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수 이 년 얼굴 핀것 좀 봐.호호.. "
" 그러게 말이야, 새신랑이 오죽 잘 해 줬을까.호호.. "
" 까불지들 마.. 지 년들도 다 겪었으면서.. "
선영이의 시누이인 희수의 집들이에 친구들과 같이 온 성희다.
뒤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희수를 놀리는데 재미를 붙인 친구들과 권커니주거니 마신 술이 이미 꽤 많은 양이다.
시간도 저녁 10시가 넘어 같이 온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가장 친했던 영미와 셋 뿐이다.
" 니 신랑이 실하게 생겼더라, 밤일은 잘하디? "
" 유부녀가 되면 다 니들처럼 뻔뻔해지냐? 못하는 소리들이 없어.. "
" 너도 똑같애, 지년은 뭐 다를줄 아나보네.. 어디 한번 두고보자.호호.. "
" 근데 민수오빠는 왜 그렇게 멍청하다니.. "
친구인 영미와 희수의 얘기를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 우리 오빠? 왜.. "
이미 이곳에 올때부터 작정을 하고 온 터였다.
아직까지 진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대는 선영이를 두고 볼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이유로 진호를 가질수 없다면, 선영이 역시 그 대가를 치뤄야 하는게 맞는 일이다.
" 니 올케말이야, 우혁이 엄마.. 어쩜, 아직도 전남편을 만나고 다니더라.. "
" 전남편이라니, 올케가 처녀가 아니었다는 얘기야? "
" 어머, 몰랐어? 애까지 낳았었는데, 난 니네집에서 다 알고도 받아준줄 알았지.. "
" 자세히 얘기해 봐.. "
" 난 몰라,얘.. 괜히 나만 나쁜년 되기 싫어.. "
" 너 누구 미치는 꼴 볼래? 빨리 얘기 못하니 ~~ "
" 내가 무슨 돈이 있어? "
" 하기야.. "
하도 답답해서 선영이한테까지 돈 얘기를 꺼낸 민수다.
'데킬라'를 오픈하면서 아가씨들에게 줄 선불이 없어 사채까지 끌어다 쓰기도 했고, 이제 시작 단계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소소하게 나가는 돈도 장난이 아니다.
형한테서는 아직도 내 지분이 나올 기미마저 없는지라 속만 타들어 가는 요즈음이다.
" 괜히 일 벌린거 아냐? 그냥 회사에 있는게 좋지 싶었는데.. "
" 뭘 안다고 떠들어, 간섭하지 말고 당신 일이나 잘 해.. "
" 왜 나한테 화를 내고 그래? 그럼, 맨날 밤을 세우고 들어오는데 걱정이 안돼? "
괜시리 와이프한테까지 짜증을 내게 된 것이 스스로 못마땅하다. 형과 같이 회사를 꾸려 간다는게 싫기도 했지만, 진호가
나타난 이후로는 모든게 엉망진창이 돼 버렸기에 어떤 돌파구를 찾고 싶어 벌린 술 장사다.
당연히 받으리라 생각했던 회사의 지분이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는 마당에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지 싶다.
" 미안하다, 내가 요즘 예민해 졌나 봐.. "
" 너무 무리하지 마, 당신도 알겠지만 난 욕심 없어..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야.. "
" 그래, 알았어.. 술이나 한잔하자.. "
" 잠깐 기다려.. "
자금이 부족해서 빌린 사채의 이자가 자꾸 눈덩이마냥 커지고 있다.
아무래도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이라도 받아 급한 불을 꺼야지 싶어, 선영이와 의논을 하기로 마음 먹고 집으로
일찍 들어 온 폭이다.
" 진호는 좀 어때.. "
" 이제 자리가 잡힌 모양이야, 제법 주문이 많어.. "
" 다행이네.. "
가게의 매상을 신경쓰느라 날마다 아침 무렵에나 집에 들어오곤 했었고, 가끔씩은 인희네 집에서 머물기도 했다.
