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23

바라쿠다 2012. 2. 6. 12:00

" 배선생 이리와, 내 어릴적 친구..  여기있는 사람이 이 가게 주인이야.. "

개업하는 '이차선 다리'에 인숙이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주삣거리며 들어서는데, 집들이에 오는 사람처럼 손에는

휴지 한묶음을 들고 있다.     

미진이가 일어서서 휴지를 받아들곤 인숙이를 유심히 바라본다.

핸폰으로 통화할때 얘기 했던것처럼 제법 굴곡을 드러낼 만큼 몸매에 달라붙는 치마를 입었는데, 안그래도 늘씬한 키에

하이힐까지 신어서 그런지 각선미가 감탄을 자아 낼 정도로 군더더기 하나 없다.

연두색 코트를 벗고 털실로 짠 목도리를 풀어 쇼파등에 걸치자 그녀의 몸매가 확연히 드러난다.     

검은색 쟈킷 속에 연두색의 폴라를 입었는데 적당히 솟은 유방의 선마저 시선을 끌고, 볼륨있는 엉덩이를 타이트하게

감싼 검정색 가죽치마가 터질듯이 팽팽한데, 짧은치마 사이로 쭉 뻗은 다리가 유혹적이다.

" 어서오세요, 이쁜 후배가 한사람 온다고 하더니 정멀 미인이시네요. "

미진이까지 인숙이의 자태를 보며 의심스런 눈길을 보이고, 평소에 몸매에 자신감을 가졌던 수정이도 자신보다 어리고

늘씬하게 빠진 인숙이를 경계하는 빛이 역력하다.

" 처음보는 후배네, 아무래도 수상한데.후후.. 하여간 반갑수다. "

친구인 민식이가 느물거리며 쇼파에 앉은 인숙이에게 손을 내미는데, 얼떨결에 손을 내민 인숙이의 손톱에 연두색

메니큐어까지 젊은 여자의 특권인양 당당하다.  

" 학교 선생님이야..   먼저번에 부탁할 일이 있어서 만났는데, 마침 오늘에서야 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이리로 오라고

했어.. "

아직까진 이른 시간이라 가운데 테이블에만 두사람의 손님이 수봉이와 술을 마시는 중이고, 우리 일행은 입구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첫날의 매상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민식이가 개업식을 축하한다고, 양주를 큰걸로 시키고 오징어와 과일안주로 셋팅을 해 놓은 상태다.

마침 손님이 세사람 더 들어오자, 미진이와 수정이가 주문을 받기 위해 그쪽 테이블로 건너간다.

" 솔직하게 얘기해라, 인숙씨가 이쁜걸로 봐서 그냥 후배는 아닌것 같은데,흐흐.. "

수정이와 미진이가 다른곳으로 가자, 민식이 놈이 비아냥대며 못 믿겠다는 듯 찔러댄다.

" 실없는 소리 하지마..    인숙씨한테 실례하는거야.. "

사람은 좋은 녀석인데 가끔은 분위기에 맞지 않는짓을 하기에, 친구인 나로서도 그 입을 통제하기가 어렵다.

" 아뇨, 반쯤은 맞아요..  눈치를 주는데도 선배가 도통 맘을 주지 않네요.호호.. "

농담으로 받아야 할지, 진담인 양 대처를 해야 하는건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약간은 부르조아 냄새를 풍겼던 그녀다.       농으로 자신을 깍아 내리는 타입은 아니다.

" 그럼 그렇지..  이런 미인을 그냥 놔 둘 위인이 아니지.. "

자신이 제대로 봤다는듯 얼굴에 확신마저 스친다.    입이 가벼운 민식이를 그냥 놔 둘순 없다.

" 아니라니까, 인숙씨가 재밌자고 그러는거야..  앞서 나가지 좀 마라. "

친구놈인 민식이가 입이 가벼워서 걱정도 되지만, 혹여 인숙이를 가볍게 볼까 싶어 단도리를 해야 했다.

" 선배는 부담되나 봐요,호호..     저쪽에 있는 여자분한테 오해를 살까 봐 조심하는건 아닌가 몰라.. "

도대체 어느것이 진실인지 감을 잡을수가 없다.     분명히 가벼운 여자는 아닐진대, 이런식으로 자신의 속내를 보이는

의도를 모르겠다.

 

장사는 그럭저럭 되기 시작했다.      오픈하는 첫날치고는 아는 지인들이 팔아주는 매상을 빼고도, 기본 커트라인으로

잡은 사오십은 되지 싶다.      

그 정도면 가게세와 주방에서 일보는 아주머니, 수봉이의 페이는 맞출것이다.    수정이와 미진이의 경비는 빠듯하겠지만

밑지지는 않으리라 보여진다.

'이차선 다리'를 시작한 수정이와 미진이가 어찌 하느냐에 따라, 그 노력에 따른 결과도 나올 것이다.

워낙 경험이 없는지라 재밌어는 하면서도, 손님과 맺고 끊는것에 익숙칠 않아 끌려 다니는 경향도 다분히 있지 싶다.

차츰차츰 수봉이에게 배워가면 익숙해 질 것이고, 더불어 매상도 나아질 것이며 가게의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다.

바쁜 중에도 수정이와 미진이는 내가 있는 테이블에 자주 들러, 인숙이에게 촉각을 세운다.

양주가 세병으로 늘어나면서 친구인 민식이나 인숙이가 분위기에 젖어,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기도 했다. 

