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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 : 미술관에 가는 이유

바라쿠다 2016. 7. 8. 08:09

   2003년 10월, 덕수궁 미술관「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에 갔었다. 덕수궁 미술관과 그 주변경관은 아름다웠고, 전시회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과 회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세련되게 나를 이끌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아루어냈고 해상무역을 통해 자유도시국가들이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경제적인 부가 왕이나 귀족이 아닌 시민계급에게로 돌아가게 되었고 다른 유럽지역에 비해 신앙과 사상의 자유가 존중됨으로써 많은 유렵인들이 이주하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다양한 문화적인 영향을 흡수하면서 시민문화가 융성하였고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작품의 주 구매자가 되면서 일상적인 주제들이 선호되었다. 즉 네덜란드의 삶과 환경을 묘사하는 사실적인 경향의 정물과, 장르화(일상장면), 풍경화 등이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전시 기획의 글 中)


   2014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오르세미술관展」에서는 19세기 파리의 모습과 그 당시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정여울은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보기 위해서 이탈리아 밀라노에 갔다고 했다(내가 사랑한 유렵 TOP10). 세느강을 배를 타고 가면서 오르세미술관을 보았었다. 이번 생에는 다시 갈 수 없음을 알기에 먼 길을 와준 것에 반가워하며 전시회를 찾았다.

   18세기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거친 19세기 파리는 1800년 인구 50만에서 1896년 250만에 이를 정도로 성장하였다. 도시 재정비 사업과 만국박람회를 통해 도로와 공원,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웅장하고 질서 정연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파리의 삶을 시적이며 놀라운 사건으로 넘쳐나게’(샤를 보들레르) 만든 것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당시 벌써 자본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엿볼 수 있는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1862)이 쓰여졌고, 과거에 쌓아놓은 어법을 거부하는 인상주의 예술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삶이 고단할수록 문제의 핵심, 생각과 행동의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찾으려 했다. 인문(人文)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시대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라 했던가. 미술관에 가면 시대의 흐름속에 현재의 나와 이어진 다양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알랭 드 보통의「영혼의 미술관」은 ‘다양한 공감’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설명해주고 있다.

   도구로서의 예술, 일곱가지 기능

   

   1. 기억

   우리의 마음은 난처하게도 사실적이든 감각적이든 중요한 정보를 잘 잊어 버린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기억하길 원하고, 그래서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화가들은 무엇을 기념해야 하고 무엇을 생략해야 할지 적절하게 선택한 듯 보이는 사람들이다.

   

   2. 희망

   가장 지속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미술의 범주는 쾌활하고 예쁜 것들이다. 봄날의 초원, 뜨거운 여름 한낮의 나무 그늘, 전원 풍경, 미소 짓는 아이들.

우리는 거의 항상 장밋빛의 감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기는커녕 과도한 우울로 고생한다. 우리는 세계의 문제와 부당함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단지 그 앞에서 작아지고 약해지고 초라해질 뿐이다. 유쾌함은 멋진 성과이고, 희망은 축하할 일이다. 낙천주의가 중요하다면, 이는 우리가 낙천적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따라 많은 결과들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명은 재능의 부족이 아니라 희망의 부재가 결정할 수 있다. 오늘날의 문제들을 보면 세상을 너무 밝게 보는 사람들 탓에 생긴 건 거의 없다. 그리고 세상의 고민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들깨우는 탓에 우리는 우리의 희망적인 성향을 지켜낼 도구가 필요하다.

   

   3. 슬픔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외로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

   우리는 수많은 예술적 성취를 예술가의 '승화된' 슬픔이라고 보고, 결국 관객도 작품을 접하며 슬픔을 승화시킨다고 본다. 승화라는 말은 화학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단단한 물질이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직접 기체로 변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예술에서 승화는 천하고 보잘것 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화되는 심리적 변형을 가리킨다. 슬픔이 예술을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4. 균형 회복

   균형이 완벽하게 잘 잡힌 사람은 드물다. 우리의 심리적인 변천사, 인간관계, 일상적인 노동은 우리의 감정이 어느 한 방향으로 심하게 기울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너무 신뢰하거나 너무 의심하거나, 너무 진지하거나 너무 명랑한 상태에 쉽게 빠진다. 예술은 우리가 잃어버린 성향을 농축된 형태로 내놓아, 우리의 기울어진 자아의 적당한 균형을 회복시켜준다.

