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

여왕벌 34

바라쿠다 2011. 12. 16. 06:21

오전에는 사무실의 일을 배우고, 오후에는 오피스텔로 건너가 진희와 사업을 포함한 전반적인 의논들을 하곤 했다.

" 고태산이 연락이 왔었어, 숙희가 없을때 둘이서 얘기할게 있다네.. "

" 먼저번에 진희에게 따진다고 하더니 그 얘기겠지, 뭐. "

" 내가 데려다 줄께,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올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     

" 아니야, 혼자 다녀 올테니까 자기는 숙희하고 식사나 하면서 얘기좀 하라구.."

약속시간에 맞춰 진희가 나가자 몇군데 핸폰으로 업무를 지시하던 태호가 말을 건넨다.

" 밖에 나가서 진희가 올때까지 식사나 합시다. "

저렇듯 자신의 일까지 뒤로 미루면서 진희에게 도움을 주는 태호처럼, 태산이가 흉내라도 내려 했다면 독립할 꿈은 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진희를 챙기는 태호의 배려에 부러움까지 인다.

먼저번에 내가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던 태호가 불고기 집으로 이끌더니 소주까지 시킨다.

" 진희는 좋겠다..   태호씨가 물심양면으로 챙겨 주니까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

" 후후.. 그렇게 보였어요, 숙희씨가 모르는게 있지.. "

" ............. "

" 사실..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게 아닙니다. "      

고기가 구워지는 사이에 술 한잔을 홀짝인 태호가 말을 잇는다.

" 처음에는 고사장처럼 진희의 몸만을 탐내던 식이었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내가 살던 습성대로, 그저 스쳐 지나가는

보통의 먹이감에 불과했던 진희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면 설명이 될래나,후후.. "

잔잔하게 예전을 회상하며, 꼭 나에게 설명을 한다기 보다는 자신에게 넋두리를 하듯 톤이 없는 말투다.

" 숙희씨도 알겠지만 진희가 섹스의 주도권을 쥐고 한두번 밤을 지샜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진희에게 빠져 들었다고

해야 되나..  아뭏튼 진희가 생각나서 도저히 참을수가 없을만큼 중독이 되어 갔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듬뿍 들어서는, 진심으로 진희가 원하는걸 도와줘야 겠다고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게끔 된 것이고.. "

" 그렇게 인연이 되기도 어려울텐데..  나중에라도 진심이 통했다는 얘기네요. "

" 지금도 진희가 추진하는 업무를 성취해서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니까..  과정이야 어떻든지

 서로가 만족하면 된거 아닐까요.. "

" 태호씨 스스로 우러나서 도와주고, 마음까지 편하다면 좋은 일이겠죠..  그것만으로도 진희가 부럽네요. "

" 숙희씨도 그렇게 되길 진희가 도와줄겁니다.     먼저번에 진희가 고사장에게 화를 내는걸 보니까 알겠더라구요. "

" 그 사람에게 많은걸 바라지도 않아요..  진희가 내가 바보같아서 내 편을 들어주는거야 고마운 일이지만, 고사장하고는

어떤 애정이 생길수는 없는 인연인지라.. "

" 단순히 남자의 도움을 받으라는 얘기는 아니지 싶은데..  남녀 사이에 좋아하는 감정이 생긴다면 경제적인 도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진희가 화를 낸건 숙희씨를 자신의 둘째 부인쯤으로 여기면서도,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 주질 않고

섭섭하게 구는데도 정작 당사자인 숙희씨가 맥없이 참고 견디니까 그게 못마땅 했을거예요. "

"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긴 해요.  진희가 그 얘길 해 줄때도 팔자타령만 했으니.. 호호.. "

자조섞인 내 웃음소리가 안쓰러운지 내 잔에 술을 따라 주고는 잔을 부딛쳐 온다.     소주가 무슨 맛 인지도 모르겠다.

" 피부관리실에 가서..  그 무엇이냐,  진희처럼 발톱에 그림도 그리고 해서 한번 변신해 보세요.    이건 고사장에게서

도움을 받는 문제가 아니고, 숙희씨를 좋아 하게끔 만들어서 그동안 억울 했던걸 풀수만 있다면 좋지 않겠어요. "

남편 없이 세상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어 태산이에게 기댔던 자신이다.     언제부터인가 태산이 던져주는 푼돈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해오던 참이다.

스스로 술병을 들어 태호에게 따라주고, 앞에 있는 잔에도 술을 채워 건배를 했다.

                                                                           놀아줘

" 웬일로 우리 사부께서 호출까지 하셨나, 호호.. "

자주 만나는 회집의 구석방에서 앉아있던 태산이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 나, 진희씨한테 많이 섭섭해.. "

미리 예상했던 그대로 반응을 보이는 고태산이다.

" 호 ~ 섭섭하시다..  태평양 만큼이나 맘이 넓은 우리 사부께서 웬일이실까.. "

" 내가 진희한테 정사장도 소개하고 창고료도 적게 받으면서 나름 열심히 했는데 이러면 안되지.. "

" 글쎄.. 무슨 일인지 얘기를 해줘야 알지, 빙빙 돌리지 말고 핵심을 말해 봐요. "

여자 때문에 화가 났다고 얘기하기가 자존심 상하는지 술잔을 들어 마시며 뜸을 들인다.

