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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가 16일 세계 3대 문학상에 꼽히는 영국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국내 작가의 해외 유수 문학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침체된 국내 문학계에도 적잖은 자극이 될 것이라는 기대까지 나온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이날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국 런던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에서 만찬을 열어
이 같은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종 후보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를 비롯해 중국의 옌렌커, 앙골라의 호세 에두아르도
아구아루사, 이탈리아의 엘레나 페란트, 오스트리아의 로베르트 제탈러가 함께 올랐다. 영국 맨부커재단이 1969년 제정한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영연방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다. 인터내셔널 부문은 2005년에 새로 생겨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낸 작가에게 2년마다 수상해오던 것을 올해부터 수상 대상을 작품으로 바꿔 매년 선정하고 번역자에게도 상금을 나눠 주는 것으로 운영 방식을 변경했다. 상금은 5만파운드(8,600만원)이며 작가와 번역자(데보라 스미스)가 절반씩 받는다. “‘채식주의자’는 한국의 오늘에 관한 소설” “‘채식주의자’는 한국의 오늘에 관한 소설이며 동시에 수치와 욕망,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위태로운 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 ‘채식주의자’에 외신의 호평이 쏟아진 것은 올해 초부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월 초 ‘채식주의자’(영문명 ‘The
Vegetarian’)의 현지 출간에 맞춰 ‘초현실주의에 뿌리를 둔 폭력적이고 관능적인 소설’이라는 기사를 통해 작품을 극찬했다. 기사 속에서
미국의 소설가 에이미어 맥브라이드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라며 작문 테크닉도
놀라울 정도라고 칭찬했다. 앞서 지난해 1월 ‘채식주의자’가 출간된 영국에서도 유력 언론들이 관심을 보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1월 현지 출간된 한강의
‘소년이 온다’(영문명 ‘Human Acts’)와 ‘채식주의자’를 한데 묶어 비중 있게 소개했고, 가디언도 작가 인터뷰로 한 면 전체를 할애하며
영국 현지에서 한강 소설 예찬자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외 문학출판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채식주의자’의 인기 요인은 주제의 보편성이다. 한국 전쟁이나 남북 분단을 다룬 소설의 경우
한국 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읽기 어렵지만 ‘채식주의자’는 폭력과 상처라는 인류 보편의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해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도 수상에 한 몫 작가의 시적인 문체를 수려하게 옮긴 28세의 젊은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도 수상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영국의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악시스를
이끌고 있는 스미스는 영국에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하는 번역가가 없다는 걸 알고 직접 한국어를 배워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에서 ‘채식주의자’가 나온 것도 스미스가 직접 샘플 번역본을 보내 성사된 것이다. 포르토벨로의 편집자 카 브래들리는 “데보라의 샘플 번역본을 통해 막연하게 어림잡은 개략적 형태와 그림자만으로도 이 텍스트가 위험하고
매혹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우리는 한강의 텍스트가 그녀의 모국어에서도 컬트적 대중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으며, 번역된 영어 텍스트가 가장 원초적 감정에서 솟아난 한강 작가의 내러티브와 언어학적 도전을 온전히 전달하고 있음에 감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맨부커 선정위원회도 최종 후보작들을 언급하면서 데보라 스미스가 20대의 젊은 번역자이며 한국어를 배운지 7년 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번역을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다른 작가들의 해외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스미스는 현재 배수아 작가의 장편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낮은 언덕’을 번역 중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스미스의 틸티드악시스 출판사를 지원해 2018년까지 김연수, 황정은 등의 작품을 영국에서 출간할 계획이다. 인간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상처 다뤄 한강 작가는 1970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 한승원씨가 아버지다. 1980년 서울로 이사한 그는 나중에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접하고 최근작 ‘소년이 온다’(창비, 2014)에 어린 시절 광주의 고향집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초등학교만 다섯 곳을 다녔다는 작가는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들보다는 책과 가깝게 지냈다. 집에는 아버지가 보는 책들이 쌓여 있었고 한강은 그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허리디스크 때문에 책상에 앉지 못해 책을 쌓아 그 위에서 글을 쓰는 아버지를 보며 자신은 절대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는 작가는, 그러나 자연스럽게 읽기에서 쓰기로 태세를 전환했다. 1993년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한강은 같은 해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이 당선되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장편소설 6권, 소설집 3권, 시집 1권을
발표했으며 2005년 이상문학상, 2010년 동리문학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1988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아버지와 함께 부녀가
나란히 수상한 최초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서울예술대에서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일관되게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로지르는 것은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다. 1998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에서는 한낮에 도심을 알몸으로 달음박질하는 여자 의선과 그녀를 찾아 강원도 오지를 헤매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인간의 광기 안에서 개인과 시대의 상처를 길어 올리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한강 소설의 본류라 평가 받는다. 이후 남편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점차 식물화 돼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창비, 2000), 인체를 석고로 뜨는 조각가를 통해 육체의 탈 속에 숨은 삶의 생채기를 드러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 2002) 등을 거치며 특유의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색깔을 확립했다.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처음 게재된 중편소설로, 지금까지 보여준 주제의식과 식물에 대한 상상력, 시적 문체의 완결편이라 불린다. 5ㆍ18 광주 다룬 ‘소년이 온다’도 주목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그린 장편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2011),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2)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상처에 질문을 던져온 작가는 2014년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소년이
온다’를 통해 작품 활동의 전기를 맞았다. 기존의 광주를 다룬 소설들이 르포의 형식을 빌어온 것과 달리 작가는 사망자들에 빙의하는 방식으로
광주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5만부나 팔리며 좋은 반응을 얻은 ‘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1월 영국에서 출간(영문명
‘Human Acts’)되며 ‘채식주의자’ 못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영국 가디언은 2월 한강의 인터뷰를 게재하며 ‘국제적으로 호평 받는 남한
작가, 폭력적인 과거 역사와 맞서다’라는 제목을 달아 ‘소년이 온다’를 집중 소개했다. 한강 작가의 신작 ‘흰’은 6월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에서 나온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었던 아기와 그 언니의 장례식에 관한 내용으로,
시와 소설 사이의 경계적 글쓰기를 시도했다. 작가는 출간에 맞춰 성북동에서 관련 전시도 열 예정이다. 내년에는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단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이 포함된 연작 장편이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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