   예술의 한 역할이 우리의 정서적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데 있다는 생각은, 왜 사람들의 미학적 취향이 그렇게 다른가하는 곤란한 질문에도 답이 되어줄 법하다. 왜 어떤 사람은 미니멀리즘 건축에 이끌리고, 어떤 사람은 바로크 건축에 이끌릴까? 왜 어떤 사람은 훼뎅그렁한 콘크리트 벽에 흥분하고, 어떤 사람은 윌리엄 모리스의 꽃무늬에 흥분할까? 예술작품 하나하나에는 특별한 심리적, 도덕적 분위기가 스며들어 있다. 그림은 평온하거나 불안할 수 있고, 용감하거나 신중할 수 있고, 겸손하거나 자신만만할 수 있고,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일 수 있고, 부르주아적이거나 귀족적일 수 있으며, 이런저런 종류를 더 좋아하는 성향은 사람들의 다양한 심리적 차이를 반영한다. 우리는 자신의 내적인 나약함을 보완해줌으로써 우리를 생존의 평균치로 되돌려놓는 예술작품을 갈망한다.

   

   5. 자기 이해

   우리는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에겐 직관, 육감, 모호한 공상, 이상하게 뒤섞인 감정이 있으며, 이 모두는 단순명료한 판단을 방해한다. 여러 기분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따금 예전에 느꼈지만 명확히 알지 못했던 어떤 것을 정확히 파악한 듯 보이는 예술작품들과 우연히 마주친다.

   

   6. 성장

   최고의 명성과 찬사를 누리는 많은 작품들이 다소 무섭거나 지루하거나 혹은 둘다의 느낌을 줄 수도 있는데, 이는 우리와 예술의 관계 속에 은밀히, 인정받지 못한 채 존재하는 한 특징이다. 마음 깊숙이 들여다보면 세계의 예술품 중 불편할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이질적이고 협오스럽게 다가온다.

   예술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를 극복하는 중요한 첫 단계는 특정한 상황에서 느끼는 이상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많은 예술이 결국 우리의 세계관과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세계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천사의 명령, 귀족의 자격, 마법의 중재를 믿는 세계관은 현대 세계의 가정 합리적인 견해들과 확연히 어긋난다.

   그렇다면 지독히 불쾌한 예술 범주들과 교감하려면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귀족들에게도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종교적인 작품을 보고도 움찔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아프리카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될까? 방어적 태도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 날카롭게 주목하고, 어떤 것들에 강한 부정적 견해를 품게 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너그럽게 깨닫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술작품들을 창조한 사람들의 외견상 이질적인 사고방식을 보다 편안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방어적인 태도를 해소하는 세 번째 단계는, 처음에는 아무리 미약하고 보잘것없더라도 예술가와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연결점을 찾는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아주 괴상해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의 야망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충분히 탐색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처음에 낯설게 느껴지는 예술작품의 가치는 익숙한 환경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지만 우리 인류와 충분히 교류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생각과 태도를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질적인 예술 덕문에 나는 내 안의 종교적인 충동, 내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에서의 귀족적인 면을 경험해 보고픈 욕구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런 발견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의식을 확장시킨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모든 장소, 모든 시대에 우리 앞에 진열되어 있진 않다. 이질적인 것과의 연결점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7. 감상

   우리의 주된 결점,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주위에 늘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의 가치를 보지 못해 고생하고, 매혹적인 것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종종 엉뚱한 갈망을 품는다.


   이미지는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해독제를 건네주어 면목을 세우기도 한다. 이는 우리 삶의 조건인 따분함과 무미건조함을 메스껍게 만드는 동시에 그 조건과 지적인 화해를 이끌어내는 예술의 힘 덕분이다. 샤르댕의 <차 마시는 여인>을 보라. 예술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일상의 진정한 가치에 경의를 표하는 힘이 있다. 이 작품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우리 자신에게 보다 공정하라고 가르친다.





출처 : 생각의 시작
글쓴이 : yesg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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