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네 신랑도 참 대단하다, 얘.. "
" 이해심이 많은 편이야.. "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 문상객들이 하나 둘 장례식장을 떠나고, 진호의 친구인 윤철이도 내일 다시 오마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선뜻 따라 나설수가 없었던 성희다.
진호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연락을 받고서는, 외아들인 그가 겪어야 할 외로움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가 않는다.
그가 선영이의 남자로 자리 매김됐던 그 시절부터 남몰래 흠모를 해 왔기에, 진호의 옆자리를 지켜주고 싶었다.
" 나 같으면 예전 시어머니 상까지 치루겠다는 마누라가 못마땅 할텐데.. "
친구 희수의 오빠이기도 한 민수의 와이프로 살고있는 선영이가, 소복까지 차려 입고 문상객을 맞이하는건 도리에
어긋난다고 보여진다.
어쩔수 없이 남편이 바뀌긴 했지만, 지금의 민수에게 헌신을 해야 할 것이고, 진호와는 거리를 두는게 올바른 일일 것이다.
" 모른척 할수가 없었어.. 수경이 할머닌데.. "
" 그러다가 희수 집에서 알게라도 되면 어쩌려구 그러니, 니가 좀 더 조심해야지.. "
" 그래야겠지.. 나도 맘이 편치는 않어.. "
어두운 기색이 선영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희수 부모 입장에서도, 당신들의 며느리가 애까지 낳은 과거가 있는
여자란걸 알게라도 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 잠 좀 자두지 그러냐.. "
영정을 지키던 진호가 우리가 앉아있는 휴게실로 나와 선영이에게 말을 건넨다.
" 난, 괜찮어.. 진호씨나 좀 쉬던가.. "
" 이거 걸쳐, 추워 보인다.. "
들고 나온 두툼한 코트로 선영이의 어깨를 감싸주는 진호다. 대학 시절에도 지금처럼 선영이를 아껴주는 걸 지켜
봐야만 했었다.
" 오빠는 선영이만 챙기냐, 나도 추운데.. "
" 그랬어? 미안하다.후후.. 근데, 집에 안 가도 되냐? "
" 집에 가야 아무도 없는데, 뭐.. "
진호와 선영이 둘만 남겨두고 가기는 싫다. 둘 사이에 어떤 감정이란게 남아 있는지 궁금한 탓이다.
" 출근 안 해? "
" 그렇다니까, 잠이나 더 자.. "
엊저녁 우혁이를 처가집에 맡기고는 인희에게로 온 민수다. 진호의 모친상을 지키고 있을, 선영이도 없는 빈 집을 홀로
지키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 사장 빽이 좋긴 하네.. "
" 내가 뭣 때문에 그 인간 눈치를 보냐, 내 지분이 얼만데.. "
" 어머, 오빠 돈 많은가부다.호호.. "
침대에 일어나 앉았던 인희가 시트를 들추더니 안으로 파고 든다. 술 파는 직업을 가져서인지는 몰라도 선영이와 달리
착착 감기는 말투가 귀엽다.
" 근데 말이다.. 가게 하나 차리려면 얼마나 가져야 되냐? "
" ....우리 룸? 오빠가 차리게? "
" 왜, 내가 하면 안돼? "
" 보기엔 쉬워 보여도 만만한게 아냐.. 아는 손님도 많아야겠지만 아가씨 관리하는 것도 힘들거든.. "
" 그거야 니가 해야지.. "
" 나한테 몇 %나 줄건데.. "
돈 얘기가 나오자 눈빛마저 반짝이는 인희다. 그런 그녀가 못마땅 하지만 지금으로선 인희의 도움이 절실하다.
" 니가 한번 얘기해 봐, 얼마나 줘야 할지.. "
" 25 %는 돼야지, 아가씨들 끌어오는 선금은 오빠가 준비하고.. "
" 선금? 그런것도 있냐? "
" 에구 ~ 촌스럽기는.. 걔네들 선금 없으면 안 움직여, 연희하고 미연이만 해도 빚이 천만원씩이야.. 최소한 거기에 500
씩은 얹어줘야 데려온다구.. "
가게를 꾸미고 세무서에 신고만 하면 될줄 알았더니, 예상외로 더 많은 돈이 들어가야지 싶다.
" 가게 규모는.. "
" 룸 몇개만 만들려도 최소한 100평은 돼야지.. "
이곳 강남쪽의 임대료도 만만치 않을것이다. 어림잡아 10억 정도는 가져야 움직일수 있다는 계산이다.
" 아가씨는 몇사람이나 필요할까? "
" 처음부터 많이는 필요없어, 그런다고 손님이 몰려 오는건 아니니까.. 한 열명 정도로 시작해도 돼.. "
" 미리 아가씨들 접촉이나 해 둬.. "
" 어머, 진짜로 하게? 그럼 오빠랑 나랑 동업자네.호호.. "
내 가슴 위로 엎디어 턱을 받친 인희의 손 하나가 가랑이 사이로 들어오더니 거시기를 조물락거린다.
" 이제 그만 가자, 수경이가 피곤한가 봐.. "
" 알았어, 차에서 조금만 기다려.. "
뼈를 태우고 절구에서 가루까지 내는 모든걸 지켜보고 납골당에 안치를 했다.
처음 진호의 집에서 그 분을 만났던 기억이 떠 오른다.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반갑게 맞아 주셨던 분이다.
예기치 않은 진호의 사고로 인해 그 분과의 인연이 끊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마지막 가시는 길은 지켜드릴수 있어
한결 마음이 가볍다.
마지막 눈을 감으시면서도 나를 보고싶어 하셨고 내 손을 애써 힘주어 잡으셨다.
그 분의 속 뜻이야 깊이 공감을 한 터이다. 어쩔수 없이 헤어질수 밖에 없었지만, 돌아가신 시어머니로서는 진호와
수경이를 부탁까지 하셨다.
영정 사진속에서 따뜻하게 웃고 계시는 시어머니께 죄송스런 마음이 들어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열달을 뱃속에 품어 낳은 수경이가 아줌마라고 부를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선영이다.
모든걸 되 돌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우혁이까지 태어난 이 마당에 민수를 멀리할수도 없음이다.
한번 꼬여진 실타래를 풀어 버리기에는 너무도 멀리 지나쳐 온 것이다. 마치 친 딸처럼 며느리를 이뻐해 주셨던
시어머니의 영정에 머리숙여 사죄할 뿐이다.
"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어머니도 이해 하실거야.. "
" 수경이는 자네.. "
납골당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치영이의 승용차에 탔더니 수경이가 피곤한 듯 곯아 떨어져 있다.
" 며칠을 장례식장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잖어.. "
" 누나는 집에 갈거지? "
" 아냐, 그냥 양평으로 가자.. "
민수나 친정에서 걱정들을 하겠지만, 피곤에 지친 수경이를 두고 가자니 맘이 편치가 않다.
" 괜찮겠어? "
" 신경쓰지 마, 진호씨도 피곤할텐데.. "
가뜩이나 다리까지 불편한 진호 역시 힘들어 보인다. 저녁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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