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54

바라쿠다 2016. 12. 30. 20:33

추석을 맞아 모처럼 한가하다.

~ 다녀올께요 ~

남편, 딸과 함께 고향 다녀 오마고 연숙이는 시골로 갔다.

당분간 연숙이에게서는 자유의 몸이다.

 

찾아 갈 고향도 없는지라 혼자 지내야 하는 명절이 좋은것만은 아니다.

~어디? ~

~ 집 ~

~ 애들 있어? ~

~ 응 ~

~ 집으로 갈께 ~

어제 이마트에서 사 온 추석선물을 트렁크에 옮겨 실었다.

명절이라 만나지 못하리란 생각에 미리 쇼핑을 했더랬다.

얼마후에는 가게를 오픈해야 할테니 희정이에게 점수를 따야 한다.

아들 녀석들과도 자연스레 거리를 좁힐수 있을 것이다.

집 근처에 데려다 줬을 뿐이기에 주소를 전해 받아 네비를 찍었다.

" 안녕하세요. "

" 오랜만이다,동훈이.. "

" 네, 들어오세요. "

희정이는 애들이 있기에 다소 서먹해 보이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작은 녀석이 첨 대면하는지라 유심히 살피려는 눈치가 보인다.

" 그냥 지나치기가 그래서.. "

" 뭘 이런걸.. "

애들이 좋아하는 햄과 쏘시지, 고기 선물셋트를 내 밀었다.

당연하게 받는게지만 은연중 애들의 눈치를 살핀다.

" 커피나 한잔 주지. "

" 저쪽 방으로.. "

희정이가 자는 방으로 무혈입성한 셈이다.

" 안와도 되는데.. "

애들 눈을 피해 마주 앉으니 날 대하는 자세부터 틀리다.

거실에서 마주쳤을때와는 달리 표정부터 반가운 기색이다.

" 어쩌누, 보고싶은데.후후.. "

" 피~ 오늘 하루뿐인데 엄살은.. "

둘이 만나 살이 타고 뼈가 녹아드는 그때처럼 살가운 미소마저 짓는다.

" 그 하루가 얼마나 긴데..  외로운 사람이야 나는.. "

" 하여간 청산유수라니까,호호.. "

" 우리 이렇게 살자 희정아. "

" 이 사람이 미쳤나, 애들 들어.. "

남들 눈을 의식하는 희정이와 달리 애들까지 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그녀와 있고 싶은 욕심이 통제가 안되는 국진이다.

" 들으면 대순가, 어차피 아빠될건데,후후.. "

" 신소리 그만하고 빨리 가, 내일 갈께.. "

우리나라의 엄마들은 자식들에게 유별난 사랑병을 지니고 있다.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은 그런 사랑은 신성하기까지 하다.

맹목적인 그 사랑에 대해 질투는 나지만, 함부로 덤비다가는 튕겨질 위험이 있다.

그런 순리를 알기에 차곡차곡 정이 쌓일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알았어, 내일은 당신이 밥 차려 줘. "

" 에구~ 재롱은..  어여 가. "

환히 웃는 희정이를 보니 이 곳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 얘들아 아저씨 가신대.. "

" 벌써 가세요? "

" 그래, 다음에 보자.  회사 잘 다니구.. "

" 네, 삼촌 안녕히 가세요. "

애들의 배웅을 받았고, 희정이는 바깥에까지 나와 승용차를 지켜 본다.

 

~ 싸부님 ~

~ 가게 쉬는날이에요 ~

~ 집주소 불러 줘 ~

~ 왜요 ~

~ 빨리.. 운전중이야 ~

쇼핑을 할때 순희 몫도 챙겨 트렁크에 실었더랬다.

일반 사람들이야 모르겠지만 우리 업 종사자는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눈에 보이는 과학도 선호하지만 감춰져있는 내실도 중요시 한다.

심지어 전생까지 들여다 보려는 노력까지도 불사한다.

" 난 준비 못했는데.. "

" 싸부는 받기만 하는거야, 순희씨는 그럴 자격도 있구.후후.. "

흑석동으로 넘어가는 아파트 단지에서 순희를 만나 추석선물을 건넨다.

그녀와의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몰라도 최선은 다 할 생각이다.

" 고마워요. "

" 고맙긴..  신랑은.. "

" 많이 좋아졌어요, 말도 또렸해지고 치료도 순조롭구.. "

" 다행이네. "

" 덕분이죠,뭐.   감사해요. "

지켜 보기로는 굴곡이 심한 삶을 살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그녀뿐 아니라 나와 인연이 된 사람 모두가 평안하기를 바란다.

" 나중에 술한잔 하자구.. "

" 네,도사님. "

" 에이~ 밖에서는 제자야. "

" 네,호호.. "

세상의 고민을 몽땅 짊어졌던 그녀의 웃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희망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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