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온 지연이의 식사를 챙겨주고 학원으로 보낸 후에 성미가 개업한 함흥냉면 집으로 갔다.
" 어머 ~ 연락도 없이 웬일이냐. "
카운터에 앉아있던 성미가 반기며 일어선다.
" 갑자기 냉면이 먹고 싶잖어, 호호.. "
드문드문 손님들이 앉아있고 고기를 굽느라 테이블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성미가 주방에 있는 누군가를 불러 뭐라고 이르더니 자신을 데리고 내실로 이끈다.
" 근데, 어쩌려고 그러니.. 진짜로 널 좋아하는것 같던데. "
같이 왔던 영호가 궁금했는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물어본다. 친한 친구이긴 해도 아직까지는 조심해야 한다.
" 응, 좋은 사람이야.. 나도 좋아하고.. "
" 많이 변한것 같애, 그전에는 이러지 않았던 애가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
" 왜, 내가 어째야 하는데.. 나는 애인이 있으면 안되는 사람인가, 뭐. "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니가 그런다는게 어째 어울리지가 않아서 그러지,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냐. "
그 때 핸폰에서 메시지가 왔다고 떨어댄다. 테이블 밑으로 핸폰을 열어 확인버튼을 누른다.
~ 자기야.. 나 배고파. ~~
영호가 집에 도착했을 시간이다.
~ 이리로 와.. 먼저번 모였던 함흥냉면. ~~
이곳에서 영호와 저녁을 때우리라 생각한 미진이다.
" 다시한번 여자로 살아보고 싶어서 그런다, 왜. 호호.. "
" 아무래도 이상해, 내가 알던 니가 아냐.. 딴 사람이 앉아 있는것 같다, 얘.. "
고개까지 갸웃거리는 성미의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도 변해버린 자신이 잘하는 짓인지 확신은 없다.
" 모르겠어, 나도.. 우연히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처녀 시절로 돌아간 듯이 즐거워지네. "
" 집에서 알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연주언니나 소연이 같으면 몰라도 너 같이 마음도 약한 애가.. "
" 그동안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자니까 부럽더라, 그래서 나도 한번 저질러 보기로 했지, 뭐. "
처음엔 죄의식이 들기도 했지만, 차츰 영호랑 있으면서 모든걸 잊을만큼 대책없는 여자로 변한 자신을 발견했다.
더군다나 남편이 일본에서 여자와 같이 지내는걸 목격을 한 뒤로는 차라리 후련하기도 했다.
" 참, 별일이다. 뭐가 너를 이렇게 바꿔 놨는지.. "
그때 내실문이 열리면서 영호가 들어선다. 성미가 어정쩡하게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 본다.
" 불고기나 조금 먹고 갈께.. 저 사람은 밥으로 주고 나는 회냉면이나 먹을란다. "
성미가 챙겨준다고 내실을 나가더니 들어올 기미가 없다. 딴에는 우리를 위해서 자리를 피해 준 요량이다.
" 웬일이야, 다른 사람들도 있는줄 알았는데.. "
"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친구가 보고 싶기도 하고 갑자기 냉면이 땡기길래.. "
내 말이 끝나고도 약간의 시간이 흘러간 후에 영호가 싱글거리며 내 얼굴을 바라다 본다.
" 언제든지 먹고 싶은게 있으면 말만 해, 뭐든지 사다 줄테니까.. "
" 그렇게나 좋아? 내가 고생을 하든지 말든지 애기만 생기면 되는가 보지. "
" 응, 애기만 있으면 자기는 필요없어.. 애기랑 놀아줄거야,히히.. 이왕이면 지연이처럼 이쁜 딸로 부탁해. "
" 필요 없다면서 나한테 부탁씩이나 하시네요. "
" 에이 ~ 왜 그래.. 다 알면서, 치사하게 애기한테 질투를 하냐. "
입이 귀까지 걸려 흐뭇해 하는 영호를 바라보며 더불어 기분이 좋은 미진이다.
" 애기만 낳는다고 좋아하고만 있을게 아닙니다요, 거기에 따른 책임을 져야지.. 당신 집에는 어쩔건데, 나이많은 유부녀랑
결혼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얼씨구 ~ 잘 했네요 하겠다, 그치.. "
" ................ "
갑자기 풀이 죽은 영호가 말이 없이 또 뭔가를 꾸미는 얼굴이다. 예전에도 저런 얼굴이 된 후에 단단히 아팠던 기억이
있다.
마음씨가 따뜻한거야 알지만 도대체가 믹음직스럽지가 못하다.
" 내가 무슨 돈이 있어, 집에서 와이프한테 달래면 되지.. 내가 그렇게 만만하니, 툭하면 달라고 하게.. "
승우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집앞까지 찾아온 성훈이가 불러내는 바람에 방배동 커피숍에 앉아있는 연주다.
모르긴 해도 밤새도록 노름을 해서 돈을 날린 모양새다. 얼굴은 있는대로 꾀죄죄해서 담배깨나 피워 댄 몰골이다.
" 치사하게 돈 몇푼 가지고 유세를 떠냐.. 오빠도 한방이 있는 인생이야, 그렇게 무시하다가 후회하는 수가 있어. "
" 오빠는 무슨.. 나보다 두살이나 어리면서, 힘만 세면 오빠냐.. 이제는 철 좀 들어라. "
승우를 만나러 가는게 늦어져서 속이 타는데도, 대책없이 들이대는 성훈이가 꼴보기 싫은 탓에 기를 쓰며 대드는 중이다.
