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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The Reader - 허물어지기 위하여 그리고 두렵지 않기 위하여-

바라쿠다 2014. 7. 5. 11:06

 

더 리더- 허물어지기 위하여 그리고 두렵지 않기 위하여-


 

오랜만에 안동에 갔다. 일이 있어 갔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대구 회의에 갈 시간은 넉넉하여 어울려 영

화를 보려 했다. 그런데 딱히 좋은 영화도 없고 또 영화관에 가면 대구로 출발할 시간이 빡빡한 것 같

아 어쩔까..하는데 K선생이 자기 집에 가서 영화 한편 보자는 것이다. 감동 먹어서 권하고 싶은 영화라

하기에 무슨 영화인가 물었더니 ‘The Reader"라고 했다. 본 영화인데.. 그러나

한번 본 영화지만 좀 더 큰 화면에서 여럿이 같이 보면 느낌이 다를 것 같아서 쾌히 동의를 하고 그녀

의 집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참으로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많았다(영화 다운 받아 컴으로 혼자 보는

것의 한계)

 


영화의 내용은 소설로도 알려져서 굳이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줄거리가 곧 심리의 탐색이

라 한마디로 말할 수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할 수도 없다. 

전차승무원인 한 여인(안나)이 길에서 토하고 있는 어린 남자아이(15세의 고등학생 마이클- 그녀는

그를 꼬마라 불렀다) 를 도와주다가 나중에는 육체적으로 결합이 되는데 그녀는 그에게 책을 읽어 달

라 한다. 숫제 책을 읽어 주어야 섹스를 할 수 있는 상태에서 꼬마는 열심히 오디세이부터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숫제 스스로 책에 몰입하여 온몸과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된다. 둘은 자전

거를 타고 며칠간 멀리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 여행길, 시골의 조그만 성당에서 성가가 울려 퍼지

고 그곳에서 그녀는 참담하면서도 감동적인 표정으로 눈물을 짓는다. 그녀의 감성이 돋보이는 장면이

다.

그런데 그녀가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텅 빈 집에 찾아간 소년은 미칠 것만 같다. 왜 그녀가 떠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소년의 방황은 타인과의 단절로 나타나고 그는 법대에 진학하면서 자신

의 고향과 멀어져 버린다. 그녀와의 추억이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법대생들의 현장견학이 있었다. 전범 재판이었고 그 대상은 나치에 복무한 전력자- 여섯명

의 여인들은 수용소 감시인이었다, 대부분이 자신의 죄를 부정하는데 오직 한 여인만이 스스로 원해서

감시인이 되었으며 자신의 일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거기 앉아 있는 모든 여인들이 그녀와 함께 일했다는 증언까지 한다. 그런데 그 여인은 바로 말없

이 떠난 자기의 연인- 안나였다. 그녀는 감시원으로 있으면서 어린 소녀들을 그녀의 방으로 데려가 책

을 읽게 했고 그녀들에게 맛난 것도 주었지만 결국은 가스실로 보내었다. 그런 그녀의 이력에 그는 충

격을 받는다. 그 역시 그런 놀이개감이었다는 사실-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떻게 규정할 수 없는 마음

이 되어 전전긍긍하면서도 계속 법정에 가게 되는데 재판과정에서 안나의 동료들이 그 당시 창고에 가

둔 300여명의 유태인들이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건의 모든 책임을 안나에게 뒤집어 씌우는 사태가 발

생하고 그것을 부인하는 안나에게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재판관은 그녀에게 직접 글씨를 써보라고 한

다. 필적을 대조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멈칫한다. 그녀의 그 머뭇거림, 곤혹스러움을 바라

보면서 그는 그제서야 모든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전

차 승무원으로서 열심히 일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승진의 기회가 와서 사무직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

러나 그녀는 글을 몰라서 사무직을 할 수 없노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직장을 버리고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또한 이쯤에서는  법이란 것이 무엇인지, 인간의 선과 악이란 것의 잣대는 무엇인지 독일인이 근본적

으로 갖고 있는 죄의식 혹은 죄로부터의 도피..등 짚어보아야 할것들이 참관하는 법대교수와 법대생들

의 입에서 터져나온다.  우리 또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한다. 그는 그녀의 비밀을 말하고 그녀가 주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어야만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그는 그녀의 자존심을 택했고 다른 5명의 여인이 4-5년의 징역을 받을 때 그

녀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그녀는 결코 말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약점과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바꾸어버린 것이다.


