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동산

[스크랩] 76세 친정엄마가 돈을 버는 이유

바라쿠다 2014. 8. 21. 02:43

김용진

 

 

"너희들이 주는 돈으로 그럭저럭 살면 되는데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싶어 공연히 서글프고 눈물도 났다. 다리가

어찌나 아픈지. 내 몸이나 잘 간수하면 다행일 나이에 내가 왜 이러고 사나 후회했지. 수시로 마음이 오락가락다.

한 달에 20만원. 가만 있으면 그 돈을 누가 주냐? 발품 파니 그래도 다달이 20만원씩 들어오잖냐. 그런데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금방 마음이 바뀌지 뭐냐. 그만 둬야지.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하겠다고 해야지. 이렇게 하루에

도 몇 번씩 갈등이왔다.

 

그러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벌써 넉 달을 넘겼으니 모두 합해 80만원 벌었다. 이젠 마음 굳혔다. 지금은 방학이

라 쉬고 있지만 방학 끝나면 또 하려고 한다. 내년에도 신청할 거야.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학교가 크거든. 비라도 오는

날은 혼이 쏙 빠질 것 같아. 그런 날은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까지 몰려 나와 함께 교통정리를 하지. 처음에는 미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 잘한다. 선생님들도 할머니, 할머니 하며 내게 얼마나 깍듯이 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 돈 번다고 친구들에게 국밥도 한 릇씩 사 주고, 일 끝나고 오는 길에 옷집에 들러 옷도 하나씩 사 들고 온

다. 그런 일을 하입성도 끔해야지. 아무 옷이나 입고 다니면 남보기도 흉하잖냐. 신발도 편하고 좋은 걸로 하나 샀

다. 20만원이라해서 내 달 월급인데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그 신발 신고 더 편하고 기쁘게 일할 수 있으니 그것도

잘한 것 같다. 걱정은 마라. 내가 번 돈으로 손자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며느리 용돈도 몇 푼씩 집어 주고.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하는 날까지 해 볼란다."

 

 

친정엄마의 일장 연설이시다.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당신이 돈을 버는 이유에 대해 설명이 길다. 올해 일흔 여섯인 엄

마는 몇 달째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며 돈을 벌고 계신다. 아이들 등교시간에 맞춰 나가 매일 한 시간씩 교통

정리를 하시는데 내내 서 있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능숙하게 하지 못해(엄마 말씀대로 '미스'가 많아서) 자존심에 상처

많이 입으셨던가 보다. 그래서 갈팡질팡하셨던가 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밥은 먹고 사는데 왜 이 고생

이냐 싶으면 당장 관두고 싶다가도 그렇게 번 돈으로 옷도 한 벌씩 사 입고 친구들에게 밥도 한 그릇씩 사주며 가끔 며

느리에게 용돈도 집어주다 보니 그것도 참 보람있고 기쁘더란다. 그러다 보니 이젠 마음 굳혔단다. 2학기에는 당연히 

겠지만 내년에도 꼭 신청하시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펼치신다.

 

 

 

 

 

 

그야말로 당신 몸 하나 잘 간수해주시는 것만도 감사할 일인데 돈을 버느라 힘들어 하시는 걸 보는 자식들 마음은 영

편치가 않다. 당장 그만 두라고 하고 싶지만 한 편으로는 엄마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는 게 오히려 엄마

의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해준다고 생각하니 만류하는 게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당신 수족처럼 사셨던 아버지가 불시에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엄마는 삶의 의욕을 잃고 오랫동안 힘들어 하셨다. 그

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드시더란다. 한 순간에 확 죽어버리면 좋을 일이지만 시름시름 아프다가 드러눕기라

하면 어쩔까, 그럼 당신 자신도 괴롭겠지만 무엇보다 자식들 못할 짓 시키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나

더란다.

