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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간통문학과 혼외정사 / 곽대희 박사

바라쿠다 2014. 3. 17. 14:14

간통문학과 혼외정사


 최근 문단에서 히트를 기록하는 국내외 소설들은 거의 모두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한다는 스토리를 주제로 한 것들이다.

사랑은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다는 자유주의 연애관이 반연된 작품들이지만 사회적 분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런데 섹스 문제가, 주제가 되는 이런 드라마들은 자녀 교육상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여 방송이 전면 금지되었었으나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홈 드러머 <내 남자의 여자> 의 방송을 계기로 비슷한 시추에이션의 작품이

연달아서 브라운관을 무서운 속도로 타고 폭주하는 것을 본다.

 

그럼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왜 이렇게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간통이 많이 일어나고

또한 그것이 대중들의 관심의 표적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많은 여성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사회지도층과 부유계층에 연애결혼보다 정략적 타산에 의한 혼인이 많아지다 보면

애정의 결핍 때문에 필연적으로 간통과 외도 욕구가 분출된다고 주장한다. 남녀는 서로 성적 도발이 존재하고

그 어필에 반응하는 애정이 싹터서 맺어지는 자연스러운 커플이 아니라 그런 결합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동물학적 배려가 생략된 채 결혼하게 되면 각기 자신의 기호에 따라 애정의 배출구를 찾게 된다는 것이

간통 유발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금세기 초 유럽의 문학들이 거의 남여의 불륜, 즉 간통을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독자 여러분도 익히 아는 사실일 것이다. 초기의 간통문학으로 전형적인 작품은

프로벨의 <보봐리 夫人> 정도인데, 이것은 사회의 율법-禁忌를 깨뜨리고 하우스 와이프의 시각에서

묘사하는 기법으로 집필한 당시 금단의 소설, 다시 말해 독자들의 인기를 끈 연애소설로서

청춘남녀 필독의 연애교과서 같은 책이었다. 당시 문학의 수준에서는 아직 캐비넷 속에 곱게 감춰졌던 간통이 밖으로 꿰져 나와

여러 사람들 앞에 드러내놓게 되는 <남편 이외의 사내와 통정하고 희열을 느끼는 보봐리 부인>이 용기 있고

현명한 여인처럼 보였을 지도 모른다. 

 

 이 시대는 포르노 문학도 존 글랜드의 <화니힐> 의 경우처럼 반드시 여성의 시각에서 소설을 써나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것이 약한(?) 여성에 대한 동정론으로 변질, 결국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좀 더 근자에 들어서면 <채털레이 부인의 사랑>같은 보다 더 에로틱한 내용으로 充滿된 간통문학이 등장하는데,

그것을 그만큼 사회가 섹스에 대해서 관대해지고 성적으로 어지러워졌다는 의미와 같다.

 

 그럼 왜 이렇게 세계의 문화를 리드하는 유럽이 이런 보기 흉한 모습이 되었는가?

그것은 그들 문화의 원류격인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역사학자의 의하면, 로마시대에는 애초부터 법적으로 간통이라는 죄목이 없었다고 한다.

결혼은 그 사회에서 전적으로 私的인 이벤트로 간주되기 때문에 국가가  법률로서 간섭하지 않는다, 라는 원리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역사의 유물로서 남아있는 문서들을 뒤져보더라도 결혼에 관한 공적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한 점도 없다고 한다. 보관 소홀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결혼을 자유로 행하고 또한 자유롭게 헤어지는 것이

그 사회의 율법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결혼의 비중이 가벼운 만큼 누구나 가볍게 그것을 생각하고 또한 그렇게 취급해 왔다.

그래서 남녀의 공동생활은 단지 함께 살고 있다는 同棲 개념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안이한 인식이었으므로 정을 통함으로써 남의 여자를 가로챘다는 법적 제재는 처음부터 불필요했다.

실지로 국외에 1-2년 이상 출정하는, 절대적 통치자 주리어스 시저 만 하더라도 그 아내는 남편의 출국 중

외간남자와 밀회를 마음 놓고 즐겼던 것을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당시의 실정을 알 수 있다.

 

 우리들 인간의 삶 방식이 각종 규제를 받는 것은 공동체 생활의 출발부터 의논된 것이지만

사실은 문서제도가 생기면서 명확하게 법제화되었다.

따라서 결혼관계를 입증하는 공문서가 없는 사회에서 남녀가 감성에 호소해서 서로 결합하고 또한 멋대로 헤어지는

이합집산의 모양을 보이는 것은 로마 사회에서 흔히 보는 사회질서였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간통을 엄하게 治罪했던 것에 비하면 전혀 다른 법률해석이었다.

 그 문화적 잔재가 유럽 대륙에 남아서 프리섹스 의식을 무의식중에 형성하고,

또한 그것이 간통문학을 만들어 개개인의 생활도 그 유혹 속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몸부림치게 만든다고 말할 수 있다. dhkwak

출처 : 꿈같은 내 인생
글쓴이 : 하늘땅그리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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