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방으로들 들어가, 찌게만 가져가면 돼.. "
진호와 선영이의 동생 치영이와 함께 집안 거실로 올라서자, 선영이가 주방에서 나오며 저녁 준비가 다 됐노라고 이른다.
" 어머! 미안하다 얘, 도와주지도 못하고.. "
" 괜찮어, 별로 차린것도 없는데.. "
진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아이를 챙기기 위해서라지만, 선영이가 이곳에 집착하는게 영 맘에 들지 않는 성희다.
조금 전 하우스에서 진호의 맘을 떠 봤지만 보기좋게 거절을 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빠도 새출발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내 말에 아직까지는 그럴 마음이 없노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곁에서 지켜보는게 안쓰럽기도 하지만 선영이가 이곳에 자주 오는것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고, 만약에 시댁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좋지 못한 일이 생길수도 있으니, 나라도 엄마 없는 수경이를 돌봐주면 어떻겠냐고 자존심마저
팽개친 채, 대 놓고 들이대 보기도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한 뒤다.
이미 안방에는 윤철 선배와 진호의 딸인 수경이가 밥상머리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무슨 얘기가 그리 많어? 배고파 죽겠는데.. "
윤철이가 기다리기가 지루했다는 듯 하우스에서 진호를 붙잡은 나를 탓하는 눈치다.
" 얘기는 무슨, 진호씨 일하는걸 도와주다 왔구만.. "
진호와 나눴던 얘기를 알려줄 모양새가 아니었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댔다.
" 아빠~ 내 옆에 앉어.. "
" 그래, 우리 공주님은 벌써 씻은 모양이네.. "
" 응, 아줌마가 씻겨 줬어.. "
" 머리도 잘 빗었구나, 정말 이쁘다.. "
진호와 그의 딸 수경이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는 선영이에게 묘한 질투심마저 피어오른다.
거실에 놓여진 넓은 상에 조목조목 맛깔스런 반찬들이 올려져 있고, 노란 카레를 담은 냄비에서는 모락모락 더운 김이
솟는다.
" 수경이 맛있게 먹어라.. "
수경이의 밥그릇을 가져가더니 카레를 올려 비비고는 다시 수경이 앞에 내미는 선영이다.
" 응, 아줌마.. 나 카레 디게 좋아.. "
모두들 배가 고픈지 수다스런 수경이의 옹알거림도 귓등으로 흘린채 저녁을 먹기에 바쁘다.
" 오마나~ 진짜 오빠네.. "
" 오빠 안녕~ "
룸에서 혼자 언더락스 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연희와 미연이가 생글거리며 들어선다.
" 어서들 와라, 근데 니들 점점 이뻐진다.. "
" 히히~ 누가 더 이쁠까.. "
오른쪽으로 무릎을 바짝 붙이고 앉은 연희가 팔장까지 끼고는 턱 밑에 얼굴을 들이댄다.
" 하여간에 저 여우년은.. 인희 언니가 보면 어쩌려구, 좀 떨어져 이년아.. "
" 어때, 지금은 내 손님인데.. 그치~ 오빠~ "
" 그래 맞다.. 지금은 니들꺼 맞어,후후.. "
" 그것 봐, 이년아.. 지년도 오빠한테 마음이 있다면서 괜히 질투는,호호.. "
와이프인 선영이가 양평에서 진호와 있으리란 생각에, 무작정 취하고 싶은 민수에게는 생기 발랄한 연희의 재롱이 여간
이쁜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연희의 애교에 모든걸 잊고 싶은는 생각이 더 큰지도 모른다.
" 근데, 오빠가 인희 언니한테 룸싸롱을 차려준다는게 진짜야? "
" 왜, 거짓말 같애? "
" 언니가 갑자기 가게를 옮기자니까 혹시나 했지.. 여기보다 더 크다면서? "
" 아마 그럴걸.. 많이 도와줘.. "
" 오빠가 하는거 봐서 호호.. 맛있는거 많이 사 주면.. "
" 말만 해, 니들이 먹고 싶다는데 뭐가 아깝겠누,후후.. "
연희와 미연이를 상대로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면서는 선영이에 대한 배신감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느낌이다.
