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 22

바라쿠다 2012. 12. 21. 16:00

" 어머나, 어쩐일들이야.. "

" 시간이 남길래 같이 와 봤지.. "

치영이가 바쁘다고 하길래 택시를 대절해서 양평에 왔더니, 성희와 진호의 친구인 윤철이가 집 앞 정원에서 서성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 지인들의 시선이 부담되어, 그네들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선영이다.    

진호가 어이없이 떠난 후에 민수가 새로운 인연이 되고자 곁으로 다가 왔을때부터, 자신의 과거를 알고있는 친구들

앞에서는 떳떳할수가 없었다.

민수가 나서서 앞가림을 한다고 단속을 했다지만, 뻔뻔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자신이었기에 항시 죄를 진 심정이기도 했다.

자신의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있는 주변 친구들 모두와 시댁 어른들을 우롱한 바와 진배가 없기 때문이다.

" 진호씨는 안 보이네.. "

" 거래처 꽃시장에 나갔대, 지금 오는 길이래.. "

" 근데, 니 동생이 진호를 도와준다며? "

그나마 진호와 절친한 사이인 윤철이야 어느정도 이해는 하겠지만, 대학 다닐때부터 진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성희는

내가 이곳에 오는것조차 달갑지 않게 여길것이다.

" 응, 그렇게 됐어.. "

" 좀 그렇다, 얘..  예전 처남하고 매부지간인데, 남들이 보기에도 그렇구.. "

" 뭐, 어때..   진호 다리도 불편한데 오히려 잘 된 일이지.. "

" 잘 되긴 선배는, 남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어..   선영이 시댁에서 수경이 일을 알기라도 해 봐, 난리가 날텐데.. "

윤철이가 나서서 진호와 치영이의 입장을 옹호했지만, 성희는 정색을 하며 옳지 않은 일이라며 못까지 박는다.

겉으로는 나를 위하는 척 하지만 속내는 다를것이다.     진호 옆에서 내가 서성이는걸 견제 하는걸로 보인다.

" 민수 선배 자신이 숨기고 한 일인데 알리가 없잖어..   그리고 성희 니가 너무 앞서 갈 필요도 없구, 가뜩이나 선영이도

힘들텐데 우리라도 감싸 줘야지.. "

" 내가 뭘, 나도 걱정이 되니까 그런거지..   자꾸 왔다갔다 하다 보면 남들 눈에 띌수도 있잖어.. "

" 됐어, 그만들 해..   내 얘기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안 했으면 좋겠어.. "

" 그 봐라, 괜히 선영이만 불편하게.. "

" ..................... "

 

" 이런 말 물어봐도 될런지 모르겠다.. "

" 뭔데.. "

진호와 치영이가 돌아 왔기에, 차 안에서 잠이 든 수경이를 안아들고는 안방에 눕혔다.

대충 집안을 정리하고 저녁 찬거리를 준비중인데 윤철이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 성희가 진호에게 딴 맘이 있다더라..   나더러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온거야.. "

" ..................... "

" 물론 니들이 다시 합치지는 않겠지만, 성희의 바램대로 그냥 놔 둬도 되는지 궁금해서.. "

이미 성희의 욕심을 알고는 있지만 내가 나설수는 없는 일이다.    어줍잖게 싫어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진호나 민수에게

구설만 생기지 싶다.

" 둘이 같이 있어? "

" 응, 하우스에.. "

"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뭐..   내가 참견할 일도 아니구.. "

지금의 입장으로선 모른척 할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언감생심 어림없는 일이라고, 성희에게 반박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그럴수도 없기 때문이다.

" 진호가 안 돼 보여서 그래..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그 전에 니네 둘이 워낙 어울리는 짝이었잖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내 맘도 편치가 못해.. "

교내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큼 소문난 커플이었다.     남들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만큼 공인된 짝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픈 선영이다.     진호와 수경이의 뒤를 봐 주고 싶어도, 그럴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 다 지난 일이야, 이제 와 뭘 어쩌겠어.. "

" 진호 짝으로는 니가 딱인데..   성희 쟤는 어림도 없어.. "

" 그거야 모르지, 진호씨 속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고.. "

" 내가 진호를 모르냐, 모르긴 해도 아마 평생 혼자 살걸..   성희가 뭘 모르고 저 혼자 덤벼 드는거지.. "

윤철이 말마따나 진호도 성희한테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을것이다.     다만 그걸 본인만이 모르는 성희가 문제인 것이다.

