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하게

[스크랩] 너희가 봉준호 감독을 아느냐

바라쿠다 2015. 6. 10. 05:00

<괴물>의 감독 봉준호에 대해 어떤 웹진에 썼던 글입니다. 쓰다보니 봉감독을 제가 잘 아는 것처럼 되었는데, 사실 저는 봉감독을 잘 모른답니다. 굳이 따지자면 아는 선배의 친구, 뭐 이런 식으로 미적지근한 인연이 전붑니다^^; 혹시나 이 글을 봉감독께서 보신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슬슬 떠오르네요...

 

괴물을 봤습니다. 왕의 남자는 개봉한 지 석 달쯤 지나서, 아마도 1200만 번째쯤 본 것 같은데, 괴물은 개봉 둘째 주에 봤으니 한 425만 번째 관객은 된 것 같습니다. 본 소감이 어땠느냐고요? 음~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 참 대단한 작가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괴물 나오는 영화처럼 뻔한 장르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라기 공원부터 용가리까지, 가만 보면 괴수 영화의 문법은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봉 감독은 그처럼 전형적인 영화가 난무하는 괴수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다 전달하더군요. 어떤 평론가는 봉 감독이 지나치게 영리하다는 평을 썼던데, 작가주의와 대중성을 적절하게 조화시켜내는 그 영리함이야말로 진짜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겨우 나보다 한 살 많은 감독이 저 정도 작품을 창조해내는데 나는 뭐야 하는 자조적인 생각도 조금은 들었더랬습니다.

 

봉 감독은 아직 30대입니다. 연대 사회학과 88학번이니까 재수를 안했다면 이제 서른 여덟밖에 안됐지요.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고요? 제가 연대 89학번이거든요^^ 제가 사회학 부전공이었으니 모르긴 해도 강의실 복도에서 한두 번 스쳐가긴 했을 거에요.

 

기자 시절 봉 감독을 인터뷰한 적은 없었지만 봉 감독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먼저 베스트셀러 아내가 결혼했다의 작가 박현욱(이 분은 사회학과 87학번이죠. 근데 소설의 재기발랄함에 비하면 참 수줍고 말없는 분이어서 인터뷰에 애 좀 먹었습니당^^). 박현욱씨를 인터뷰하면서 연대 사회학과에서 요즘 인물 많이 나오네요. 봉준호 감독도 있고. 이렇게 이야기하니 이분의 대답, 저야 준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준호는 학교 다닐 때 교내 신문에 4컷 만화도 그리고 아무튼 날리는 녀석이었어요. 그때 다들 우리가 10년 후면 봉준호랑 같이 대학 다녔다고 자랑하게 될 거야하고 말했었죠. 20대부터 봉 감독은 무언가 특별했나 봅니다.

 

그리고 나서 2주일쯤 후에 요즘은 영화음악 감독으로 더 유명한 기타리스트 이병우(저 이 분 참 좋아합니다. 나중에 이 분에 대해 따로 이야기할 수 있었음 좋겠네요)를 인터뷰하게 됐습니다. 지금껏 해온 영화음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어떤 건가요?하고 묻자 ~ 한 영화만 찍어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고요, 지금 작업하는 괴물이 굉장히 대단한 영화 같아요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박현욱씨에게 들은 봉 감독 대학시절 이야기를 잠깐 했지요. 저도 들은 이야긴데요, 봉 감독님이 학교 다닐 때부터 유명했대요 하면서요. 한 시간 정도 즐겁게 인터뷰를 하고 나서 이병우씨 스튜디오를 나서는데 앗, 문 앞에 봉 감독이 딱 앉아 있는 거에요! 이병우씨가 봉 감독을 보더니, 어이~ 대학 시절에 날렸던 봉 감독!^^; 이러십니다. 여기 이 기자분이 당신 대학 시절에 대해 다 폭로했어. 당신 대학 때 아주 굉장했다면서? 아이고, 저는 그때 봉 감독을 처음 본 상황이었는데 말이에요, 누구신가요? 하며 어리둥절해 하는 봉 감독과 얼결에 악수하고 후다닥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때 잠깐 본 봉 감독은 키가 크고 곱슬머리에 아이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뭐랄까, 몸은 어른이 됐지만 얼굴은 말썽깨나 부릴 장난꾸러기에서 하나도 안 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의 얼굴에서 번쩍이는 눈빛만은 예사롭지가 않았어요. 예술가의 아우라가 확 느껴진달까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영화 안 보신 분은 읽지 마시길^^)

 

최근에 박현욱씨와 다시 통화할 일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봉 감독 이야기가 나왔지요. 제가 마지막에 현서를 그렇게 죽이는 걸 보니 봉 감독 참 냉정한 사람이다 싶대요. 그러자 박현욱씨가 아니에요. 진짜 마지막은 송강호가 생면부지 아이를 자식으로 끌어안는 장면이잖아요.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밥 먹이는 거. 준호 마음은 그거에요.하시더군요. 

 

2006. 8.17 전원경

 

 

 

 

출처 : 스트로베리 티
글쓴이 : winniekje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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