그는 변호사가 되고 자신의 학우와 결혼을 하나 그 결혼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그의 마음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폐쇄성은 자신의 딸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서로를 멀어지게 했다. 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정작 자신의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니 노력하고 싶은 마음조차 가질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그녀-그는 그의 딸을 데리고 고향을 찾게 되고 거기서 그

가 그녀에게 읽어 주었던 책을 발견한다. 행복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가 할 수 있는 발견하게 된

다. 그것은 그녀에게 다시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오디세이부터 그때와 같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녹음하여 그녀에게 보낸다. 읽는 일은 그를 다시 그때, 그녀를 사랑했던 그때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그

때와 꼭 같은 열정으로 글을 읽고 녹음한다.

 


그녀는 갑자기 그의 선물을 받는다. 얼마나 오랜 세월 잊어왔던 것인가? 책 읽는 꼬마...그녀의 삶은 그

때부터 탄력이 붙게 되고 살아가게 되고 무언가 하고 싶어 진다. 그녀가 가장 하고 싶은 것- 바로 읽고

쓰는 것.

그녀는 용기를 내어 그가 읽어주는 책을 드디어 빌리게 된다. 책을 펼친다. 그가 읽는 제목의 글자 수

를 헤아리고 제목의 글자 수와 맞추어 보고 드디어 단어의 발음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The'를 읽고

책의 모든 문장 속에서 the를 찾아 동그라미를 치는 장면에서는 안타깝고 대단하고 설레는 마음을 주

체할 수가 없어진다. 그녀의 마음은 그대로 보는 사람의 마음이 되게 한다. 내가 교사라서 그러한가?

나는 그녀가 드디어 글을 읽고 쓸 줄 알아 꼬마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된 것 보다 이 장면에서 가장 감

격스러웠다.

그러나 마이클은 안나가 편지를 보내와도 답장을 쓰지 않는다.

마침내 안나가 출소를 하게 되고 또 마이클이 보호자가 되어 그녀를 만나야 했지만 안나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런 세상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의 사랑을 잃은 상태에서 바깥세상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에 그녀는 담담하게 감옥, 그녀의 방에서 목을 매 죽게 된다.

그녀의 보잘 것 없는 재산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소녀에게 주라는 유서를 남기고 ...

그녀의 죽음 앞에 마이클이 흘리는 눈물은 무엇인가? 그녀의 마지막 유지를 받들어 그 소녀를 찾아 미

국까지 건너갔고 거기서 둘의 관계를 밝힌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해방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둘의 관계를 그렇게 쉽게 말해버린다. 그런 것인가보다.

모든 것은 해보면 그렇게 쉽다. 그는 이제야 자신의 마음 속에 꼭꼭 묻어 두었던 비밀의 매듭을 풀게

된다..

어느 날 그는 그녀의 딸을 데리고 어디엔가 간다. 바로 안나와 함께 갔던 조그만 수도원이다. 거기 안

나가 묻혀있다. 딸의 호기심 어린 시선 앞에서 그는 담담하게 그의 청춘을 그의 사랑을 그의 진실을 이

야기한다. 그래서 영화는 끝이면서 처음이 된다.

 

 


인간이 지켜야 할 것, 혹은 지켜야 하는 것- 그것이 타인이 볼 때 참으로 부질없이 보이는 것이라 할지

라도 자신의 한계 속에서, 그 지점에서 전 존재적으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녀의 무지에서 비롯된

단순함- 그것을 원천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입장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원칙적으로 도덕

적으로 ....’하는 말들이 얼마나 가진 자들의 잣대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비단 '부'만이 아니라 '지

식'의 소유상태에서도 알게 모르게 타인을 핍박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임무- 그것이 요구하는 책임감- 에 충실하

려 했다. 안타까워하면서....... 그녀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이해하고 싶다. 그녀를 벌하지 말자

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용서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자존심- 글을 쓰지도 읽지

도 못한다는 그 부끄러움-죽음과 바꾸고 싶은 그녀의 전 존재적 자존심-그 선택.

그에 비해 자신의 탐욕과 야망을 위해 자존심이든 뭐든 버리면서 남을 해치고 국가를 해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지식과 부를 바탕으로...

