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레기의 행복지수

내 멋에 산다.

바라쿠다 2014. 8. 30. 13:49

엊저녁 조금 과했던 탓에 얼마간의 숙취야 있기는 하지만, 즐거운 시간 뒤의 상처라 여긴다면 그닥 나쁜

상태는 아니다.

맘이 통하는 지기들과 함께 인생의 영원한 벗인 술까지 접했으니, 즐겁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머리속만큼은 지금 이 시간이 제일 맑은 시간이랄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이 하루의 일과를 되돌아 보며 잠자리에 드는것과 달리, 이른 아침 일어나 어제의 하루를

곱씹는다는 것도 그들과는 별반 다르지도 않을게고..

넉넉친 않지만, 세달 넘게 백수로 지내면서도 소박한 안주를 곁들인 술값 따위에 연연치 않으니, 하등 잘

사는 친구들이 부럽진 않다.

다만 남은 인생, 부끄럽지 않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을뿐이다.

 

" 안녕하세요. "

" 그리로들 앉아. "

며칠전 하나밖에 없는 딸년이 남자친구를 소개시켜 준다길래 갈비집에서 마주했다.

오래전부터 독립했던 딸이다.     평소 안부 전화조차 가뭄에 콩 나듯, 애교란건 없는 녀석이다.

그렇다고 잔 정이 없는건 아니다.     어찌 보면 제 아빠를 닮아 여린 감성마저 지니고 있다.

" 술 좀 하나? "

갈비찜과 소주를 시켜 첫잔을 부워주며 물었다.

" 잘 못해, 아빠. "

" 저기.. 몇잔밖에.. "

다소 주눅이 든 녀석과는 달리 딸년이 먼저 나서서 옹호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인상이 과묵하고 순해 보여 좋은 점수를 주고자 했지만, 나도 모르게 불뚝심이 샘 솟는다.

" 그건 좀 그러네, 넌 술꾼이잖어. "

" 아냐, 아빠   요즘 잘 안 마셔. "

날 닮아 술만큼은 두주불사인 딸년이 얌전을 빼기까지..

제 아빠의 생일일때도 폰으로 축하를 대신하던 지지배였기에, 그 괘씸함은 깊이가 더 한다.

자전거 동호회에서 만난 그 녀석을 연신 감싸는 태도를 보이기에, 그만 참을성이 바닥을 보였다.

"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야지, 쉽게 결정짓지 마.    그리고 시집가기 전에 아빠한테 어느 정도는 효도도

해야 할 것이고.. "

 

예전에는 딸년과 둘이 대작한 적도 여러번이다.

그때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 아빠가 말이다,  너한테 해 주고 싶은건 진짜 많은데 그게 잘 안된다.   알다시피 아빠는 능력이 없잖니. "

" 아빠, 걱정하지마요.  내가 알아서 할께. "

딴에 착한 구석이 많은 딸아이는 못난 제 애비를 위로하곤 했다.

그때와는 격세지감이 있지만, 이제 내 곁을 떠나려는 녀석에게 서운한 맘이 생긴 탓이리라.

셋이 얘기하면서 다소 딴죽을 건 폭이 됐지만, 헤어질때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꿔 줘야만 했다.

 

제 힘으로 살아가겠노라며 어릴때부터 딸년이 호기스럽게 얘기하곤 했지만, 명치끝이 체한것 마냥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있는 느낌이다.

두 녀셕을 배웅하고, 또 다시 지기들과의 술자리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내내 심란스럽기만 하다.

이차가 된 술자리에서 몇잔 술이 속을 덥히자, 방금까지 머리속을 떠나지 않던 근심거리도, 어느새 남의

일인양 무덤덤해 지고 만다.

나만의 공간인 이곳에서 이리 긁적대며 묘한 방안을 목하 연구중이지만, 술로 찌든 이 머리로는 좋은

대책이 있을수 없다.

에고, 모르겠다.     어찌 되겠지.     해장이나 한잔해야겠다.

 

'어스레기의 행복지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는 사랑  (0) 2014.09.07
조영남 예찬  (0) 2014.08.31
듣는이 없는  (0) 2014.08.28
술 마시고 헛소리..  (0) 2014.08.23
유병언의 죽음이 허무한 까닭  (0) 2014.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