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45

바라쿠다 2016. 12. 22. 19:36

이렇듯 공기가 좋은데 서울에서 아둥바둥 살아 온 지난날이 우습기만 하다.

취미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들이 3년이나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몸에 익어 수확하는 기쁨마저 낯설지 않다.

키우기 쉬운 닭이 30마리로 불어났고, 아침마다 달걀을 꺼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혼자 지내기 심심하다 싶어 5일장에서 사 온 두마리의 강아지는 이미 커다란 개로 성장했기에 맘 든든한 요즘이다.

농사를 지어 본 적은 없지만 근처에 사는 이장님 덕으로 상추와 파, 고추를 심어 이제는 제법 그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보며 물꼬를 내기도 하고, 친환경 소독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작년에는 하우스를 지어 느타리버섯 종균을 심었기로 권태스러움을 죽이기로는 으뜸이다.

가끔씩 마을 주민들과 친목의 시간을 가질때면 이 곳에 적응코자 많은 노력을 했기에 고향같은 푸근함까지 든다.

이 곳에 자리잡고 가장 재미난 일은 뭐니뭐니해도 집 근처의 저수지에서 낚시를 할수 있다는 점이다. 

집 안에 어항까지 마련해서는, 낚시에 걸린 작고 깜찍한 붕어를 넣어 지켜 보노라면 쓰잘데없는 잡생각마저 사라지곤

한다.

구정때마다 이 곳을 들리는 애들에게 수확한 농산물을 보내주는 기쁨도 있다.

가끔씩 애들이 보내주는 사진속의 손주를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곤 했다.

" 아재요~ "

" 웬일이래요. "

심심하기로 하우스에서 버섯 종균을 보살피는 중에 부녀회장이 찾아 왔다.

" 5일장 안 가능교. "

" 갈 일 없는데.. "

" 가입시더, 옥이 엄마도 간다 카든데.. "

" 그럽시다, 그럼. "

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한시간씩이나 신작로를 걸어야 하기에, 별다른 일이 없으면 종종 친절을 베풀고자 승용차를

꺼내곤 했다.

아마도 그런 번거로움이 싫어 일부러 찾아왔지 싶어 외출복으로 갈아 입는다.

 

5일장이 열리는 읍까지 가자면 족히 30분이나 걸린다.

버스 터미널을 지나 한적한 곳에 차를 주차시키고는 볼일 마치는 그녀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기에 읍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햇살이 따사로운 날씨기에 지나치는 모든 풍광이 푸근하고 정겨워 보인다.

읍내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역시 각자 이유가 있겠지만 모두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삼삼오오 지나치는 그네들을 보면서 문득 외로움이 스며드는 윤수다.

 " 정호아배는 와 혼자 사능교. "

" 여자들이 싫다네요,후후.. "

" 하이고, 눈깔이 삣다카이.. "

" 읍내 미장원 가스나가 혼자라카든데 다리 놔 줄까나. "

시골사는 아줌마들이라 그런지 한번 터진 입담은 쉽사리 제어가 되지 않는다.

" 됐습니다, 이대로 좋아요. "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들의 농을 받아 주는 지금도 충분히 평온하기에 서울의 시절은 잊혀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비오는 날이나 눈이 내릴때는 수진이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이제는 먼 과거일 뿐이다.

 

마을 어귀에 그녀들을 내려주고는 얕은 산 밑에 자리한 집이 시야에 들어 오는데 눈에 익지 않은 움직임이 있다.

처음에는 목줄을 매 놓은 개가 줄이 풀렸는가 싶었는데, 차츰 가까워 지는 시야에는 어린아이가 틀림없어 보인다.

집 앞 마당에서 신기한 듯 뒤뚱거리며 뛰노는 뒤로, 평상에 다소곳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인이 낯설지가 않다. 

오매불망 잊지 못하는 수진이가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차를 세웠고 문을 열어 그녀에게

달려가다시피 평상 앞에 이르렀다.

" 수진아.. "

" 반갑다. "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던, 그래서 못내 그리웠던 그녀가 내 눈 앞에 있다.

눈 부신 그녀와 마주하고서도 꿈인양 실감이 나지 않는 윤수다.

" 웬일이야.. "

" 얼굴이 폈네, 여기가 좋은가 보다. "

" 가게는.. "

" 집이 이쁘네. "

묻는 말에 아랑곳 없다는 듯 제 할만 하는 수진이다.

싱싱한 모습이던 그녀는 애엄마가 돼서인지 성숙한 느낌마저 풍긴다.

낯선 아저씨를 봐서일까 꼬맹이가 제 엄마 품으로 뛰어 가 안긴다.

" 할머니는 건강하시지.. "

" 오늘 자고 갈거야. "

 

시골이기에 해가 빨리 지는 편이다.

평소때 먹던 반찬과 그간 모아두었던 버섯을 꺼내 찌개를 끓여 저녁상을 준비 했다.

거실에 밖으로 통하는 샷시문을 달아 두었기로, 그 것을 오픈하면 저 밑 마을의 풍광이 이쁘다.

" 장사 잘 되지? "

" 가게 접었어. "

차려진 밥상에 소주가 빠질리는 없다.

꼬맹이를 무릎에 앉히고 잔을 꺽는 그녀가 새삼스럽다.

" 왜.. "

" 윤수야.. "

" 응? "

" 네 딸이야. "

" .............. "

한눈 팔 시간이 없을만큼 장사는 잘 됐다고 한다.

제법 저축도 할만큼 수입도 나날이 늘어났고, 분점을 차리고 싶을만큼 단골손님이 많다 싶었는데, 태어 난 아기의

윤곽이 뚜렷해지면서 안 좋은 결과가 생겼단다.

그도 그럴것이 아이의 얼굴이 부모의 모습과는 다르게 보이더란다.

그리고보니 수진이의 무릎에 앉은 아이는 내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

부득이 헤어질수밖에 없었고, 이 곳을 찾았다 한다.

" 윤수야~ "

" 응. "

" 우리 먹여 살려. "

 

 

       - 이상 마칩니다. 재미없어 죄송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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