 

그녀는 정말 단순하고 명쾌한 여자이다. 존재의 이유였던 꼬마의 멀어짐을 알고 바로 목숨을 끊어버렸

으니....

그녀는 정말 새로운 세상을 살 자신이 없어 그랬을까? 이제 글도 읽을 줄 알고 쓸 줄 알게 되었는데? 

그녀 정도면 그 어떤 세상에 던져진다 해도 살 수 있었을 것 같다. 믿음과 책임감이 있으니까...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잃었다.

그녀만 잃은 것이 아니다 . 꼬마도 잃었다. 어린 날의 열정, 사랑, 번뇌 속에서 끊어버릴 수 없었던 그

추억들...

그러나 또 하나의 사랑(딸)을 보면서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상을 얻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역시 선생답게 청소년기의 중요성을 농담하듯 말했지만..순수의 시

절에 경험하는 것들이 그의 전 생애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확연하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우리는 심지어 그녀가 꼬마를 공부시켰다고 까지 말했다.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기 위해 얼마나 많

은 책을 읽었던가?  일반적인 상태라면 그렇게 독서를 했을까? 하면서 말이다.

어쨌던 그의 청춘의 경험과 그 연속성이 그냥  불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가 미친듯이 열

광하며 책을 읽어 녹음하고 그녀의 감옥으로 보내주는 과정은 영화를 보는 사람마저 열광하게 만들었

지 않은가?

그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 그가 어쩌면 현실의 결혼생활까지 힘들게 만들었던 견고한 벽, 그 기억의

테우리가 그를 살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이십년을 풀지 못했던 의문- 왜 그녀가 그냥 떠나가 버렸을까?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는 그대로

딱지가 앉아 점점 커지고 결국은 세월의 벽돌이 한칸 한칸 쌓여 올라가 견고한 벽이 되어 버렸던 것이

다.

그러나 한순간 그 모든 것이 밝혀지고  벽 또한 허물어진다. -그녀는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여자였다.

 

그 허물어지는 순간을 마이클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왜냐면 허물어지는 순간 자신이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고 새롭게 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중

했던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든 허물어지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자신을 외면한다. 자신을 바로 마

주 보지 못하는 순간- 그는 정말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소중한 것일

까?  명예. 지식, 부, ...이런 것들.

그 모든 것들의 부질없음을 깨우쳐야 진실로 진실로 우리는 무너지고 새롭게 설 것 같다.

자신을 되돌아 본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부질 없는 것들에 목숨을 걸듯 살고 있는지는 안다는 것이다.

 

  나는? 나는 무엇을 버리는가? 나는 무엇을 전존재적 가치로 지키려하는가? 근데 정말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나의 철학의 무딤을 탓하면서 한동안 자신의 모든 행복이었던 책을 버팀대로 삼아 목을 매

단 그녀를 생각한다. 자신의 행복이 바로 자신의 무덤이라는 것을 무언중에 말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케이트 윈슬렛을 보았다. 역시 그녀다웠다고 해야 할까? 타이타닉을 비롯해 여러 영화를 보

거나 혹은 해외 영화뉴스를 통해 그녀의 말과 행동들을 보면 그녀의 얼굴 그대로라는 생각이 든다. 슬

림형의 전형적인 여배우상을 웃어넘기거나 숫제 무시하는 것-그것은 짙은 눈썹이나 강인한 입술뿐 아

니라 그녀의 근육질, 풍성한 몸매에서도 그래도 드러난다. 또 그런 몸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영화들을

보면서 (대부분의 출연작) 그 자신감-그리고 진지함과 겸손함까지 지닌 매력으로 다가온다.

내면으로 쌓여가는 연기력은 눈빛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게 한다.

성당에서 찬송가를 들으면서 울던 그녀의 표정- 그 오묘하고 복잡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인간이

자신을 100% 표현한다는 것이 가능할 지... 그 표현의 정도를 잊게 하는 연기력이었다. 멋진 여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사랑하느냐? 고 묻기 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이 사랑

받기를 원하고 그래서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알아서 다 실행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면 사랑하자. 내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무엇이 사랑인데? 하고 물으면 우리는 또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 사랑인지...머리로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살아가면서 실천할 것인지.....


출처 : 조영옥의 희망만들기
글쓴이 : 그저물처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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