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

여왕벌 11

바라쿠다 2011. 10. 26. 00:16

아침에 눈을 뜬 태호는, 옆에 누워 곤히 자는 진희의 얼굴을 한번 내려다 보고서 샤워를 하기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춰보다가 깜짝 놀랬다.    아랫도리의 물건이 퉁퉁 불어 있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광란의 몸짓이 떠 오르며 다시금 그녀가 새로워 진다.      수많은 여자 경험이 있는 그로서도 이런 명품은

처음이다.

여지껏 만났던 여자들과는 차원이 틀리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진희를 옆에 두고 싶은 마음뿐이다.

샤워를 끝내고 나가 보니 침대가에 앉은 진희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담배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런 그녀의

몸에서 관능이 넘쳐난다.

" 진희씨가 담배를 피는 줄은 몰랐네..   우리 진지하게 얘기 좀 할까? "      

" 우리 사이에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았나..   승부에서는 내가 이겼을텐데.. "

" 아하 ~ 왜 이러실까..   앞으로도 도움을 주고 싶어 그러는데.. "

" 이봐, 태호씨..  당신과 내 인연은 이미 끝났어.   자꾸 도움을 준다고 들먹이는데 내가 싸구려로 보이니?    이제 

아주버니도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자랑거리가 못 돼..    당신은 나한테 장난감일뿐야. "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는 진희는, 이미 허약한 줄로만 알았던 제수씨가 아니다.     또 다른 그녀의 참모습이다.

" 나한테 빠져서 도움을 준다는 남자는 얼마든지 있어..    그까짓 알량한 도움 따위를 내세워 화나게 한다면 두번 다시

내 얼굴은 못 봐..    내 몸을 다시 안고 싶으면 차라리 무릎을 꿇어.. "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쉽게 그녀를 평가했던 자신의 실수였던 것이다.       이미 자신의 품안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연약한 여자가 아니다.       하룻밤의 대결로 그녀와의 관계가 재정립 되어졌다.

 

유난히 화창한 어느날,  철호는 수정이와 함께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일찍 일어났네, 오빠.   오늘 낮에 어머니를 만난다고 했던가..  벌써 12시가 됐네. "

수정이가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가서 덜그덕 거린다.     아침이라도 챙겨줄 모양이다.

" 됐어, 먹고싶은 생각도 없어..   늦게까지 장사 했을텐데 잠이나 더 자라구.. "     

" 국물이라도 마셔야지, 술을 많이 마셨는지 입에서 냄새가 나던데.. "

" 장사는 좀 어땠어?   나를 먹여 살릴래면 많이 벌어야지.후후.. "

" 츠암, 오빠는..   별소릴 다하네, 굶기지 않을테니까 걱정 마셔.. "

" 밥값, 술값 모두 장부에 달아 놔..   돈 생기면 갚을께.. "

" 오빠 ~ 자꾸 서운한 소리 할거야?   내가 언제 오빠한테 돈 달라고 한적 있니? "

철호가 이혼 했다는걸 알고 있는 수정이다.      맺어지길 바라는건 아니더라도, 술에 의지하려는 그가 안쓰럽다.

" 그래, 고맙다..   멍청한 놈을 챙겨주는건 너 밖에 없구나.. "

많은 회한을 가지고 술독에 빠져있는 철호였다.      집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고, 진희에게 이혼까지 당한 울분을 술로

달래는 시간이다.     어제 어머니한테서 연락이 와서는, 오늘 낮에 만나기로 했다.

" 다녀올께..  모자른 잠이나 더 자둬.. "      

 

신사동 호텔의 커피숍이다.

집에 찾아 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어머니를 만나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럽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한산한 커피숍에 들어가 살피던 철호는 구석진 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외진 곳을 찾게 된다.       한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의기까지 꺽여 소심하게 변해 버렸다.