인숙이가 한때 유행했던 적우의 '기다리겠소'를 불러 제끼자, 홀에 있는 손님들이 휘파람까지 불어대면서 분위기가

달아 오르기도 했는데, 내가 듣기에도 애잔한 노래가 가슴 깊이 감동을 준다.

어느덧 시간이 10 시를 넘어 인숙이를 바래다 줘야 하는 시간이 되었길래, 민식이에게 그만 일어서자고 했지만, 은근히

미진이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녀석이 더 있다 가겠노라며 고집을 피워서 할수없이 인숙이와 둘이서만 가게를 나오게 됐다.

수정이와 미진이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 왔지만, 이미 그런것에 개의치 않기로 작심을 한 터라 무시하기로 했다.

" 선배, 입가심으로 생맥주나 한잔 더 하죠. "

큰 길에서 택시를 태워주려 하자 인숙이가 아직은 양에 차지 않았다며 졸라댄다.

내일은 국밥집이 쉬는 일요일인지라 성미집에서 잠을 자고서, 소영이와 외식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일단 택시를 타고

이수역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안 그래도 '이차선 다리'에 있을때 소영이에게서 메시지가 왔었다.

 ~ 가게 정리하고 들어가려구요. 바쁘지 않으면 연락주세요. - 막내 딸 - ~~

성미가 시켰는진 모르지만 2주 전부터 외식을 하노마고 약속을 했었기에 서둘러 나온 턱인데, 본의 아니게 인숙이로

인해 늦어지게 됐다.

이수역 사거리에 있는 호프집에 들어가 맥주와 안주를 시켜 놓고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메시지를 보냈다.

 ~ 많이 늦어지거나 못 갈지 모르겠다.  내일 약속은 잊지 않고 있단다.  이쁜 우리 딸, 먼저 자거라. ~~

 

" 남자가 화장실에서 오래도 버티네, 화장을 고치지는 않았을 테고.호호.. "

아무래도 젊은 사람보단 메시지를 보내는게 서툴다 보니 늦어진걸 탓하고 있다.

" 후배한테 잘 보이려면 화장 정도야 대수일까.. "

맥주잔을 들어 한모금 들이켰다.      테이블 바로 위까지 내려진 조명등 불빛에 비친 인숙이의 얼굴이 고와보인다.

" 아까 그 여자분한테 메시지를 보낸거 같은데, 맞죠? "

여자들은 예외없이 뛰어난 후각을 자랑한다.      오죽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남자의 신변에서 딴 여자의 냄새를 맡는

초능력을 발휘하는게 여자라고 했을까.

" 큰일일세, 우리 후배께서 내 동선까지 체크를 하니.후후.. "

" 너무 겁먹지 말아요, 선배한테 바가지를 긁어댈 자격이 없으니까.. "

" 바가지 긁으면 어때, 그만큼 친해졌다는 말인데.. 관심을 가져 준다는 얘기니까 오히려 고맙지.. "

" 그럼, 제대로 한번 긁어볼까나.호호..  솔직이 말해봐요, 아까 거기있던 여자 두사람 모두가 선배하고 연관이 있지

싶은데.. "       

역시나 여자들의 직감은 뛰어나다.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 그렇게 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       

"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뭐..    두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서 감을 잡았다고나 할까,  그저 선배와 알고 지내는

평범한 사이라면 같은 여자끼리 세심하게 뜯어볼 이유는 없잖아요. "

" 그거야 인숙이가 워낙 이쁘니까 부러워서 그랬겠지.. "

" 에이~ 선배도..  아무려면 내가 그런것도 모를까..   아까 노래 부르면서 어쩌나 볼려고 선배의 팔장을 껴 봤더니

두 여자 모두 눈에서 불꽃이 튀던데.호호.. "

공부하는 머리가 좋아 애들을 가르키는 선생이 된줄 알았건만, 그런 지혜까지 갖추고 있다.

" 우리 후배한텐 창피한 일이지만 어쩌다 보니 그런식으로 엮이게 되더라구..  사실은 그것 때문에 요즘 골치를 썩히는

중이야.. "        

만난지 얼마 되지는 않았건만 인숙이랑 있으면 편안해진다.

" 그런 눈빛들을 보니까 은근히 재밌더라구여.호호..     오늘 선배를 꾀어 내 이리 오자고 한 것도 그 분들을 더 약이

오르게 하고 싶었어요..  많이 못됐죠? "          

인숙이 역시 편안해서인지 말투마저 격식이 없어 보인다.

" 그런거야 상관이 없지만, 내가 보기엔 오늘 인숙씨 기분을 종잡을수가 없네.. 무슨일이 있는 사람처럼 앞뒤가 맞질

않고 공중에 떠있는 사람처럼 보이는게.. "

첫 만남부터 솔직한게 장점으로 보여지기도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뿌리가 없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 처음부터 나를 정확하게 봤잖아요,  나도 그런 선배가 웬지 돌아가신 오빠처럼 느껴져서 허물없이 대하고 싶었구..

오늘은 선배랑 같이 있고 싶어서 왔는데..  흉보지나 않았으면 좋겠어요. "

남자들이 좋아하는 몸매를 가졌는데 누가 마다 하겠는가.      더구나 아무 생각없이 살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놈팽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아무런 감정도 없이 여자를 안을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생각없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생각없어 25  (0) 2012.02.14
아무생각없어 24  (0) 2012.02.13
아무생각없어 22  (0) 2012.02.03
아무생각없어 21  (0) 2012.01.27
아무생각없어 20  (0) 201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