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원작인 영화들...
작년만 해도 강풀 작가의 [26년](2012)과 [이웃사람](2012)이 영화화되었고, 지금 극장가엔 이종규 작가가 쓰고 이윤균 작가가 그린 [전설의 주먹]이 상영되고 있으며, Hun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짧은 예고편 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2013년 최대 기대작인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모두 만화를 토대로 하고 있고요. 이제 한국영화에서 '만화'(그리고 '웹툰')이라는 콘텐츠는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계에서 '만화의 영화화'가 이루어진 건 언제부터일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시작만 놓고 본다면 자그마치 8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영화 최초의 코미디로 일컬어지는 [멍텅구리](1926)는 당시 일간지에 연재되던 4컷 만화 <멍텅구리>를 소재로 한 작품인데요, 원작자인 노수현마저 자신의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고 하죠. 한량인 '최멍텅'이 기생에게 홀려 가산을 탕진하고 겪는 일들을 그렸는데요,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인 이원규가 주연을 맡아 흥행에도 꽤 성공합니다. 하지만 [멍텅구리]는 트렌드세터가 되지는 못합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두 번째 한국영화가 나오기까진 50년 넘는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렇다면 한국에서 만화와 영화가 본격적으로 만난 건 언제일까요? 1980년대라고 봐야 합니다. 그 시작은 [순악질 여사](1980)였는데요, 지금은 고인이 된 길창덕 화백의 만화가 원작이죠. 장미희가 주연을 맡고, 이영하가 남편으로 등장하는데요, 원작에서 이야기보다는 캐릭터를 가져온 영화입니다. 또 한 편의 영화를 꼽는다면 [팔불출](1980)이 있습니다. 강철수의 만화가 원작인데요, 사극 코미디라고 할 수 있죠. 속편인 [풍운아 팔불출](1982)까지 백일섭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강철수 작가는 영화에 꽤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요, 이덕화가 주인공을 맡은 [사랑의 낙서](1988)엔 아트 디렉터로 참여해 의상, 미술, 소품 등에 간여했고 1989년엔 직접 메가폰을 잡아 [발바리의 추억]을 내놓기도 했죠. 아마 1980년대에 가장 적극적으로 영화계와 결합되었던 만화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김수정 원작의 [대학 신입생 오달자의 봄](1983)도 빼놓을 수 없겠죠. 1970년대를 풍미했던 이른바 '얄개 영화'의 전통 위에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했는데요, 영화 제목에 '공포'라는 이름이 들어가선 안 된다는 당시 검열 당국의 명령 때문에 이장호 감독은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라는 제목을 지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이 만화의 영화화를 이장호 감독에게 제안했던 사람은 ([대학 신입생 오달자의 봄]에 출연하기도 했던) 가수이자 배우였던 전영록이라고 하는데요, 아무튼 이 영화는 당시 서울 관객 28만 7,000명을 동원하며 그 해 흥행 2위에 오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까치' 오혜성 역을 맡았던 최재성은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 자리에 올랐고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로 시작하는 정수라의 주제가 '난 너에게'는 공전의 히트를 쳤죠.
3,000페이지에 달하는 원작을 줄이는 과정에서 무리도 많았고, 캐스팅의 싱크로율에 대한 논란도 있었으며(엄지 역에 당대의 섹시 스타 이보희라니!), 야구 경기 장면은 꽤나 어설펐습니다(사실 촬영 당시 이장호 감독은 야구에 대해 문외한이었죠).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건, 원작의 힘이자 기획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관객층을 대거 끌어들인 점도 컸고요. 1980년대엔 점점 중심 관객층이 젊어지고 있었는데요,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 지점에서 폭발력을 지니게 된 겁니다. 프로 야구와 아시아 게임과 올림픽으로 스포츠 붐도 불고 있었고요. 그리고 1980년대는 만화가 영화보다 훨씬 더 참신한 아이디어와 젊은 감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스포츠 만화가 지닌 승부, 극기, 노력, 승리, 긴장, 갈등의 이야기는 충무로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죠.
전작의 성공에 이어 1988년에 [이장호의 외인구단 2]가 나오고(여전히 '까치'는 최재성입니다. 엄지는 이응경으로 바뀌었고요), 이현세의 또 다른 야구 만화 <제왕>의 영화화도 거론되었습니다. 1986년엔 박봉성 작가의 <신의 아들>도 영화화되었고요. 주인공 '최강타' 역을 맡은 최민수의 데뷔작이기도 한데요, 영화의 만듦새는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이현세 원작의 [지옥의 링](1987)도 나왔는데요,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조상구 역을 맡았던 최재현이 아예 활동명을 '조상구'로 바꿔 '까치' 오혜성 역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허영만의 <카멜레온의 시>도 1988년에 영화화됩니다. 허영만 화백은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만화가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의 작품은 1970년대부터 영화화되기 시작했죠. 최근엔 주원을 주인공으로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각시탈](2012)은, 이미 1978년에 [각시탈 철면객]으로 만들어진 바 있고요. 잠잠했다가 그의 만화가 다시 떠오른 건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성공 이후인데요, 영화로 만들어진 [카멜레온의 시]도 역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처럼 [이장호의 외인구단] 이외엔 만화를 스크린에 옮겨 성공한 작품을 찾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충무로의 산업적 규모가 만화의 방대한 스케일을 담아낼 만한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감독들도 만화의 과장되고 비약적인 스타일을 어떤 식의 영화적 리얼리티로 담아내야 할 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각색의 수준도 열악했고요. 당시 스포츠 신문 연재와 전문 잡지의 등장으로 일단 만화 붐이 조성되어 관객들에게 1차적 관심을 끌 순 있었지만, 막상 영화화된 작품은 원작과 너무 큰 간격이 있었던 겁니다. 영화화된다고 했을 땐, 원작 만화와 분리된 나름의 완성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만화와 영화를 적당히 혼합시킨 어설프고 안이한 영화가 대부분이었던 거죠.
