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나, 나.. "
" 그래, 웬일로.. "
진호의 하우스에서 자고 온지 이틀이 지난 날, 치영이에게서 핸폰이 왔다.
" 저기.. 매형 어머니가 누나가 보고 싶대.. 많이 아프셔.. "
" 얼마나.. "
" 사람을 잘 몰라 봐.. "
" 나 좀 데리러 와 줘.. "
첫 눈이 내리던 그 날, 하우스에서 진호와 뒤엉켜 있는걸 남편인 민수가 지켜 봤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분간 진호를 찾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을 했지만, 친정 엄마보다도 더 끔찍이 나를 아껴 주셨던 그 분께서 편찮으시다는데
모른척 집에 붙어 있을수는 없었다.
" 왔어? "
집에까지 태우러 온 치영이의 승용차로 양평에 도착해 작은 방문을 열었더니 진호가 그 곁을 지키고 있다.
" 어떠셔.. "
" 자꾸 널 찾으시네.. "
두어번 고개를 외로 젓는 진호를 보고서야 그 분의 위중함을 알았다.
진호가 앉아있던 자리를 대신 꿰차고 앉아 앙상해진 그 분의 손을 쥐었다.
" 어머니, 저예요.. "
전혀 움직임이 없던 그 분의 손에 미약하나마 힘이 생긴다. 내 손을 마주 잡으려는 기운이 느껴진다.
" 아가.. "
" 네, 어머니.. 저 선영이예요.. "
초점도 없이 흐릿하던 눈에 힘이 실리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 보신다.
" 왔구나.. "
" 네, 왔어요.. 기운 차리세요.. "
" 아가.. "
" 네, 어머니.. "
" 나, 이제.. 그만 가련다.. "
띄엄띄엄 말씀을 이어 가는게 힘들어 보인다. 이미 자신의 기력이 다 했음도 알고 계신듯 하다.
" 그게 무슨 말씀이래요.. 안돼요, 더 오래 사셔야죠.. "
" 애비하고.. 수경이.. 니가 옆에.. 있어야지.. "
마지막 가는 길까지 진호와 수경이가 염려가 되는 듯, 맞잡은 내 손에 힘이 전해진다.
" 네.. 옆에 있을께요.. 어머니도 지켜보셔야죠.. "
" 고맙구나.. 선영아.. "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다. 조금이나마 그 분에게 힘을 실어드리고 싶었다.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이 감기고, 맞잡은 손에도 힘이 빠지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구고야 만다.
" 어머니 ~ "
돌아가신 그 분을 놔두고 돌아설수가 없기에 병원의 영안실까지 와야 했다.
" 나야.. "
" 그래.. "
그 분의 마지막을 지켜 드리기 위해 병원에 남기로 결심을 하고는 남편에게 핸폰을 했다.
" 진호씨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
" 소식 들었어.. "
치영이와 진호가 몇군데 부고를 알리는 바람에 그의 귀에까지 전해진 듯 하다.
" 여기 병원이야.. 당분간 집에 못 가.. "
" .... 우혁이는.. "
" 친정에다 맡길께.. "
" .... 그냥 거기 있어, 내가 데려다 줄테니까.. "
택시를 잡아 타서라도 친정집에 우혁이를 부탁하려고 했건만, 남편이 대신 그 일을 맡겠단다.
" 내꺼도 시켜.. "
경황이 없는지라 영안실 관계자와 진호가 이것저것 협의를 하는중에, 장례복을 주문하길래 치마저고리까지 부탁했다.
진호가 하나뿐인 아들인지라 손님은 많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촌 가족들과 진호의 친구들이 전부였다.
늦은 저녁이 되자 진호의 대학 친구인 윤철이와 성희가 같이 들어선다.
" 왔니.. "
" 그래, 어떻게 된거야.. "
어머니의 영정에 인사를 드린 그네들이 음식상에 앉길래 아는척을 해야 했다. 소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본 성희가 염려를
하는 중이다.
" 오랜만이네, 선영씨.. "
" 그러네, 선배도 잘 지내지.. "
" 응.. 오기 힘들었을텐데, 고맙네.. 진호에게 힘이 돼 줘서.. "
" 니 남편도 아니? "
" 응, 조금 있으면 올거야.. "
나와 진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다. 나와 결혼을 하기 위해, 남편인 민수가 그들에게 입 막음까지 부탁
했던 일도 있었던 것이다.
" 니 남편이 속이 깊은 모양이네.. "
" 응, 그런 편이야.. "
진호와의 만남으로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는 남편이지만, 친구인 성희에게까지 시시콜콜 얘기를 할순 없다.
영안실 안으로 남편이 들어서더니, 우리쪽에 한번 시선을 주고는 영정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 안녕하세요.. "
" 오랜만이네, 성희씨.. "
진호와 같이 우리쪽으로 온 남편이 성희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자리에 앉는다.
" 저녁 안 먹었지? "
" 아냐, 약속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해.. "
밥이라도 챙겨줘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나에게 다시 앉으라는 손짓을 하는 남편이다.
" 자꾸 가라는데도 저러고 있네.. "
" 뭘, 돌아가신 분에게 그 정도는 해야지.. "
진호가 미안한 듯 남편에게 말을 건넸고, 주위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마지 못해 내가 여기 있음을 용인하는 뜻을 전한다.
" 참, 이번 토요일이 희수 결혼인데.. "
" 그때 올거지? "
" 그럼요, 제일 친한 친군데.. "
남편과 성희가 시누이인 희수의 결혼 문제로 화두를 돌렸고, 중간에 낀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 사업은 잘 되시죠? "
" 응, 그렇긴 한데 다른걸 해 보려고.. "
" 어머, 왜요.. 회사 규모가 커졌다고 희수가 자랑까지 하던데.. "
" 형님이 계시니까 굳이 나까지는 필요없어.. 이번 기회에 독립을 해 볼까 싶어.. "
아주버니와 자주 마찰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 정도까지 딴 생각을 품고 있는줄은 몰랐다.
" 나, 먼저 갈께.. 결혼식장에서 보자구.. "
" 네, 오빠.. 들어가세요.. "
몇마디 안부를 건네던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혁이를 들쳐 안고 그 뒤를 따랐다.
승용차에 우혁이를 갈무리한 남편이, 내게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채 시동을 건다.
못 마땅한 그의 속내를 감안해, 그저 떠나가는 승용차를 멀거니 바라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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