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나, 가야지.. "
" 오늘은 수경이랑 자고 갈래, 너 혼자 가.. "
저녁을 먹고 동생 치영이와 함께 안마당으로 나온 선영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시골이래도 밤하늘에 별이 뜨기 시작한다.
" 매형이 싫어할텐데.. "
" 집에 없어.. 여기 올때마다 집에 안 들어와.. "
" 외박을 한다고? 하긴, 누나가 여기 오는게 달갑진 않겠지.. "
처음 외박을 하고 들어온 날 커피를 끓이고 있는데 뒤에서 다가와 안은 남편에게서 낯선 향수 냄새가 났다.
그 후로도 양평에 내려오는 날이면 남편은 버젓이 외박을 했고, 그런 그의 옆에서 자는게 고역이었다.
서로가 말은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역시 집에 가 본다 한들 남편이 있을리는 만무하지만,
설사 있다 한들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마주하고 싶지도 않음이다.
" 왜들 안 가고 있어? "
" 누나가 오늘 자고 가겠대.. "
치영이와 둘이 있는 중에 진호가 하우스에 볼일이 있는 듯 집에서 나왔다.
" 어쩌려구.. 민수 선배가 그러래? "
" 응, 괜찮어.. "
" 나, 먼저 갈래.. 친구랑 약속있거든.. "
" 운전 조심해.. "
헤트라이트 불빛을 밝힌 치영이의 승용차가 소롯길을 구불거리며 지나더니 이윽고 눈 앞에서 사라진다.
" 정말 괜찮겠어? "
" 그렇다니까.. 이 저녁에도 하우스에 일이 있는거야? "
" 몇가지 체크할게 있어.. 서양란 종류도 더 늘려야 하고.. "
" 그러다 진짜 농사꾼 되겠네.. "
워낙에 조용한 성품이긴 해도, 다리가 불편한 관계로 마땅히 할일이 없어 이런곳에 쳐박힌게 아닌가 싶어 썩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름 얼굴도 밝아지고 일에 열심인걸 보니 조금은 안심도 된다.
" 시작하길 잘한거 같애, 잘하면 보람도 찾을것 같고.. "
" 들어가 봐.. 난 얘들한테 가 볼래.. "
" 그래라, 난 하우스에서 잘께.. "
진호가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간 뒤 그곳에 환하게 불이 밝혀진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 실의에 빠져 지내던 그 때와는
전혀 다르게 의욕마저 보이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 수경이 뭐 해? "
" 연속극.. "
아무래도 시골이고, 놀아줄 사람이 아빠밖에 없다 보니 아직 어린 수경이가 이해도 못할 주말 연속극을 보고 있다.
" 재밌어? "
" 저 아줌마 디지게 나쁘다.. 아저씨한테 밥도 안 주고, 할머니한테도 막 덤벼.. "
이제 며칠 있으면 우리 나이로 6살이 된다. 뭐든지 궁금해 하고 호기심을 가득 담고는 참견까지 한다.
" 그렇구나, 진짜 나쁜 아줌마네.. "
" 근데, 집에 안 가? "
" 응, 오늘은 자고 갈거야.. "
" 그럼, 나 우혁이 옆에서 잘래.. "
" 우혁이 옆에 이불 깔아줘야겠네.. "
수경이와 우혁이가 나란히 누워 있는것만 봐도 저절로 배가 부른 기분이다. TV를 끄고 스탠드 조명만을 켰다.
작은방에서 하루종일 홀로 누워 계시는 진호 어머니가 궁금해 방문을 열었다.
" 어머니 주무세요? "
" 오늘은 일찍 왔네, 술도 안 마신것 같은데.. "
" 술 친구가 없어서 왔어.. "
어차피 토요일인지라 집에 가 봐야 선영이는 없을것이다. 빈집을 지키고 있노라면 갖은 잡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
진호에게 가 있는걸 뻔히 알고 있는데, 그 배신감을 홀로 삭히고 있을 자신이 없음이다.