" 나 술 마시고 싶은데, 여기 말고 밖에서.. "
" 밖에서? "
" 응, 여기는 답답해서 싫어.. "
" 저년이 왜 저런다니.. "
여전히 살을 맞대고 붙어 앉아있는 연희가 조르는 눈길로 나를 쳐다본다.
" 그럴까, 그럼.. "
무작정 지금의 현실을 잊고 싶은 기분이였기에 연희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 오빠 먼저 나가서 30분후에 핸폰해.. "
" 그래 알았어.. "
" 난 몰라, 들키면 난 모르는 일이야.. "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란 것도 소용이 없다. 진호의 밑에 깔려 쾌락에 떨던 선영이를 생각하면 끝없는 분노가
치밀뿐인지라 무슨 짓이라도 해서 그 기억을 지우고 싶을뿐이다.
" 많이 기다렸어? "
" 아냐, 몇잔 안 마셨어.. "
그 곳에서 한 블럭 떨어진 퓨전포차에 앉아 연희를 불렀다.
룸에서 입고 있던 미니 스커트 위에 짧은 바바리만 감싸고 있어, 술집 안 남자 손님들의 눈길을 끌만큼 싱그러운
자태를 뽐낸다.
" 오빤 나보다 인희 언니가 더 이뻐? "
" 이쁘기야 니가 더 이쁘지.. "
" 피~ 거짓말.. "
맞은편에 앉아 테이블 위로 팔을 괴고는 나를 뚫어져라 눈길을 주던 그녀가 소주잔을 들어 붉은 입술을 적신다.
뭐랄까, 연희의 은근한 호기심이 담긴 눈길이 예사롭지 않아 보임은 나만의 착각인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 진짜야,임마.. 니가 훨 이뻐.. "
" 그런데 왜 나한테 연락한번 없었는데.. 먼저번에 핸폰한다고 했잖어.. "
" 그러고는 싶었는데 솔직이 용기가 안 나더라.. 너하고는 너무 나이 차이가 많찮어.. "
" 에게~ 그딴게 무슨 소용이라고.. 나이가 밥 먹여주나? "
" 그래도.. 내가 도둑놈이 되는 기분이랄까.. "
인희도 이쁜 편이지만 통통 튀는 연희나 미연이에 비하면 아무래도 싱싱한 맛은 떨어진다. 그런면에서 연희가 욕심이
나기는 하지만 대놓고 작업을 걸자니 나이차 때문에 꺼리게 됐을 뿐이다.
" 웃기시네.. 남자들은 다 똑같애, 어린 영계를 더 좋아한다니까.. "
" 그럴지도 모르지, 어쩌면 니 말이 맞겠구나.. "
" 오빠~ "
" 무슨 목소리가 그다지도 노리끼리 할까,후후.. "
" 나 오늘 오빠 잡아 먹을래.. "
" .................. "
" 그래도 되지? "
이래도 되는지 잠시 헷갈린다. 성인군자는 분명 아니더라도, 선영이와 결혼한 뒤로는 맹세코 바람 한번 피어본
적이 없었다.
선영이 앞에 진호가 나타나고 그들의 인연이 다시 이어지는걸 직접 목격한 뒤로는 도통 평상심을 갖기가 어렵다.
핑계삼아 인희와 몸을 섞었고, 가뜩이나 형과의 마찰도 있는 터라 술집까지 해 볼 요량까지 하게 된 지금이다.
열살이나 어린 연희의 다가섬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토록 뻔뻔해도 되는지, 인생의 앞날이 어떤식으로
펼쳐지게 될지 기대감마저 생긴다.
" ..글쎄다.. 너한테 잘해 줄 자신은 없는데.. "
" 고리타분하기는.. 뭘 어쩌자는건 아냐, 그냥 오빤 어떤 느낌일까 궁금할 뿐이야.. 언니한텐 비밀로 해 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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