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류 가운데 짜장면만큼 국민의 사랑을 받은 메뉴도 드물다. 아니, 면류뿐 아니라 모든 음식을 통틀어도 짜장면이 누린 인기와 영예에 필적할 만한 메뉴가 거의 없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대중 면식 최강자의 자리에 안주해왔던 짜장면의 자리가 위태롭다. 중식당 주방의 위생 문제가 언론에 제기된 이후, 화학조미료와 설탕의 과다 사용 논란까지 불거진 상태다. 최고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와 주춤하고 있는 짜장면,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다시 도약할 것인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이지 그 기로에 서있다. 문제적 음식답게 지금까지 숱한 음식 전문가들이 짜장면의 이야기를 많이 볶고 비비고 내놓았다. 그 얘기들을 주제별로 정리해보았다.
대략 전국에 중식당이 약 2만5000개 정도 있다. 이 식당들이 하루 약 700만 그릇의 짜장면을 판다. 한 그릇에 4500원이라면 하루 판매되는 짜장면은 315억 원어치쯤 된다.
● 우리나라에 짜장면은 언제 들어왔을까?
1882년에 발발한 임오군란으로 일본군이 들어오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1883년 청나라 군대와 산동성 지역 노동자들이 함께 들어와 인천에 모여 살았다. 1884년에 처음 중국인 밀집촌이 생겼고 이곳에 살던 노동자들이 서민의 음식이었던 자장미옌을 많이 먹었다. 당연히 이들에게 자장미옌을 팔았던 중국인 노점 상인들도 등장했다. 이들이야 말로 국내 최초의 화상華商이었다.
1905년에 <공화춘>의 전신인 <산동회관>이 개점해 본격적으로 이 땅에 중국 음식을 선보였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것처럼 <공화춘>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짜장면을 만든 곳은 아니다. 이 집에서 짜장면을 처음 만든 것은 1950년 이후였다고 한다. 어쨌든 2005년에 인천시에서 ‘자장면 100주년’기념축제를 개최해 1905년을 짜장면 탄생 원년으로 정해 공식화한바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통해 중국 산동성에서 전북 군산이나 익산, 충남 부여 등지로 상륙한 화교들이 개별적으로 중식당을 차렸는데 이 과정에서도 자장미옌이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다. 즉 자장미옌은 인천뿐 아니라 충남과 전북의 항구 도시에도 중국인들이 도래하면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 중국에도 짜장면이 있다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짜장면’이 되기 이전의 형태가 자장미옌(炸醬麵, 작장면)이다. 자장미옌은 본래 산동성 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서민들의 향토음식이었다. 중국식 된장인 첨면장을 볶아서 채소를 얹어 비벼먹는다. 지금 북경이나 중국 일부 음식점에서 팔고 있지만 한국식으로 변신한 우리의 짜장면과 다르다. 볶는 과정에서 전분을 넣지 않고 물기가 없어 빡빡한 느낌이 든다. 장의 양도 적다. 그래서 우리 짜장면처럼 장에 비벼먹는다기보다 찍어먹는다. 맛도 우리 짜장면처럼 달달하고 구수하지 않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식 짜장면이 북경 등 중국으로 역수출된 ‘서울짜장면漢城炸醬麵’이 등장했다고 한다.
중국 산동의 자장미옌이 한국 짜장면으로 변신한 데에는 첨면장이 춘장으로 변신한 것이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처음에는‘춘장’이란 용어가 없었다. 한반도로 건너온 초기 짜장면에는 첨면장(중국식 된장, 甛麵醬)을 썼다. 첨면장은 콩과 밀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켜 만든 장으로‘달 첨’자를 쓰지만 단맛보다 짠맛이 강한 장이다. 색깔은 황색, 적색, 검은색 등 다양하다. 대체로 오래될수록 차츰 색이 짙어지면서 검은색으로 변한다.
화교들이 식당을 운영하던 초기에는 직접 첨면장을 만들어서 썼다. 식당마다 짜장면 맛이 다양했던 시기다. 물론, 짜장면이 그렇게 인기 있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정치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집이 차츰 늘었다. 이 사람들은 첨면장 만드는 법을 잘 몰라 사서 쓰는 게 편했다. 화교 여성들이 부업 삼아 만들던 첨면장으로는 수요에 한계가 있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영화식품의 사자표 춘장은 첨면장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했다. 첨면장은 줄여 첨장이라고도 했는데 이 발음에서‘춘장’이 나왔다.
● 지금 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언제 생겼나?
1960년대 이후 짜장면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본격적으로 짜장면 맛이 한국화되기 시작한 시기다. 짜장면 맛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소스인 춘장이 영화식품에 의해 대량 생산, 유통되었다. 사자표 춘장은 공장 제품이어서 발효기간이 짧기 때문에 제 색깔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설탕을 졸여 만든 캐러멜을 넣었다. 캐러멜은 단맛이 강하고 색깔이 짙다. 전국의 짜장면 맛과 색깔이 서로 닮아가기 시작한 무렵이고, 지금의 맛과 거의 비슷해진 시기다.
지역에 따라 감자나 다른 저렴한 재료를 넣기도 했지만 당시 대량 재배하기 시작해 가격이 저렴해진 양파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달착지근한 짜장면 맛이 정착되었다. 쌀부족과 미국의 밀가루 도입으로 분식을 장려했던 정부정책도 짜장면의 폭발적 확산에 일조했다.
인건비 상승과 함께 제면기가 널리 보급되었다. 기계면도 수타면 못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어렸을 적 현란하게 밀가루 반죽을 치대던 주방장 아저씨의 모습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화학조미료에 의존하지만 돼지기름으로 만든 라드Lard로 볶아 고소한 풍미와 양파의 달착지근한 맛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다른 음식에 비해 저렴한데다 조리시간도 짧아,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우리나라 사람의 성격과 부합한다.
한 끼 식사로 먹기에도 적지 않은 분량이 나오고 특별히 격식을 갖추지 않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점도 짜장면과 친숙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오히려 건강을 위해 멀리하지만, 돼지기름이 들어가 먹고 나면‘뭔가 기름진 음식을 먹은 느낌’이 들게 해준 것도 짜장면 인기 폭발의 도화선이 되었을 것이다.
● 좀 더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 수는 없을까?
답은‘있다’다. 장을 만들 때 한꺼번에 미리 볶아두지 않고 주문과 동시에 볶는다. 전분도 적게 넣고 조미료와 설탕을 줄인다. 식물성 기름 대신 예전처럼 라드를 써서 풍미를 내고, 공장제 춘장에서 벗어나 제대로 발효시킨 수제 첨면장을 사용한다. 신선한 채소를 바로 썰고 볶아내 불맛을 높인다. 면발 개선을 위한 첨가물을 줄인다. 등등.... 이처럼 답은 나와 있다.
다른 외식업종도 마찬가지지만 짜장면도 제조 원가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국가에서는 대표적인 서민 외식품목이라고 늘 가격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고객도‘싼 음식’으로 여긴다. 좀 더 고급화시키고 좋은 재료를 써서 럭셔리한 맛을 내고 싶어도 원가가 발목을 잡는다. 이상과 현실의 균형은 과연 어디쯤일까.
글·사진 제공 : 월간외식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