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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 사람] 의리 외길 20년의 배우 ... 의리때문에 뜨다...김보성

바라쿠다 2014. 8. 22. 14:56

정상혁 문화부기자 / 조선일보 2014.06.02.월

[이 사람] - 정상혁 기자의 TV 한 수

의리 외길 20년의 배우

김보성

의리로 떴기에…다른 CF 참는데 '으리!'




“사나이로 태어나 무엇이 보람된 삶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시를 읽는다. 갈수록 좀 이상하다. “모든 물질만능주의 세계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업(業)을 이기는 사나이들….” 제목 ‘사나이의 길’. 여기, 의리 외길 20년을 걸어온 남자가 있다. 마침 전화가 울린다. 발신자명 ‘정의의 사나이’. 이 시를 쓴 남자다. 30일, 배우 김보성(본명 허석ㆍ48)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한 빈대떡 집에서 만났다. ‘의리’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가히 신드롬이다. 지난 3월 화장품 광고에 이어 지난달 식혜 광고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각종 CFㆍTV 프로그램 섭외 1순위가 됐지만 그는 “자칫 의리의 진정성이 훼손될까 출연을 자제하고 있다”며 “나보다 의리ㆍ나눔ㆍ정의ㆍ화합 이런 단어들이 대세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85년 고교 졸업 당시 생활기록부엔 “언행은 미숙하나 급우 간 인기가 좋음”

그가 ‘의리 전도사’가 된 건 생사를 위협하는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부터다.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첫 고비는 1969년, 세 살 때 왔다. “서울 월곡동에 살았는데, 프로판가스 가게가 폭발했어요. 길가다가 난데없이 죽을 뻔 한 거죠.” 고3 학력고사 직전엔 학우를 괴롭히던 동네 불량배들과 13대1로 붙었다. “각목으로 엄청 맞아서 2주간 학교에도 못 나왔어요. 코뼈 박살 나고 왼쪽 눈은 거의 실명됐죠.” 이 일로 그는 시각장애 6급이 됐다. 그가 선글라스를 쓰는 이유다. “눈이 잘 안 보이는 대신, 보이지 않는 걸 추구하게 된 셈이죠.” 그가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켰다. 혀가 좀 풀리는가 싶더니, 씹던 부침개가 사방에 튀었다. “불의를 못 참겠어요. 돈이든 육체의 강건함이든, 힘의 우세로 군림하려는 건 못 참아요.” 1985년 고등학교 졸업 당시 생활기록부엔 “언행은 미숙하나 급우 간 인기가 좋음”이라고 적혀 있다.

김보성이 선글라스를 벗고 주먹을 쥐었다. 그는
▲ 김보성이 선글라스를 벗고 주먹을 쥐었다. 그는 "액션배우인 만큼 내년 초쯤 액션영화에 출연해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김보성발(發) 의리 열풍엔 무협소설류의 허장성세가 있다. “위경련이 와도 병원엔 가지 않는다” “상처를 꿰맬 때도 마취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그 예다. 그는 2011년 SBS ‘붕어빵’ 녹화 중 본인이 휘두른 쌍절곤에 맞아 일산 백병원에서 오른쪽 눈가를 서른 바늘 꿰맨 적이 있다. “괜히 오버하다 피를 쏟은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마취 없이 꿰맸다”면서 “움찔대지도 않으니까 의료진도 신기해하더라”고 말했다. “제가 건강의 상징 아닙니까. 김보성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국민에 대한 의리가 아니죠. 돈키호테 같을지 모르지만, 아직 건강검진 한 번 안 받았습니다. 의리에 헌신하다 그냥 한 방에 가겠습니다.” 이 날 그는 간이 안 좋아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온 길이었다.

식혜 광고로 일어난 의리 신드롬… 섭외 1순위지만 출연 자제하고 있어

초지일관이었지만 오해가 많았다. ‘터프가이’ 이미지 탓에 시비도 잦았다. 사건ㆍ사고가 하도 잦아 동생이 “이름을 좀 바꿔보면 어떻겠냐”고 할 정도였다. 본명에 대한 의리를 잠시 접고, 1993년쯤 클 보(甫)에 성 성(城)을 써 개명했다. 이름이 바뀌어도 운명은 계속됐다. “아는 사람이 사업자금을 부탁하기에 통장에 있는 돈을 다 꺼내줬어요. 차용증 써준다는 걸 마다하고, 집에 가서 ‘영웅본색’이나 한 번 더 보라고 했죠. 근데 의리가 되돌아오질 않더라고요.” 보증 잘못 서서 집에 가압류 딱지도 붙고, 폭행 사건에 연루되거나 매니저 친구의 용역회사 홍보를 돕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전 재산 20억원을 잃었고, 5억원 정도가 빚으로 남았다. “어머니가 ‘의리의 사나이는 소송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용서도 포용도 의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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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의리'를 외쳐온 탤런트 김보성의 식혜 광고. 팔도 제공
▲ 20년 넘게 '의리'를 외쳐온 탤런트 김보성의 식혜 광고. 팔도 제공

그는 2008년 ‘관우의 의리론’을 읽은 적이 있다. “책에 ‘사나이에겐 목숨보다 귀한 게 있다.’는 챕터가 있어요. 그게 바로 신의”라면서 덧붙였다. “인생 최고의 수는 무수(無手)예요. 어떤 수든, 진실을 못 이겨요. 수가 없는 사람 앞에선 어떤 수를 써도 안된다는 거죠. 전 그냥 자연 그 자쳅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김보성에 으리 외쳐

가훈은 ‘대도무문(大道無門)’. 옳은 길을 가는 덴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에게 ‘의리’의 정의를 물었다. 급히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외쳤다. “정(情)! 인류애죠. 사랑이에요.” 의리도 발전한다. 처음엔 우정으로, 나중엔 공익과 나눔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보성은 지난달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에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 은행에서 1000만원을 대출했다. “의리도 좋지만 가족에 대한 의리는 어쩔거냐”는 안타까움이 쏟아지는 이유다. 그는 “아내도 의리가 있다”고 짧게 답했다. 7살 연하의 아내에게 프러포즈할 당시 그가 꺼낸 첫 마디는 ‘당신, 의리 있어?’였다.

김보성이 서울 한남동의 한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의리'에 대해 강변하고 있다. 그가 인터뷰하는 동안 월드컵 축구 대표팀을 성원하는 액션을 취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 김보성이 서울 한남동의 한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의리'에 대해 강변하고 있다. 그가 인터뷰하는 동안 월드컵 축구 대표팀을 성원하는 액션을 취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학창시절, 불량배들에게 얻어맞아 얼굴이 크게 상했고 오른손은 넷째, 다섯째 주먹 뼈가 함몰돼 있다. “의리”를 외치며 기왓장 격파를 하다 뼈가 부서져 버린 탓이다. 그래도 그는 “관상(觀相)ㆍ수상(手相)보다 훨씬 중요한 게 심상(心相)이다. 마음이 하늘의 심금을 울릴 때, 그때 비로소 운이 튼다”며 자신만만이었다. 김보성표 의리의 요체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평생 가는 게 요새 드물죠. 사람은 자꾸 이기적으로 변하고요.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막걸리 통을 다 비우고, 그가 처남과 함께 작년 10월에 한남동에 열었다는 고깃집 ‘의리의리한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에게 “으리(의리)”를 외쳤다.
출처 : 오늘, 아름다운 날
글쓴이 : 이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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