" 숙희한테 바람을 집어넣은 이유가 뭔데.. "

" 아 ~ 그 얘기네.. 진작에 본론을 꺼내지 그랬어, 남자가. 호호..   싸부 ~ 솔직하게 대답해 줄래요?   나하고 숙희중에

누가 더 좋은데.. "      

일부러 허리까지 틀어 태산의 턱밑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애교를 떤다.

" 그거야, 뭐.. "        

대답하기가 곤란한지 머뭇거린다.

" 둘 다 가졌으면 좋겠지, 호호..  무슨 남자가 배짱이 없냐, 대답도 못하구.. "

" 누가 더 좋다고 비교 할수있는 문제가 아니잖어.. "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지 감조차 잡지를 못한다.      차분히 설명을 해 줘도 이해를 할지 자신이 없다.

" 혹시 말이지, 사부..  내가 사부의 애인이 된다면 한달에 얼마쯤이나 용돈을 줄건데.. "

" 천하의 여왕벌이 무슨 용돈 타령을 하고 그래.. "     

" 맞아요, 사부..  나 용돈 필요없어.  내가 사부한테 용돈을 준다면 모를까, 푼돈이나 받으면서 사는 여자는 아니지..

그런데 사부는 매사를 돈으로만 보는것 같애.  좀 전에 정사장을 소개하고 창고비도 깍아줬다고 했지..   물론 사부

입장에서 보면 그럴거야, 하지만 내 생각은 그게 아니걸랑..   사부가 창고 임대업을 하면서 업자들간에 소개를 시켜

주는건 당연한 일 아닐까..   그래야 그 사람들이 창고를 이용 할테고, 곧바로 사부한테 이익이 돌아 갈테니까.. "

자기 욕심만 차리는 태산에게 이치를 가르치려니 답답한 생각이 들어 술 한잔을 털어 넣는다.

" 그리고 창고비를 깍아줬다고 생색을 내시는데, 나처럼 고정적으로 큰 돈을 내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 몰라..

내가 누구야..  여왕벌이야.  그 돈이면 다른 창고에서도 똑같은 조건으로 빌릴수 있어요.  사부 입장에서는 창고비를

깍아 줘서라도 당연히 나같은 고객을 잡아야지..   임대료를 깍아 줬다고 생색을 낼 처지가 아닐텐데.. "

자기 머리만 좋은줄 알고 허세를 부리다가 정곡을 찔려 당황했을 것이다.    할말을 찾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 이제는 숙희에 대해 얘기를 나눠 볼까요..  내가 숙희를 빼돌린 것처럼 오해를 하시는데 그게 또 잘못된 생각이야.

한번 물어 봅시다, 매사를 돈으로 저울질 하는 사부의 눈으로 볼때 숙희를 좋아하는 진심은 얼마쯤일까..   매달 주는

백만원이겠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돈으로 따지면 안돼요, 백만원을 주면 백만원짜리 여자가 되는것이고 천만원을

주면 천만원짜리가 되는걸 왜 모르냐구..   이쁜 숙희를 밖에 내 돌리기 싫어하면서, 생활비도 안되는 백만원을 주고

묶어 놓는건 좀 심하지 않나.. "

" 그럴려구 그런게 아니고.. "

변명을 늘어 놓고 싶어도 그럴듯한 대안은 없을것이다.    타고난 그릇대로 살아 가는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 숙희를 생각해 봐요, 그렇게나 착한 여자가 몇년씩이나 참고 살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독립을 하겠다는데,

사부는 돈만 귀하게 생각하잖아..  숙희를 좋아한다면 숙희를 귀하게 여겨야지, 어찌 돈을 따져서 그 착한 여자를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네..  진짜로 숙희를 좋아한다면 사부의 진심을 담아 숙희를 설득해 봐요. "

" 숙희가 그렇게 얘기를 하던가? "

풀이 잔뜩 죽어서는 말소리조차 기운이 없다.

" 죽어서 싸 가지고 갈 돈인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한테도 아까운 돈을 뭣 땜에 버는지 모르겠네, 참말로. "

" ............ "

" 사부도 우리 최사장 알죠.. 재산으로만 따진다면 사부보다 많을걸.  그 사람이 나에게 모든걸 다 주겠다는데도

난 싫다고 했어.  웬지 알아요..  여자는 말이죠, 돈보다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한테 마음이 가는거야.

마음이 메마른 여자들이나 돈을 밝히는거지,  따뜻한 여자는 사랑을 먹고 살려고 한다고.. 이 답답한 사부야. "

" ............ "

" 나도 모르겠어, 두 사람이 잘되든지 말든지..    우리 최사장이 괜찮은 남자를 숙희한테 소개를 한대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잡으려면 빨리 잡든지.. "

시원하게 할 말은 다 했다고 생각된다.    이제 공은 고태산에게 넘겨졌다.      그가 어찌 나올지는 알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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