙겨주는 국진이가 있기에 조금은 위안이 되는 희정이다.

자식때문에 죄인이 돼야 했지만 내 편이나 다름없는 그가 있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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