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싸웠어? "
" 그 자식이 먼저 시비를 걸잖어. "
" 그런다고 때리니? "
" 그럼 어째, 반 애들이 다 쳐다보는데.. "
큰 아들이 사고를 쳤다고 담임선생이 학교에 들리라 한다.
어릴땐 순한 양같은 아이였는데 어찌 이리 못되게 변했는지 속이 상한 희정이다.
힘든 생활을 견디는건 토끼같은 애들이 힘이 되기 때문이다.
웬수나 다름없는 애들아빠는 진작에 온갖 정이 떨어졌기로 애들에게 잔재미를 붙이며 살아왔다.
" 언제 오래.. "
" 내일. "
12시간씩이나 일을 하기로 가뜩이나 잠이 모자른 터에 시간을 쪼개기가 쉽지 않다.
" 치료비 달라디? "
" 몰라. "
학교에 찾아갈때마다 무슨 죄인인양 선생과 상대측 학부모에게 번갈아 사과까지 해야 한다.
그럴때마다 벅찬 지금의 생활이 더 더욱 견디기가 어렵다.
" 제발 쌈질 좀 하지 말어. "
" 미안해, 엄마. "
" 내가 누굴보고 사니. "
" 알았다니까.. 아빠는.. "
" 볼일 있다더라. "
애들한테 제 애비의 꼬락서니를 일러 바칠순 없다.
한푼 벌어들이지 못하는 그의 병원비까지 물고 있는데, 꼴에 여자들과 희희낙낙거린다는 얘기까지 전할수 없기에
냉가슴 앓듯 혼자만이 감당하고자 한다.
" 오랜만이유, 형님. "
" 잘 지내냐. "
고연숙이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오래 알고 지내는 후배녀석과 한잔하는 중이다.
건달끼가 있는 놈이 술도매업을 하기로 몇군데인가 거래처를 터 주기도 했다.
" 그날이 그날이지, 뭐. "
" 제수씨는.. "
" 애 키우는데 정신없어요, 하기사 그 녀석 보는 재미에 나도 일찍 들어가지만,후후.. "
" 그래, 그렇게 사는거야. "
예전 신빨이 극에 달할때 궁합을 보고싶다며 이쁘장한 아가씨와 같이 왔기로 그들의 사주를 살폈고, 작은 액이 끼어
있기에 합당한 처방을 해 엮어 준 일도 있었다.
감옥에 가게 된 그의 운을 되돌려 놨기에, 이만큼 먹고 살게 됐을게다.
진실되게 날 예우하게 된 것도 수렁텅이에서 빠져 나온걸 내 덕으로 아는 놈이다.
" 영식아.. "
" 네. "
매케한 연기가 피어나는 돼지갈비 집이, 웅성대듯 떠드는 소리에 맞대응 해 목소리를 높여야 될만큼 손님들로 가득하다.
" 뭘 조사할게 있는데 참한 애 없을까? "
" 참한 애라.. "
고연숙 남편의 뒷조사를 하기 위해 흥신소에 맡기기 보다는 제 일인양 성의있는 사람이 더 낫지 싶다.
일을 맡고 나서는 수시로 적지않은 경비를 요구하는 그들의 사업수단이 싫기 때문이다.
" 일당 10만원정도..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
" 한번 찾아볼께요. "
믿을만한 친구가 없다면 스스로 귀찮은 일까지 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 한잔 하자구. "
" 술 약해요. "
아삼삼 자꾸 생각이 나기에 출근한다는 이길순을 꾀어 낸 조태식이다.
완강히 버티려는 그녀에게 하루 일당을 책임지겠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응하기로 가까운 고기집에 마주 앉았다.
" 주량껏 마셔요, 억지로 먹으라고 안 할테니.. "
" ..네. "
띠동갑이기에 약간 미안한 감이 있지만, 어차피 노래방에서 갖은 남자들에게 시달리지 싶어 이런 시간이 그녀에게
부담 되리란 걱정은 없다.
이쁘고 싱싱한 그녀와 썸씽이라도 생긴다면 좋은 일이고, 의미없는 만남이 되더라도 큰 손해는 없지 싶다.
반잔씩 꺽으며 조심스레 술을 기울이는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을만큼 매력이 넘친다.
입꼬리께에 박힌 작은 점 역시 이쁜 그녀를 돋보이게 한다.
" 애가 둘이라며.. "
" 네. "
" 이쁘겠다, 엄마 닮아서.. "
" 걔들땜에 살죠, 뭐. "
" 부럽다,후후.. "
택시를 하며 살아가게는 됐지만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매김하던 시절이 있는 조태식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쪼들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잘 나가던 사업이 망한 뒤로 끼니를 걱정하는 신세가 됐고, 지금에 와서는 큰 벌이는 아니지만 그나마 안정을 찾게 됐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가끔씩 외로움이 스며 들었고, 그에 따라 여자 생각이 나곤 했다.
" 아저씨 애들은 없어요? "
" 다 컸지, 근데 아저씨는 좀 그렇다. "
오래 전 부도가 난 그때에 이혼을 했고, 애들 얼굴본지가 10년이 넘는다.
홀로 살기로 허전할때 같이 술마셔 줄 벗도 없고, 혹여 자식이 젯상이나마 차려 줄런지 의심스럽다.
" 그럼 뭐라고 불러요. "
" 오빠는 어때.. "
" 에이, 그건 좀 심하다. "
" 걍 아무렇게나 불러,후후.. "
아직은 서로를 탐색하는 전초이기에 그깟 호칭이야 어떠랴 싶다.
그녀 역시 인생의 후반을 달리는 나이인지라 헛된 욕심은 없으리라 본다.
월세와 생활비가 족히 100만원은 지출되겠기로 운 좋게 그녀와 합쳐지게 된다면 그 돈이 절약될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그녀에게도 심어진다면 나를 보게되는 시선 역시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