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스크랩] 그릇 1

바라쿠다 2014. 11. 30. 07:09

 

그릇이 작다,크다.

상대의 인품을 잣대로 평가하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근래들어 순전히 그릇 그 자체에 끌림이 간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감에 여성 호르몬이 생긴듯 하다.

혈기 왕성하던 시절, 어느 여인네의 강압에 못이겨 그릇만을 파는

동대문 어디쯤인가의 도매시장을 오후 내내 끌려 다닌적이 있다.

종일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체 마냥 행복해 하던 그녀가 떠 오른다.

지겹긴 했으나 내색도 못하고 연신 하품만 했지 싶다.

 

며칠전 퓨전포차에서 술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메뉴가 딱히 마땅치 않길래 무심코 떡볶이를 시켰더랬다.

친한 지기들과 쓰잘데없이 궁시렁대다 보니 어느새 그릇이 바닥을 보였다.

뛰어난 맛은 아니었지만, 떡볶이가 담겨진 그 그릇을 본 순간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 야~ 이쁘네. "

도자기라 불러도 손색없을 긴 사각형의 그 그릇에 담겨진 떡볶이와 어묵,

그리고 반으로 갈라져 노란자를 수줍은듯 내보이는 삶은 계란까지..

데코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지라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내

뱉었다 여겨진다.

 

맛도 맛이지만 보여지는 시각에 큰 무게가 실리는 순간이다.

분재를 좋아하는 이가 꽤 많다.

작은 소나무나 단풍나무가 아무리 우아하다 한들, 프라스틱이나 고무로

만든 화분에 심어졌다면 그 느낌은 경박해 보일것이다.

 

씽크대 서랍장에서 쓰지 않던 그릇들을 모처럼 꺼내어서는, 알타리김치와

숙주나물을 담아 식탁에 올렸다.

대충 때우던 한끼의 그 맛보다, 또한 평소의 식사 시간보다 더 느긋하게

혀 끝의 느낌을 즐기는 아낙네로 변해 버렸다.

 

그릇을 구워내는 가마터가 있다면 한번 찾아가고 싶다.

 

출처 : 중년 에세이
글쓴이 : 바라쿠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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