커피숍 바깥쪽에 눈에 익은 차가 들어와 멈추고, 기사가 열어주는 차 밖으로 어머니가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 지내는 곳은 어떠냐?    니 형에게서 대충 소식은 들었지만, 많이 야위었구나. "

" 지낼만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정도도 감지덕지 해야죠. "

" 그 양반이 화가 많이 났지만, 조금은 누구러진듯 하니 우선은 참고 견디거라.     너도 남잔데, 참다보면 좋은 때가

오겠지.     일단은 선릉쪽에 있는 건물을 관리하면서 지내도록 해라.. "

" 신경쓰지 마세요,  어머니까지 불편하게 해 드려 죄송해요. "

" 시키는대로 하거라, 이번에 그쪽에 큰 일을 추진중인 모양이더라..   모르는척 하고 니 형 밑에 잠시만 있으면, 내가

나서서 어찌해 보마.    그리고 이것 가지고 당분간 쓰고.. "

테이블에 흰 봉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번 안쓰럽게 쳐다 보고는 걸어 나가시는 모친이다.

 

성식이와 영애의 결혼식 날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진희와 철호의 결혼식을 치뤘던 바로 그곳이다.

형편에 맞춰 규모를 줄이고 싶었으나, 이번에도 처가집에서 부담을 떠 안기로 하는 바람에 호화 결혼식이 돼 버렸다.

하객들 역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축하화환도 너무 많아 호텔 입구에까지 세워놓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양가집에서 축의금은 받지 않기로 합의를 했지만, 결혼식 하객들의 식대비용만 1억이 넘었단다.

처가집의 인맥 관계를 과시할만큼 성황리에 거행된 결혼식이었고,  현직 공무원인 성식이 부모의 손님들도 거창한

결혼식을 축하해 주며 부러워 했다.

결혼식 말미에 기념촬영을 하면서,  친구들의 촬영 순서에는 진희와 철호가 따로 떨어져 촬영을 했다.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성식이와 영애다.       

결혼식을 마치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오색 테이프로 치장을 한 승용차에 올라 공항으로 출발을 한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진희와 철호가 호텔옆 카페에서 마주앉았다.

" 얼굴이 왜그래..   아직까지도 괴롭다고 술만 마시는거야? "   

" 내가 할줄 아는게 없잖아..   소연이하고는 잘 지내지? "     

나를 좋아했을뿐 자기형처럼 비열하게 굴지는 않는다.     태호랑 몸을 섞은걸, 철호가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능력만 받쳐 준다면 잘해 줄 사람인걸 알고있는 진희다.

" 그래서 내가 떠난거야..   자기가 나를 나쁜년이라고 해도 어쩔수 없어,  능력이 안되는 남자에게 기댈수는 없잖어..

독한 마음을 먹고 다시 일어서 봐..   혹시 아니?   내가 다시 돌아갈지.. "

그에게 희망을 주고싶었다.     비록 어긋났지만 자신의 인생을 맡겼던 사람이다.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잭 다니엘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철호다.     얼음으로 믹서를 해서 보조를 맞추는 진희다.

" 철호씨 혼자 잘못한 건 아냐..   나 역시도 허황된 꿈을 쫓았던거지..    지금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   철호씨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했잖어..   인간적으로 철호씨를 미워하는건 아냐..    다시한번 노력해 주길 바래.. "

" 고맙다, 나를 미워하지 않아서..   세상을 살아가는게 쉬운줄만 알았지.후후..    그래, 니 말 마따나 내가 엉터리로

살았던게 맞어,    기회가 된다면 다시한번 일어서야지..     선릉에 큰 건이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출근해.. "

먼저번에도 태호가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철호까지 아는 얘기라면 신빙성이 있다.   요 며칠동안 태호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지만 일부러 피했다.     확실하게 애를 태울 작정이다.   