그러면서 등장한 현상은 당시 가장 강력한 트렌드였던 '에로티시즘'에 영합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우영 화백은 신문 연재 만화를 직접 연출한 [가루지기](1988)를 내놓았는데요, 이미 [변강쇠](1986)에서 강쇠 역할을 맡았던 이대근은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그 역을 맡습니다. TV 드라마 [다모](2003)의 원작자인 방학기의 [들병이]도 1989년에 에로 사극으로 만들어지고요. 만화 잡지에 연재되었던 이현세의 '성인 만화'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는 1989년에 스크린으로 옮겨집니다. 하지만 모두 원작에 비해 재미가 덜했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두 명의 작가를 든다면 한희작과 배금택입니다. 둘 다 스포츠 신문 연재를 통해 성인 만화의 대명사로 자리잡으신 분들이죠. 한희작의 <서울 손자병법>은 1986년에, 내용은 거의 무관한 채 제목만 빌려오는 방식으로 영화화된 바 있는데요, 이후 파격적으로 작가 이름이 들어간 영화 [한희작의 러브러브](1991)가 만들어집니다. 세 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옴니버스 영화로, 당대의 섹시 아이콘이었던 강리나가 주연을 맡았죠. 강리나는 배금택의 페르소나가 되기도 합니다. [변금련](1991)과 [변금련 2](1992)의 그녀는 잊지 못할 캐릭터를 선보이죠(한편 배금택 작가는 '청소년 영화' [영심이](1990)의 원작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의 붐은 1990년대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이현세 작가가 직접 연출을 맡은 [아마겟돈](1996)이나,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1996) 같은 극장용 애니메이션 부분의 성과는 컸지만, 실사영화에선 이렇다 할 작품이 없었던 거죠. 그런 와중에서 두 편의 영화를 언급하자면 먼저 이현세의 <카론의 새벽>을 영화화한 김영빈 감독의 [테러리스트](1995)가 있습니다. 당시 서울 관객 32만 명으로 그 해 한국영화 흥행 2위를 기록했죠. TV 드라마 [모래시계](1995)로 최고의 스타였던 최민수가 주인공을 맡았고, 당시로선 신선했던 액션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1997년, 만화가 허영만과 스토리 작가 박하의 <비트>가 엄청난 인기를 끕니다. 이 영화도 [테러리스트]와 비슷합니다. 정우성은 [비트]를 통해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고, 이 영화의 액션도 당대의 파격이었죠.
이후 수많은 네티즌의 질타 속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안티 사이트'를 만들어낸 [비천무](2000)가 있었고, 방학기 원작의 [바람의 파이터](2004), [형사 Duelist](2005) 등이 만들어졌으며, 허영만의 [타짜](2006)와 [식객](2007)은 연이은 흥행을 기록합니다. [올드보이](2003)나 [미녀는 괴로워](2006)처럼 일본 만화를 가져온 작품도 등장하고요. 1990년대부터 그 기미는 보였지만, 2000년 이후의 만화 원작 영화들은 그 만듦새나 각색의 수준에서 1980년대에 비해 월등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영화의 미술 수준이 놀랍게 발전했기 때문이며, 과거의 실패를 바탕으로 '적절한 각색'의 방법을 찾게 된 거죠. 이것은 2000년대 한국 상업영화가 나름의 장르성과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어떤 '중심'이 생겼기에 가능해졌습니다. 원작에 휘둘리지 않게 된 거죠.
하지만 1980년대에 이어 '만화 원작 영화'의 두 번째 전성기는 2006년대 중반 이후 찾아옵니다. 물론 그 원천은 '웹툰'이고, 강풀 작가는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죠. 원작을 읽은 많은 관객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주었던 [아파트](2006)를 시작으로, [바보](2008), [순정만화](2008),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 [26년], [이웃사람]까지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되었고 앞으로도 영화화될 예정입니다. B급달궁의 원작을 옮긴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2005)처럼, 다소 파격적인(?) 실험도 있었고요. 윤태호 작가의 [이끼](2010)는 강우석 감독을 통해 흥행작으로 탄생했고, 강우석 감독은 올해 자신의 두 번째 웹툰 영화인 [전설의 주먹]을 내놓았습니다.
이처럼 웹툰이 인기를 끌게 된 건, 그 작품들이 뛰어난 그림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탄탄한 구성 위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소재 고갈에 허덕이는 영화계에 웹툰계는 말 그대로 보물창고였던 셈이죠.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끈다는 점에서, 웹툰은 영화의 주 관객층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닙니다. 하지만 그런 매력만큼 영화로 옮기는 데 있어 쉽지 않은 부분도 많죠. 지금까지 열 편 정도 웹툰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절반 이상은 썩 좋은 평을 얻지 못하고 있는 건 그런 이유일 겁니다. 대신 [타짜], [식객], [올드보이] 등 '종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대세는 아무래도 웹툰이겠죠.
아마도 올해, 한국의 '만화 원작 영화'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철수 감독이 연출하고 김수현이 주연을 맡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조짐이 심상치 않거든요. 여기에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라는 양대 산맥이 있고요. 그 흥미로운 원작들을 두 감독이 어떻게 영화화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만화 원작 영화 많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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