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주간조선 김효정 기자/ 조선탓컴 2014.08.15 /
[이 사람]
일본 이야기로 맞아 죽을 뻔한
조영남
"지일(知日), 친일(親日) 다음이 극일(克日)"
맨 처음, 가수 조영남씨 측은 주간조선의 인터뷰 제안을 거절했다. 조영남씨 매니저는 전화를 받고 “아유, 생각도 하기 싫다”고 입을 뗐다. “10년 넘게 진행했던 ‘체험 삶의 현장’ MC도 그만둬야 했죠. 한동안은 아무 활동도 못했습니다.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제인데, 좀 걱정됩니다.” 2005년 출간됐던 조영남씨의 저서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에 대한 얘기다.
도발적인 ‘친일’이라는 문구도 그렇거니와 조영남씨가 당시 일본 극우 신문 ‘산케이신문’과 했던 인터뷰가 문제가 됐다. 산케이 신문은 2005년 4월 24일자 기사에 책의 일본판 발간을 앞두고 일본을 찾은 조영남씨 인터뷰를 실으며 “조씨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냉정한 대응에서는 일본이 한 수 위인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곧바로 한국에서 논란이 일었다. 산케이신문은 4월 26일자에 ‘방문했을 뿐 참배한 것은 아니다’며 정정보도문을 실었다.
나중에서야 조씨는 방송에 나와 그때의 발언에 대해 차근차근 얘기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2년 동안 집에서 먹고 자기만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보도가 왜곡됐다고 설명도 했지만, 반발은 걷잡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구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던 방송 그만두고, 전시회도 그만두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때의 발언은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 재판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데, 일본이 국제 재판 경험에서 한 수 위라는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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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6일 자택에서 만난 조영남씨는 친일(親日)이 "친하게 지내자"는 친일이라고 강조했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영남씨의 ‘친일’은 ‘일본 편’이라는 뜻의 친일이 아니라, ‘친할 친(親)’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일본과 친구가 되자는 뜻의 친일”이다. 조씨는 “우리가 일본에 대해 과거사를 사과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일본이 듣지 않는 이유는 국력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며 “일본을 제대로 알고, 친하게 지내 결국 일본을 이겨야 한다(克日)”고 주장했다. 10년 전의 그 소동에도 변하지 않은 조씨의 주장이다.
조영남씨의 집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서울 동쪽 끝까지 보일 듯 탁 트인 풍경을 앞에 두고 조씨는 “그림 좀 그리면서 인터뷰할게요”라며 캔버스 앞에 앉았다. 거실 곳곳에는 그리다 만, 완성된, 곧 완성을 앞둔 그림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마침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지난 8월 3일부터 조영남씨의 개인전 ‘조영남의 왕따 현대 미술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조씨가 대표작으로 꼽는 것은 ‘극동에서 온 꽃’이다. 거의 매년 조씨는 같은 제목의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꽃병에 꽂힌 것은 꽃이 아니라 ‘화투짝’이다. 조씨는 그림 앞에서 주섬주섬 화투짝을 확대한 종이를 주워들었다.
“이 화투짝 그림이 온 곳이 일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화투놀이는 참 많이 하는데, 원류가 일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매년 봄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벚꽃놀이도 그렇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벚꽃은 일본 꽃이라고 쳐다보고 좋아하는 것도 눈 흘김 당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자연스럽게 벚꽃놀이를 하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서 그만큼 ‘모른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조씨는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일본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는 일본인의 근면성과 예의 바름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어로 적힌 주소 하나만 덜렁 들고 일본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택시기사가 택시에서 내려 여기저기 땀 흘리며 물어서 길을 찾아주었어요.” 결국 일본이 지난 수십 년간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그 원동력에서 일본의 장점을 취해 ‘극일’을 하자는 얘기다.
동시에 조씨는 일본과 일본인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성실하고 착합니다. 더러는 과거사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줄 알아요.” 조씨가 지난 6월, 26년 만에 낸 앨범 ‘조영남 독창회’에 실린 네 번째 곡 ‘어느 별에서’가 그런 일본인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다. “미스인터내셔널 요시마스 이쿠미라는 젊은 여자가, 한 인터뷰에서 소신 있는 발언을 했어요. 아베 정부가 위안부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다, 위안부의 삶에 슬픔을 느낀다는 발언이었어요.” 그녀의 용기에 화답해 조씨는 노래를 만들어 헌정했다. “이런 일본인이 있는데, 일본을 무조건 적으로 돌려야 할까요.”
그렇다면 과거사 문제는 덮어두고 가야 할까. 조씨는 “일단은 놔두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양 사상에서 아버지, 조상에게 절을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일본 입장에서 야스쿠니 신사에는 조상이 있는데, 참배 자체를 막으려고 하니 못 받아들이죠. 만날 같은 문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우선은 놔둬야 합니다.” 대신 조씨는 “국방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일본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면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안 하고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절판된 조씨의 책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 “칭기즈칸은 싸움에 성공하는 바람에 칭기즈칸이 되었고, 도조 히데키는 싸움에 실패하는 바람에 전쟁범죄자로 곤두박질쳤다. 한 끗발 차이였다.”
조영남씨가 책을 낸 10년 전과 지금은 한·일 관계에도 차이가 있다. 10년 사이에 조씨의 ‘친일’을 실제로 입증해줄 만한 사례가 등장했다. 바로 한류 스타들이다. 그동안 많은 한류 스타가 일본에 가서,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고, 일본인과 어울려 방송에 출연했다. 그러자 한류 팬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찾아와, 한국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했다.
조씨는 또 인터뷰 당일 조간신문 1면을 짚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를 방문해 일본의 만행에 대해 증언했다는 기사였다. 조씨는 이에 대해 “일본만큼 우리나라의 힘이 세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사진 촬영을 하려 자리 잡은 벽면에서 조씨가 그리고 있던 작품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임신한 부인과 자신의 누드 사진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했던 미술교사 김인규씨의 사진이었다. “참 용기 있는 사람이에요. 저는 용기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조씨의 발언도 여전히 용감했다. “언제까지 옆 나라를 원수의 나라라고 해야 하나요. 비하하고, 등 돌리고. 지일(知日), 친일 다음에 극일입니다.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출처 :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4/2014081402767.html?csmain
김효정(주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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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독학으로 수능을 준비해 대학에 진학했다. 남달리 보낸 청소년기 탓인지 교육,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한때 아이돌 그룹에 빠져 콘서트 보러 일본과 태국을 오갈 정도로 열성 팬 활동을 한 탓에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다. 타고난 야구 팬에, 스포츠를 좋아하는 스포츠 마니아기도 하고, 여성과 아동 등 사회 복지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가능한 한 다양한 문제를 고민하고 취재하려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