어줍잖게 성희 본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줬다가 마음의 상처라도 받게 된다면, 그것 역시 곤란한 일이다.

 

" 언제쯤 오픈할건데? "

" 글쎄, 한달쯤.. "

호프집을 하던 기존의 시설물들을 헐어내고 새로이 인테리어를 시작한 가게로 인희와 함께 온 민수다.

백여평이 가까운 넓은 가게 안에 일하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목재를 짜르는 기계소리가 요란하다.

" 제법 크네, 룸이 대여섯개는 나오겠어.. "

" 업자도 그러더라, 각 룸마다 화장실까지 갖추려면 그 정도 되겠다면서.. "

" 룸이 많다고 좋은건 아냐, 얼마나 손님이 오느냐가 문제지.. "

" 너한테 달렸어, 술만 마시러 다닌 내가 뭘 알겠냐.. "

형이랑 계속 다투면서까지 회사일에 매달리기도 싫었지만, 진호가 나타남으로 해서 선영이와의 사이가 어색해 진게

견디기 힘들었던 요즘이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어 저지르긴 했지만, 잘 되리란 보장도 없어 심란스럽다.

" 당연하지..   오빠는 장부 정리나 확실하게 해, 영업은 내가 할테니까.. "

" 아가씨들은? "

" 일단 7명은 됐어, 걔네들만 해도 룸 2개는 돌아갈거야..   애들한테 줄 선금은 있지? "

" 한 사람당 천만원이라며..   그 정도는 지금도 줄수 있어.. "

" 됐어, 그럼..  뭐 할거야, 난 가게로 갈건데.. "

" 할일도 없어..  인희나 따라가지,뭐.. "

회사도 그만 둔 마당에 마땅히 가야할 곳이 없어졌다.     토요일인지라 선영이가 진호와 함께 있을 것이 뻔한데, 혼자

집을 지킨다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날 밤 괜히 진호를 찾아갔다가, 봐서는 안 될 그네들의 섹스를 지켜 본 뒤론 더욱 선영이를 마주하기가 싫어진다.

" 앞으로는 이미지 관리 잘 해야 돼, 괜히 애들한테 가볍게 보이지 말구.. "

" 그런가? "

" 그러엄 ~, 걔네들이 나이는 어려도 웬만한 남자 하나쯤은 찜 쪄 먹고도 남는 애들이야.. "

세상에 믿을 여자란건 없는지도 모르겠다.    몇년간을 같이 살아온 와이프마저 버젓이 옛날 남편에게 정을 주고 있다.

내 돈을 주고 술을 마실때는 그저 손님과 아가씨의 관계지만, 앞으로 같이 한 솥밥을 먹게 된다면 인희 말대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맞지 싶다. 

" 가볍게 저녁이나 먹고 가자.. "

" 그래 그럼, 오빠가 사 줄거지? "

마침 근처에 복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가 있어 인희와 마주 앉았다.

" 근데 오빠는 집에를 왜 안 가는데..   와이프 있다며.. "

" 우린 서로 터치 안 해..   나름대로 사생활이 있잖어.. "

" 그게 무슨 부부야, 완전 남남이지..   혹시 와이프한테 내 얘기도 했어? "

" 그건 아니지만 알아도 상관은 없어.. "

" 어머, 진짜 이상하게도 산다..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

" 쓸데없는데 신경쓰지 말고 소주나 한잔 따라.. "

진호가 나타난 뒤로 모든것이 뒤죽박죽 돼 버렸다.     선영이와의 달콤했던 결혼 생활도 시들해진 느낌이다.

인희의 말마따나 근래 들어 내 신상의 많은 변화로 인해, 선영이와 진호를 어찌 해야 할지 판단조차 서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이대로 지낼수도 없는지라, 조만간 어떤 결론이라도 내야 하지 싶다.

'살아가는 이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가는 이유 24  (0) 2013.03.08
살아가는 이유 23  (0) 2013.03.07
살아가는 이유 21  (0) 2012.12.13
살아가는 이유 20  (0) 2012.12.07
살아가는 이유 19  (0) 2012.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