" 그래서, 나한테 친구해 달라고? "
" 왜, 안되나? "
" 너무 이르지, 장사는 어쩌구.. 미연이하고 연희 불러 줄테니까 같이 놀아.. "
" 너는.. "
" 나야 더 있어야지.. 아직 장사도 못했는데 오빠랑 놀고 있을순 없잖어.. "
하기야 이제 8시가 지났을 뿐인데, 인희를 마담으로 스카웃 한 사장 입장에선 내 테이블에만 있는 꼴은 보기 싫을것이다.
그녀 역시 이곳에 매인 몸에 불과하기에, 자신이 맡은 매상은 책임져야 할 종업원일 뿐이다.
" 오빠야 ~ 보고 싶었어.. "
" 미투 ~ 호호.. "
몸에 착 달라붙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연희와 미연이가 들어선다.
" 도대체 니네들은 무슨 배짱으로 자꾸 이뻐지냐.. "
" 누가 더 이쁜데.. "
" 에이 ~ 속지마라 연희야.. 인희 언니가 제일 이쁠텐데, 뭐.. "
" 맞아, 속을뻔 했네.치 ~ "
장사속이란걸 알면서도 그녀들의 애교에, 선영이로 인해 응어리 진 마음이 조금은 풀어진다.
인희랑 처음 몸을 섞은지도 벌써 한달가량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쓴 술값만도 천만원은 족히 넘을것이다.
계속 이런식으로 이곳에 올 양이면, 차라리 룸싸롱을 하나 얻어 장사를 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회사 대표로 있는 형 영수와 계속 으르렁 거리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나는 중이다.
" 이쁘기야 니들이 더 이쁘지.. 나이많은 내가 좋아하면 주책이라고 할까 봐 허벅지를 꼬집잖니.. "
" 어머,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조로콤 거짓부렁만 늘어 논다니.. "
" 그러게 말야.. 인희 언니가 그랬어, 남자들은 죄다 도둑놈 뿐이라고.. "
" 어 ~ 얘네들 보게.. 나같이 착한 사람을 몰라보면 천벌 받어, 임마.. "
회사일이며 선영이 문제로 골치가 아파도, 이렇게 웃고 떠들때는 잠시나마 잊을수 있어 좋았다.
" 진짜야, 오빠? "
" 허 ~ 진짜라니까.. "
" 그럼,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마음에 드는데.. "
" 난, 거기에 털 많은 여자가 좋아.. 아늑하거든.후후.. "
" 털이야 내가 죽이지, 보여줄까? "
오른쪽에 앉아있던 연희가 일어서더니 가죽으로 된 미니스커트의 지퍼를 열고는 팬티마저 내린다.
제 말마따나 수북한 정도로 넓은 음모가 탐스럽게 둔덕을 덮고 있다.
" 이 년이 근데, 언니가 보면 어쩔려구.. 빨리 앉아.. "
" 뭐, 어떠니 오빠 와이프도 아닌데.. 오빠, 맘에 들어? "
" 그래.. 거기는 니가 캡이다, 속 궁합이야 몰라도.. "
" 그건 미연이가 더 잘해.. 같은 여자라 잘은 모르겠는데, 쟤한테 한번 빠지면 남자들이 맥을 못 쓰데.호호 "
" 하여간에 기집애가 쓸데없는 소리는.. "
" 니 말이 진짠지 언제 감정 한번 해봐야 쓰것다.후후..
빈속에 양주가 들어갔는데도 취하질 않고 맹숭거릴 뿐이다. 취하지도 않는 술을 넘기는 것도 시들하다.
'살아가는 이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가는 이유 18 (0) | 2012.12.04 |
---|---|
살아가는 이유 17 (0) | 2012.12.03 |
살아가는 이유 15 (0) | 2012.11.29 |
살아가는 이유 14 (0) | 2012.11.28 |
살아가는 이유 13 (0) | 2012.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