" 어 ~ 얘가 점점.. 이제는 남자한테 바락바락 대드는 것도 배웠나 보다, 가뜩이나 열 받아 죽겠구만 여자까지 이러니
잘 될 턱이 없지.. 관둬라, 임마. 필요없어. "
방귀 낀 놈이 성 낸다고, 지가 먼저 약이 올라서는 길길이 뛴다.
" 더는 못 줘, 줄 돈도 없고.. 지금까지 금방 준다고 가져간게 오백이 넘어, 다시는 돈 얘기 하지마. "
싸늘하게 못을 박고는 자리에서 일어서 나왔다. 커피숍 문을 열고 나오는데 뒤통수가 뜨겁다.
커피숍 앞에서 택시를 집어타고 뒤를 돌아보니 성훈이는 커피숍에 앉아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맡겨놓은 것처럼 스스럼 없이 용돈을 요구하는 성훈이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 미안해, 집에서 나오는데 앞집 여자가 찾아와서 눈치없이 수다를 떠는 바람에.. "
양재동에 있는 7080 라이브 카페에서 맥주를 시켜놓고 앉아있는 승우의 얼굴색이 좋지가 않다.
성훈이와 얘기를 하느라 한시간 가까이 늦은 것이다. 원래 점잖은 사람인데 요즘엔 연주 자신이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불만이 많던 참이다.
며칠전에는 잘 해 보겠다고 미국에서 가져온 목걸이를 선물까지 한 사람이다.
" 어째 사람이 들쑥날쑥이야.. 잘 하다가도 며칠만에 삐끗거리니, 참.. "
어찌보면 승우의 불만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도 그럴것이 요즘엔 소연이의 애인들 땜에 성훈이를 주로 만나야
했고 간간이 기러기 아빠인 명수도 만나야 했기에 상대적으로 잘해주는 승우가 뒷전으로 밀렸던 것이다.
" 미안하다니까.. 맘씨 착한 사람이 이해를 해야지, 왜 그런다니 오빠답지 않게스리.호호.. "
제일 만만한 승우는 자신이 있었다. 조금만 애교를 떨어도 손주를 좋아하는 할애비의 수염이 되는 승우였다.
" 됐어, 임마. 나를 만만하게 보는거 알아.. 알면서도 니가 이쁘니까 넘어가는거야.. 그건 그렇고 다함께 놀러가기로
한건 어찌됐어? "
" 얘기는 했는데 아직 모르겠어, 결국 정희언니는 헤어 졌잖어. 그 집에서 부인이 눈치를 채서는 난리가 났다네..
그 얘기를 듣고는 나까지 조심스럽지 뭐야.. 그건 그렇고 새로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사람이 오빠처럼 점잖더라,
둘이 동갑이니까 오빠보다는 세살이 어리지, 아마.. "
" 그래? 어찌 그렇게도 빨리 남자친구를 만들었나, 노인네가 재주도 좋구먼,흐흐.. "
" 술집에서 만났대, 왜 정희언니가 술이 약하잖어.호호.. "
" 언제 한번 만나야 되겠구만, 동서끼리 한잔 해야겠다. "
속으로 뜨끔해지는 연주다. 정희의 애인도 성훈이를 봤는데 뭐라고 이해를 시켜야 할지 난감하다.
" 집에 올때 과일가게에 들려서 홍시나 사와.. "
집에서 지연이와 공부를 하기로 한 날이다. 저녁 찬거리를 다듬고 있는중에 영호에게서 핸폰이 왔는데 갑자기
홍시가 땡기는 것이다.
" 그것 말고 다른건 없어? 뭐든지 말만해, 몽땅 사들고 갈테니까.후후.. "
눈치를 채고 좋아하는 영호의 웃음소리가 핸폰을 타고 들려온다. 영호의 마음씀이 전해져 흐뭇하긴 하다.
" 홍시말고는 생각이 없어, 늦지 말고 오기나 해. "
지연이가 오기도 전에 영호가 현관을 들어서는데 홍시를 한상자나 들고 있다.
" 몇개만 사오면 되지, 다 어떻게 먹으라고 이렇게나 많이 샀어.."
" 지연이랑 같이 먹으면 되지, 이리와 봐.히히.. 회사에서도 보고싶어 혼났네.. "
내 허리를 잡고는 번쩍 들어안는다. 고무장갑을 낀채로 그의 허리를 발로 깍지 끼고 그의 목에 손을 둘렀다.
" 아이 ~ 먼저 손이나 씻어야지, 지연이도 올 시간이 됐는데.. "
말은 그렇게 해도 영호에게 매달릴 때가 제일 행복스럽다. 넓은 그의 가슴에 안겨 어린애가 되는 순간이다.
허공에 매달린채로 그의 입속에 혀를 넣고 있으면 어릴적 아빠가 무등을 태워 주는것처럼 아늑하고 자랑스럽다.
내 엉덩이를 받치더니 더 위로 솟구쳐 안고는 젖가슴에 고개를 묻고 옷 위로 입을 벌려 깨무는 시늉을 한다.
거실 천정에 달린 전등이 머리와 닿을듯 싶다. 애기처럼 자신을 다뤄주는 영호의 머리를 품어본다.
어느새 밑에서 애액이 스며 나오는지 사타구니가 가렵다. 영호랑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쉽게 달아오르는 것이다.
그때 현관문의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 영호의 몸에서 떨어져 주방으로 달려갔다.
" 어, 지연이 이제 오는구나.. "
" 삼촌 벌써 왔네. 호호.. 약속시간이 안돼서 아직인줄 알았지. "
" 지연이가 보고 싶어서 일찍 왔지.. 수학숙제는 잘 했는지 검사도 할겸.후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