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여자

세여자 35

바라쿠다 2017. 10. 11. 18:07
"누나~ 배낭.."
"또 깜박했네,히~"
처음으로 유럽을 접한다는 들뜬 생각에 이틀만에 꿀잠을 잤다.
엊저녁 오늘 일정을 듣고는 미리 배낭짐을 싸 뒀더랬다.
'벌써 건망증이냐.."
"짜식이 아침부터.."
아닌게 아니라 툭하면 까먹는 통에 스스로 어이가 없다.
물 끓인다고 렌지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홀랑 태운 적도 있다.
진짜 신혼부부인양 커플룩을 고집하는 진수와 같은 청바지를 입고 아웃도어 매장에서 산 
바람막이 자켓까지 걸쳤다.
비웃을까 봐 조마조마하지만 진수의 조름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궤도열차를 타고 산 밑에 당도하니 케이블카가 대기중이다.
무심코 케이블카가 매달릴 로프를 따라 눈길을 쫒는데 그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솔직이 말해 봐, 무섭지.."
"얘는.. 나 깡순이야."
아랫배에 힘을 주지만 높은 곳은 딱 질색이다.
승차가 끝나고 케이블카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점점 땅과 멀어진다.
쳐다보지 않으려 해도 지면과의 거리감에 신경이 쓰인다.
누가 볼세라 눈을 감고, 잡은 진수의 손을 꼭 쥐었다.
"내려.."
귓가에 반가운 진수 목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본다.
"다 왔구나.."
"ㅋ~"
"왜 웃는데.."
"ㅋ~"
사람들을 따라 케이블카를 나서는데 진수는 묘한 미소를 짓는다.
"이게.."
"한번 더 타야 돼, 산이 높걸랑 ㅋ~"
"지금 놀리는거지.."
"저기 오자너.."
설마했는데 진수말대로 새로운 케이블카에 사람들이 탑승을 하기에, 할수없이
꼬리를 물었다.
아예 먼 산에만 눈길을 주지만, 그 역시 편한 상태는 옷된다. 
저 멀리 보이는 광경마저도 하얗게 날리는 눈가루에 점점 시야에서 뿌애진다.
나도 모르게 진수의 허리띠를 잡고 힘을 줘 지지대를 삼았나 보다.
진수의 손이 내 어깨를 감싸 자신의 품으로 인도한다.
"내리자."
아마 남산 케이블카보다 다섯배의 시간은 족히 걸렸을게다.
인파에 섞여 내렸더니 아래와는 다르게 매서운 추위가 엄습한다.
"파카꺼내,부츠도.."
진수가 찾을만큼 위쪽의 바람은 순식간에 뺨이며 귀를 얼얼하게 할만큼 정신
차리기가 어렵다.
두터운 파카와 털이 수북한 어그부츠를 신었음에도 이런 칼날같은 추위는 
생전 처음이다.
"가자, 사진찍으러.."
~한번만 참아준다, 이 추위에 뭐하는 짓인지..~
몸을 날려 버릴듯 맹렬한 바람도 진수의 욕심까지는 꺽지 못한다.
저만치 바람을 피하기 위해 정류장에 있는 이들조차 우리의 무모함이
신기한지 내내 눈길이 모인다.

"이쁘다.."
산 정상과 이 곳 시내는 천양지차의 온도 차이가 있다.
반팔 티셔츠에 바람막이만 걸쳤을 뿐인데 더운 느낌이다.
쇼핑을 한답시고 이곳저곳 기웃대던 중에 그릇가게로 왔다.
"골라.."
"사자구?"
"그럼.."
"안돼, 인희년이랑 놀러왔는데 오스트리아 그릇은.."
살림이야 꽝이지만 나 역시 여자인지라 이쁜 그릇을 접하니 욕심이 난다.
"친구들 선물하면 되자너.."
"숙자는 좋아할텐데.."
"인희씨는.."
"그 년은 금붙이만 좋아해.."
우리 삼총사중에 숙자가 그나마 살림꾼 티가 나고, 나와 인희는 도통
관심조차 없다.
"숙자씨한테 선물하자, 기념으로.."
"그럴까.."
"인희씨 선물은 서울가서 챙겨야겠네."
"같이 고르자.."
한참동안 서울에서 보지 못한 그릇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신기한건 살림이야 당연히 뒷전이지만, 안주를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할
그릇은 종류별로 눈에 들어온다.
"애들 키 몇이야?"
"왜..
"추운곳이라 특이한 파카 많어.."
"우리 애들것도 챙기겠다구?"
"당연하지, 누나 아들들인데.."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어린 애인이 대신 일깨운다.
진수의 권유에 따라 이곳저곳 기웃대며 애들 옷을 고른다.

"뭐 드릴까.."
"똥집."
"술은.."
"빨간걸로 줘요."
친구년땜에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서박사야 당연히 제 집으로 귀가했고, 홀로이 잠이 올것 같지 않기에 근처 포장마차에 왔다.
"나도 한잔주라.."
옆 테이블에서 일행들간의 대화려니 했다.
무심코 돌아보니 날 쏘아보는 눈이 있다.
"또 그런다.. 손님 미안해요."
"놔 두세요.. 와요, 이리.."
풍채 넉넉한 주인 아줌마가 끼어들며 난색을 표한다.
어차피 무료한지라 술친구삼아 합석해도 별일이야 있으랴 싶다.
추레해 보이지만 알콜중독처럼 보이진 않는다.
"복 받을게요."
"드시기나 해요."
"사는게 거기서 거기라우.."
".........."
"빡빡하게 사는건 본인한테 마이너스구.."
".........."
적선삼아 따라 준 술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뜻 모를 말을 뱉는다.
자세히 뜯어 보니 옷차림이 다소 낡긴했으나 머리 매무새며 세안상태는 깔끔스럽다.
"모르는 놈한테 술 줘 보기도 쉽지 않지, 그래서 복 받을게구.."
"..여보세요."
"이제사 흥미가 생기셨네.."
"몇살이죠?"
"대까지 쎄네, 궁금한건 뒷전이다.. 용띠.."
"동갑인데 트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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