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44

바라쿠다 2016. 12. 21. 21:53

" 일어 나라니까.. "

" ..지겨워 죽겠네. "

하루도 거르지 않는 되풀이가 계속된다.

시트를 둘둘 말고서 버티는 꼬락서니에 울화가 치민다.

" 얼른 나가. "

" 더 있다 나가도 된다구.. "

" 그러다 걔 삐지면.. "

" 에이, 나가기 싫은데.. "

아침마다 정호와 실갱이하는 미영이로서는 복창이 터질 뿐이다.

임신 7개월차인지라 집에서 지내며 바깥 출입도 자제하기로 한 시점이다.

저녁시간에 알바를 두면서 가게일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리라 여겼지만, 정호가 친구를 만나 술이라도 마시게 되면

느즈막하게 일어나 속을 썩이기에 두번씩이나 알바생이 바뀌게 됐다.

또한 천성이 게을러 가게에 대한 애착이 없기로, 자신이 닥달하지 않으면 모든일이 꼬이곤 한다.

" 이따 전화할거야. "

" 맘대로 해. "

제대로 씻지도 않은채 현관문을 나서는 정호다.

처녀시절이 끝난 이 마당에 돈 버는 재미라도 있어야 하는데, 저 인간에게 가게를 맡기고부터는 매상 역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자신이 집에 있어야 하기에 잔소리 할 사람이 없는 틈을 노려, 가게로 놀러오는 친구들과 못된 꾀만 부리는 인간이다.

어떤 날은 시간제 알바한테 가게를 맡기고 초저녁부터 사라져 소식마저 두절된 때도 있었다.

 

" 이제 그만 나와. "

" 그럴까 봐. "

어차피 배가 불러 더 이상은 힘들지 싶다.

영민이의 도움이 필요했던 시점이라 서둘러 동거를 시작했고, 그에 따라 덜컥 애가 들어섰기에 지금까지 왔던게지만

더 이상 가게에서 일하는건 무리라 여겨 진다.

오늘 아침만 해도 밀려드는 손님으로 인해 한차례 광풍이 몰아치듯 정신없이 보냈다.

" 직원 뽑자. "

" 검색해 봐. "

이 곳에서 커피를 뽑아 판지 일년이 지난 시점이다.

윤수의 도움이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 건 매장이기에, 뒤돌아보지 않고 나름 열심히 살아 왔다.

위치가 좋아서인지 다행히 손님들이 줄 이었고, 매상도 짭짤했기로 제법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는 재미까지 있었다.

꼴난 편의점을 전전하다가 대표라는 직함으로 불려졌기에 의욕이 넘치던 시간이었을게다.

경험이 있는 영민이가 뒤를 이어 가게를 이끌어 가겠지만, 못내 아쉬움이 큰 수진이다.

" 엄청 많네. "

" 한번씩 보자구. "

혼자서는 꾸려나가기 벅차기로 무난한 직원을 뽑아야지 싶다.

아기를 낳고 산받이 비슷하게 하려면 족히 일년은 지나야 몸을 추스릴수 있을게다.

그 간 가게의 얼굴노릇을 하려면 제대로 된 느낌이어야 할 것이다.

 

같은 시간 윤수는 대방 지하차도를 지나는 중이다.

그 동안 경치 뛰어난 전국을 돌며 허전한 마음을 다스리고자 애를 썻다.

하지만 수진이를 향한 그리움은 잊겠다고 쉽게 잊혀질리가 없었다.

서울을 떠나고 싶어 진작에 부동산 사무실을 정리했고, 다음달이면 아파트의 잔금마저 받는다.

태어 난 고향근처에 자그마한 택지를 구입해 어여쁜 집도 지었다.

하나 둘 구색에 맞춰 살림살이를 장만하고자 발품을 팔았고, 그럴때마다 여의도에 들러 먼 발치서 수진이를 훔쳐

보기도 했다.

먼저번 이 곳을 찾았을때는 임신한 듯 아랫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모습도 봤다.

아마도 며느리인 미영이와 엇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듯, 녀석들의 근황을 전송받았기에 짐작한 폭이다.

커피숍 입구를 지나쳐 노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 곳을 향했다.

저 멀리 커피숍의 배너가 보이고, 점차 가까워지자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린다.

건물과 다소 떨어 진 트럭뒤에 몸을 숨기고 그 쪽을 살피니, 가게에서 움직이는 수진이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 포기할수 밖에 없었지만, 온전히 자신의 아픔으로 남아 이렇듯 절절하리라곤 상상을 하지 못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이지만, 그녀와의 기억속에서 세세히 각인돼 작고 도톰한 귀뿌리마저 보이는듯 하다.

한참동안이나 지켜보던 윤수는 고개를 떨군채 발걸음을 돌린다.

( 잘 살아라, 수진아..  행복하거라.)

 

이럴수는 없다.

그 동안 얼마나 공들여 뒷받침을 했는데 이렇듯 배신을 때리다니..

들쑥날쑥 변해버린 영철이의 하루 일과가 아무래도 미심쩍기에 종업원에게 다방을 맡기고 새로이 시작한 현장으로

미행을 하기로 맘 먹은 미숙이다.

새로운 현장은 성남방향이건만 영철이를 태운 택시는 반대쪽으로 길을 잡더니 이미 오래전 준공검사가 끝난 양평동으로

향했고, 그 근처에 있는 연립주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짐작되기로는 그 인간을 꼬셔 낸 불여시같은 여자가 있으리라 본다.

부들부들 살이 떨리고, 하늘까지 노랗지만 정신을 차리고자 옆에 있는 전신주에 몸을 기댄다.

두시간 가까이 흐트러 진 정신을 수습하느라 애를 썻고, 종내에는 현직경찰인 사촌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의 바람끼를 잡을수는 없다는 판단이 섰기로, 무려 1억씩이나 투자 된 지게차를 회수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든

것만 해도 다행이지 싶다.

" 누구세요. "

영철이가 사라진 연립의 초인종을 눌렀고, 혹여나 발생할수 있는 불상사를 막고자 이 곳까지 달려 온 사촌동생과 함께

현장이나 다름없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 잘 논다. "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편한 차림으로 거실에 누워있던 영철이가 기겁을 했고, 졸지에 개같은 경우를 당한 그 여자는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어차피 법적인 부부는 아닌지라 영철이와의 정리는 어려울건 없기에, 지게차 회수의 다짐만 받으면 될 일이다.

모양새는 사납지만 현장 소장을 만나 지게차 3대를 대신 인수코자 하는 업자까지 소개받을수 있었고, 그 대금을 받기로

공증까지 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욕심이야 물거품이 됐지만, 큰 손해를 입지 않은 것에 위안삼기로 한 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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