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에 쓴 글)
얼마 전 진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창 밖을 시원하게 바라보며 가자 싶어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아저씨! 진주 가기 전에 개양 역에서 좀 내려주세요. 처음 가는 길이라 잘 몰라서요."
딴에는 정중하게 애교 있게 부탁하였다.
눈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초겨울의 허허로운 들판을 무심히 내다보며 가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나온다.
"개양 내리실 할머니 내리세요. 개양 입니다."
나 말고도 또 다른 사람이 내리는 가 싶어 천천히 내리며 뒤를 보니 아무도 없다. 버스는 달랑 나 혼자 떨구어 놓고는 저만치 휙 달아나고 있다.
"뭐야 ! 나보고 할머니라 부른 거였네. 세상에 기가 차서."
순간 황당하고 화도 나며 혼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40대로 보였던 기사 얼굴 억지로 떠올리며 툴툴 씹어댔다. "내가 왜 같은 중년인데 지 마음대로 할머니라 불러. 기사님이라 안 부르고 아저씨라 해서 심술 부리는 건가? "
순간 지나고 생각하니 할머니가 맞기는 맞다. 외손자 손녀가 넷이나 되니 틀림없는 할머니다. 괜히 혼자서 자신은 할머니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억지부리는 거다. 그래도 결혼을 일찍 해서 손자 손녀야 일찍 두었지만 아직은 끝으머리지만 50대에 붙어 있는데, 공개된 자리에서 혼자 다니며 할머니라 불리우니 기분이 나쁘다.
식당에서 화장실을 나오며 거울을 잠시 찬찬히 보았다.
거울에 비추이는 한 중년의 여자 얼굴을 냉정하게 천천히 뜯어보아도 좀 늙은 아지매는 있어도 할머니는 없었다.
"그래. 아직은 중년이고 아지매이지 할매는 아니다. 용기있게 씩식하게 스스로 아지매로 살면 되지 뭐. "
인생에서 은퇴를 뒷방을 연상하게 하는 할머니로는 좀더 세월이 흐른 뒤에 우아하게 맞이하기로 하고 ,지금은 누가 무어라 하든 현역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중년의 아지매로 살고 싶다.
지금은 50대의 끝자락에서 분명 아지매이고, 내년에 60대가 되면 '인생은 60부터....'라 하였으니 또 젊은 마음으로 아지매로 살면 되겠지 생각한다.
할매라 말고 아지매라고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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