 

" 어머 ~ 일찍오네, 우리 오빠가 요즘 맘 잡았나보다..   좋아하던 술도 안 마시고,호호.. "

" 왜 이렇게 가게가 썰렁해?   오빠를 먹여 살리려면 많이 벌어야 한다니까.. "      

수정이가 하는 카페에 들려, 며칠전 어머니에게서 받아 가지고 있던 흰 봉투를 건넸다.

" 아직 초저녁인데 뭐..   이게 웬 돈이야, 천만원씩이나..  "      

" 그동안 밀린 하숙비야..   늦게까지 장사하고, 아침에 출근하는것까지 챙겨 주느라 애 썻어.. "

" 자기 요즘에 많이 좋아 보여..   출근을 해서 그런지 의욕도 생긴것 같고, 그 전처럼 죽자고 술도 안 마시더라.. "

언제까지 이전처럼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나간 일들은 털고서 자신에게도 능력이라는게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진희에게 별볼일 없는 망나니가 아니란걸 보여주고 싶은것이다.    

" 나가자 오빠, 오늘은 가게문 닫고 집에서 쉬고싶어.호호..    저녁 맛있게 차려줄께. "

혼자 집에 들어 간다는걸 굳이 수정이가 따라 나서서는, 마트까지 들러 먹을거리를 산다.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주방에서 저녁을 차리는 수정이를 보며, 고마운 마음이 드는 반면에 정을 주지 못하는게

미안하기까지 하다.

" 웬일이래,  술이라곤 양주밖에 모르던 사람이 소주를 찾으니.. "

" 술이란게 취하면 똑같지, 뭐..   이제부터라도 분수에 맞게 살란다.    어찌보면 그것도 과분해. "

직접 끓인 매운탕이 제법 맛깔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저녁을 먹는것이다.     매일 술에 쩔었었고 그를 위해 식사를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음이다.    

새삼, 살아가는 모습까지 뒤돌아 보게 되는 철호다.

" 수정이 너 얼마나 가지고 있냐?    여유돈이 되면 가게 근처에 짓는 건물에다 점포나 하나 계약하지.. "

" 느닷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하는 장사는 어쩌구.. "

" 건물이 20층이니까, 사무실이 분양되면 지하에 식당가가 형성될거야.   몇달만 지나면 몇천만원 정도는 건질수 있어.  

대신 내가 가르쳐 줬다는 말은 하면 안돼. "

" 글쎄,  좋은 얘기같은데..   어느정도나 있어야 할까? "

 

그 시간에 진희는 남산 기슭에 있는 호텔 칵테일 바에서 태호와 마주앉아 있다.

" 진희씨가 이 정도로 매정한 사람인줄 몰랐네..   좋은일이 있어서 연락을 했건만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을 하니.. "

몸이 달았는지 처음 이곳에서 만난 후로, 거의 날마다 귀찮을 정도로 핸폰으로 들이대는걸 모른척 했다.

오늘만 하더라도 철호에게 들은 얘기가 있어 만나기로 한 것이다.     태호가 나에게 목을 매는만큼, 느긋하게 하는 양을

지켜보면서 대처를 해 나갈 생각이다.

" 분명히 얘기 했을텐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네,  도움 따위를 운운하는 그쪽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니까.. "

" 그래도 일단 얘기는 들어봐야지..   진희씨를 위해 좋은 정보를 주고 싶어서 그런다니까.. "

" 아직도 분위기 파악 못 하시네..   남편도 귀찮다고 버린 년이, 뭐가 이쁘다고 태호씨를 받아줘야 되는건지 모르겠네.

그래, 그 좋은 정보란게 뭐길래 자꾸 귀찮게 하는지 들어나 봅시다. "

" 자, 일단 올라가서 얘기하자구..   들으면 아마 진희씨도 좋아할테니까. "

이곳에서 해도 될 얘기를 호텔방으로 들어가자는 뜻이다.    점점 수렁속으로 빠져 드는걸 모르는 불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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