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유 28
" 선영아.. "
" 응? "
" 안아도 되겠지.. "
" ...당신이 좋다면.. "
서로가 말없이 소주 1병을 비우고 한병을 더 가져 왔을때다.
피곤에 지쳐 보이는 남편이 내 몸을 원한다고 했을때 왜 그리 처연하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와이프한테 허락을 구하는 듯한 그의 말투도 의아스러웠지만, 그 모든게 나로 인해 비롯됐음이 어렴풋이나마
감이 잡힌다.
진호와 죽고 못살던 그 시절에도 멀찌감치서 나를 지켜봤다던 남편이다.
세상에 다시 없을만큼 나를 끔찍이도 이뻐해 줬던 남편과의 알콩달콩 행복했던 시절에 죽었다던 진호가 나타났고,
그로 인해 남편과 어느 정도 거리가 생긴건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 날 비닐하우스에서 진호 품에 안겨 있던 나를 지켜봤다는 남편의 마음이 어떠 했으리란건 능히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다.
" 한번 안는다고 달라질건 없겠지만, 당신 속살이 보고싶네.. "
" ...내가 벗을께.. "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밖으로만 떠돌았을 남편의 심정을 생각하니, 어줍잖은 질투를 할 자격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남편에게 위안을 줄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아까운게 있으랴는 생각이 들었다.
두 남자를 받아들인 떳떳치 못한 몸이지만, 그 몸이 남편에게 흥미거리가 된다는 것만도 다행이지 싶다.
마지막 남은 팬티마저 벗어버리고 다시금 남편을 마주하고 앉았다.
" 한잔 따라줄께.. "
" 이쁜건 그대로구나.. "
술을 따르는 내 모습을 건네다 보는 남편의 넋두리에도 허무가 묻어난다.
" ...고마워, 이쁘게 봐 줘서.. "
" 항상 그랬어, 너는.. "
" ...하나만 믿어 줘.. 당신이 미워서 그런건 아냐.. "
" 알지,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바보처럼 널 놓지 못하는거니까.. "
예전부터 나를 좋아하는 남편의 크기를 알고 있었기에, 한번의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주처럼 대접을 받고
살았더랬다. 지금도 헤어지지 않겠노라는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 앞으로 어쩔거냐.. "
" ...글쎄.. 나도 모르겠어.. "
심도 깊게 고민해 보지는 않았지만, 선영이 역시 어느 한사람을 선택하리란건 힘든 결정이 될 것이다.
지금도 딸아이 수경이로 인해 일주일에 한번씩 진호를 봐야 하는 폭이지만, 남편인 민수와 헤어진다면 그 역시 우혁이가
눈에 밟혀 힘들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 그래, 당분간 이대로 가보자.. 어찌 될른지는 모르겠지만.. "
" 미안해, 민수씨.. "
" 니 잘못이 아니잖어, 골치 아픈 얘기는 그만하고 내 시간이나 뺏지 말어.."
팔을 뻗어 나를 잡아끄는 남편에게 이끌려, 그의 무릎위에 걸터 앉게 됐다.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나를 감싸 안은 남편의 입과 내 입술이 맞닿았고, 이내 입안 가득 혀를 밀어 넣는다.
그의 의도를 받아들여 입안에 들어온 혀를 살며시 빨아주며 목 뒤로 손을 두르자, 등 뒤에 있던 두 손이 엉덩이를 당겨
쥐며 본격적으로 부딛쳐 오는 제스처를 취하는 남편이다.
괜시리 남편에게 미안한 맘이 드는건 어쩔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토록 나를 아껴준 사람에게, 본의는 아니지만 배신을
한 폭이기에 이렇게 부둥켜 안고 있으면서도 운신을 하기가 조심스럽기만 하다.
" 침대로 가 있어, 양치라도 하고 들어갈께.. "
" ...응, 알았어.. "
금방이라도 덤벼들것 같던 남편이 입을 떼더니 나를 밀어내고 있다.
휘적휘적 욕실로 들어가는 뒷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충 그릇들의 뚜껑만 닫고는 안방의 침대에 누웠다.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방금의 행동도 전에 없던 일이었기에 마음이 심란스럽다.
분명이 진호와 연계해서 남편의 내면에는 일련의 변화가 생겼기에 나를 밀쳐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남편 역시 복잡스런 감정의 골이 있을것이고, 그에 따라 내가 어찌 그를 대해야 되는지 어려운 숙제를 안은
기분이다.
" 왜, 추워? "
" 아냐, 그냥.. "
침대에 누워 턱 밑까지 이불을 끌어 올린 선영이를 보니 괜시리 기분이 나빠지려 한다.
조금전 거실에서 그녀의 몸을 안았을때 불현듯 진호와 뒤엉켜 있던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착잡하던 참이다.
그런 속마음조차 선영이에게 들키는게 싫어 핑계까지 대고는 욕실에 다녀 왔다.
어차피 진호와의 섹스도 묵인하는 마당에 속 좁은 남자로 비쳐진다는 것은 정말로 못 마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써 그런 감정을 추스리고 있었건만, 그런 속내를 알리없는 선영이가 벗은 몸을 감추려는 것만 같아 부아가 치민다.
" 뭘 가려, 그냥 있으면 어때서.. "
" ...옷은 안 입었어.. 얼른 와.. "
덮고 있던 이불을 한 쪽으로 제끼고는 나를 향해 모로 눕는 선영이지만, 이미 틀어져 버린 기분이다.
침대에 비스듬히 묻힌, 그토록 애지중지 했던 선영이의 나신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를
않고 있다.
단지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선영이의 몸 위로 겹쳐 올라 젖가슴부터 물어가야 했다.
양 손으로 탱글한 젖가슴을 모두어 쥐고는 한쪽 유두를 입안에 넣어 혀로 굴리기도 하면서 천천히 기분을 풀고자 했다.
보통때 같았으면 내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여흥을 끌어 올리고자 했던 선영이의 손이, 갈길을 잊은듯 따로따로
허공에서 맴돌기도 하고 가끔씩 내 어깨위에 얹기도 하지만, 적극적인 자세가 아닌듯 싶어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때쯤이면 아랫도리가 불끈 솟아서는 그녀의 정강이께에 닿았을텐데, 오늘은 영 일어설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것이 주인의 기분을 나타내는 것만 같아 슬그머니 초조함도 생긴다.
별 일도 다 있다 싶어 몸을 내려 선영이의 배꼽에 입을 맞추고는,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묻어 평상시대로 그 곳의 맛을
음미하고자 혀를 가져다 댔다.
그 전과는 다른 느낌이 전해진다. 선영이의 꽃잎을 혀로 열고 쓸어가노라면 맑은 샘물이 배어나곤 했는데, 아직도
메마른 그 곳은 거친 살만이 닿는 기분인지라 쓸데없는 오해만이 생긴다.
선영이가 원치도 않는 섹스를 억지로 받아들인 탓에, 그녀의 몸 또한 여흥이 없으리라는 지레짐작까지 드는 것이다.
참을성 있게 그곳을 애무해 보지만 보통때처럼 흥건한 애액이 나오기는 애초에 그른듯 싶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기분이 잡쳐 섹스에 몰두하고픈 마음 역시 멀리 달아나 버렸고, 선영이를 보기만 해도 벌떡 일어서던
그 놈 역시 마이동풍이라 더 이상의 진전이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다.
" 그냥 자자구, 영 기분이 아니네.. "
" .................. "
몸을 뒤집어 침대에 몸을 눕혔건만, 아무런 반응조차 없는 선영이의 침묵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는 민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