 

그때부터 엄마는 새벽에 한 시간, 저녁에 한 시간씩 운동장을 도신다. 그게 벌써 10년이다. 지난 봄, 친정식구들이 모

여 여행을 다녀왔는데 어느 사찰 앞에 이르자 엄마의 폼이 순식간에 경보선수처럼 변하는 것을 보고 우린 포복 졸도했

다. 걷기 좋은 길이 나타나자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하신 것 같다. 주먹을 쥔 손은 양쪽 엄지 손가락이 위로 치켜 들

려 있었고 겨드랑이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두 팔꿈치는 앞으로 뒤로 재빠르고 가볍게 움직였다. 자동이었다. 10년 세

월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빠지지 않고 걸었으니 몸이 먼저 반응할 만도 하다.

 

 

 

 

 

 

 

자존심이 강한 엄마는 남에게 신세지는 걸 유난히 싫어하신다. 또 누구에게 인사치레를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대충 면

닦거나 흉내만 내지 않는다. 당신이 흡족할 만큼 하시는 것이다. 옷 하나를 사더라도 싸구려는 눈에 들질 않는다.

러다 보니 1년에 한 벌을 사더라도 메이커 아니면 안 입는다. 자식들과의 관계에서도 엄마의 꼿꼿한 성품은 여지없

드러난다. 아들들과 성묘를 다녀오면 아들들이 모든 경비를 부담하게 하지 않는다. 당신이 기름값을 대고, 다녀온

음 저녁 식사비도 앞장 서 계산하신다. 자식들이 극구 만류하여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했을 경우는 일부 떼

며느리 용돈으로  건네준다.

 

 

어느 날 친정에 갔더니 뒤 베란다 쪽에 빈병이 잔뜩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주워 모은 거란다.

폐지를 줍지는 않지만 골목을 돌며 빈병을 주워 모으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청승스러워 보일 것 같아 다들 깜짝이나

놀랐다. 왜 그러냐. 용돈 부족하면 말씀을 하시라. 이 동네에서 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것도 자식이 여덟이나

되는 사람이 빈병이나 주으러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 당장 그만 하시라, 며 펄펄 뛰었다. 그런데 엄마의 변

명이 가관이다.

 

"일부러 주으러 다니지는 않고 오가는 길에 눈에 띄는 것들만 주워 오는데 그게 한 달이면 10만원은 된다. 그 돈으로 

좋은 일을 한다. 가난한 할매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아파도 약도 못사먹는 할매들 약도 사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른

다. 지난 달에는 돈이 좀 더 많이 들어와 손자들 용돈도 줬다. 내 몸 좀 힘들면 이렇게 기쁘게 살 수 있는데 왜 못하게

하느냐."

 

유구무언이다.

 

 

 

   

 

노후가 걱정이다. 이렇게 자식들에게서 용돈을 받거나 노년들을 위해 정부에서 마련한 일자리를 통해 수입을 내는 

어르신들도 있지만 이건 어느 정도 시간이 가면 한계치를 드러낼 것이다. 갈수록 노령인구는 많아질 것이고 자식

로부터 용돈을 얻어쓰는 일도 쉽지 않을 터이니 길게 사는 것을 오히려 저주해야 할 날이 올 것 같다. 

 

오늘 자 한국경제에 실린 기사이다.

 

직장인 두 명 중 한 명(53%)은 노후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는 47%

의 직장인 중 60%는 국민연금 외에 다른 대책이 없었다.
퇴직금 전부 또는 일부를 미리 받아 쓴 직장인도 60%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직장인 20% 정도만 개인연금 등을 통해

노후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최근 전국 직장인 29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로 미흡한 노후준비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정년 퇴직 후에도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직장인 65%는 "현재 직장 퇴직

후 계획이 없다"(지난해 한국기술교육대 조사)고 답했다. 100세 시대에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방증이다. 일자리

가 노인 복지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늙어도 좋을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인가.

 

 


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저자
굄돌 이경숙 지음
출판사
청출판 | 2012-07-1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부모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책은 두 딸을 ...
가격비교


 

 

출처 : 굄돌의 내남없이
글쓴이 : 굄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