어린 우혁이만 있는 빈 집에서 그 동안 홀로 저녁을 먹었을 것이다. 함께 저녁을 먹었을 때는 나름 정성을 들여 식탁을
차리던 선영이었다.
" 나도 한잔 줘.. "
냄비에 반쯤 남은 김치찌개와 소주를 가져와, 거실 탁자에 내려 놓은 선영이가 보조 의자를 당기더니 걸터 앉았다.
" 눈오는 날 거기 갔었어.. 진호와 비닐하우스에 같이 있더라.. "
" ...그런줄 알았어.. 미안해, 그치만 진호씨를 모른척 하기가 그랬어.. "
" 새삼스러울것도 없겠지, 한때는 부부였으니까..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 당신을 내 여자인줄로만 알았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싶어서 말이야.. 핑계같지만 그래서 여자를 안았지, 잠시라도 잊고 싶었어.. "
" 알아, 이해도 되고.. 난 자격도 없는 여잔데,뭐.. "
어느새 소주병을 2개나 비우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처음에는 배신감으로 몸이 떨리며 안정을 찾기가 힘들었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해 봤지만 쉽게 결론을 내릴수가 없었다.
대학 후배인 선영이가 진호와 사귀고 있는걸 알면서도 맘 속 가득 그녀를 품었더랬다.
상식적으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선영이를 떨쳐 낼수가 없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 후에도 여전히 그녀의
고혹적인 미소는 잊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진호가 사고로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고, 직접 선영이를 찾아 그 사실을 확인할수 있었다.
당시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선영이를 내 여자로 만들수 있다는 설레임만이 가득했다.
어렵사리 선영이를 설득했고, 부모님에게는 선영이의 과거를 숨긴채 결혼이란걸 했던 것이다.
죽었다던 진호가 다시 살아 돌아와 이런식으로 뒤죽박죽이 될줄은 뉘라서 짐작인들 했겠는가.
미리 작정한 건 아니지만 인희를 만나서 몸을 섞게 되고, 짬짬이 선영이와 이혼을 할것인가도 염두에 둬 봤지만, 도저히
헤어질 자신은 없었다.
그만큼 선영이는 내 인생에 있어 삶의 기쁨이었고 모든 의미였기 때문이다.
" 나도 한잔 줘.. "
진호가 어이없이 사고를 당하고 눈물로 지내던 그 시절에 따뜻한 위로로 나를 감싸주던 민수였다.
처음부터 민수와 인연을 맺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변함없이 아껴주려는 그의 노력이 고맙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긴 했지만, 결국 민수의 뜻을 받아들여 결혼을 했고 우혁이까지 낳았다.
친정 부모님의 말씀대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니, 수경이를 억지로 떼어 놓아야 했던 죄책감마저 차츰 희미해 져 갔다.
그러던 차에 죽었다던 진호가 나타났고, 수경이도 다시 만나 볼수 있었던 것이다.
한쪽 다리를 절며 나타난 진호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수경이를 다시 만나고 난 후, 그들과 또 다시 떨어진다는게
두렵기만 했다.
차일피일 그네들과 만나는 사이, 지금의 남편에게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할수 밖에 없어 미안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 알아, 이해도 되고.. 난 자격도 없는 여잔데,뭐.. "
눈이 내리던 날, 비닐하우스에서 진호와 같이 있는 광경을 남편인 민수가 지켜 봤다는걸 어렴풋이 짐작했던 터이다.
어떻게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차에, 그 날의 일을 남편인 민수가 먼저 꺼내고 있다.
'살아가는 이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가는 이유 29 (0) | 2013.05.15 |
---|---|
살아가는 이유 28 (0) | 2013.04.15 |
살아가는 이유 26 (0) | 2013.03.31 |
살아가는 이유 25 (0) | 2013.03.21 |
살아가는 이유 24 (0) | 2013.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