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 13

바라쿠다 2012. 11. 27. 11:11

" 안에 어머니 계셔.. "

" 어머니 모시고 왔어? "

수경이가 치영이랑 금새 친해 졌는지 둘이서 웃고 떠들며 하우스 안을 돌아다닌다.

" 응, 며칠전에..  볼래? "

" 글쎄.. "

만나 볼 용기가 선뜻 나지가 않는다.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손녀 딸을 버리고 떠났던 며느리다.   

" 싫으면 말던가.. "

" ....들어가자, 뵈야지.. "

한때는 시어머니였던 분이다.    궁핍한 집안으로 들어 온 며느리를 무척이나 이뻐 하셨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머나먼 타국으로 돈을 벌기위해 떠났고, 그 자식이 죽었다는 마른 하늘에

벼락이 떨어지는 소식을 접했던 당신보다, 오히려 며느리인 나를 더 안타깝게 여겼다.

본인의 슬픔을 속으로 감추고는 며느리의 입장이 되어 위로하고자 했고, 그 며느리가 손녀 딸을 남겨 둔채 친정으로 끌려

갈때는 대문 뒤에서 남 몰래 눈물을 흘렸던 어른이다.

아담하게만 보이는 양옥이 안으로 들어서자 제법 넓다.    

" 어머니..  선영이 왔어요..

현관에서 거실로 올라 맞은편 방문을 연 진호가 시어머니를 부르더니 내 쪽을 돌아보며 들어오라는 고개짓을 한다.

많이 불편하신지 누워있던 방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시어머니다.    그 분과 눈을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먹먹해 진다.

" 선영이냐.. "

" 네, 어머니..  저 왔어요.. "

" 어찌 왔누, 오기가 어려웠을텐데.. "

방바닥에 깔린 이불 앞에 앉아 시어머니의 손을 맞 잡았다.     몇년 전의 정정하셨던 그 모습은 간데 없고, 완연히 병색이

짙어 보인다.     치아가 많이 빠져서 뺨마저 홀쭉하고, 손이며 발도 앙상하다.

" 많이 편찮아 보여요.. "

" 그냥, 그래..  애비한테 짐만 되서 안 오려고 했는데.. "

" 어머니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당연히 수경이 아빠랑 같이 계셔야죠.. "

" 빨리 가야 할텐데, 에구 ~ "

" 좀 누우세요, 저희는 밖에 나가 볼께요.. "

잠시 앉아 계시는 것도 불편해 하는지라 괜히 괴롭혀 드리는 것만 같았다.

" 선영아.. "

" 네, 어머니.. "

" 수경이가 널 많이 빼 닮았더라..  행복하거라.. "

" ....네.. "

내 손을 쓰다듬으며 말을 건네는 시어머니의 눈에 언뜻 눈물이 맺힌다.    이미 이 집을 떠나 다른 남자와 재혼한 걸

아시면서도 그런 못 된 며느리의 행복을 기원해 주시는 시어머니다.

 

" 수경이 방은 이층이야? "

" 나랑 같이 자..   아직은 이층에 혼자 있는게 무서운가 봐.. "

시어머니의 방을 나서서는 진호와 같이 집을 둘러보는 중이다.

" 혹시 성희 왔다갔어? "

" 응, 조금 전에.. "

" 여긴 어찌 알았대.. "

" 윤철이랑 같이 왔더라구.. "

" 걔가 민수씨 동생이랑 여고 동창이야, 그래서 예전부터 불안했어.. "

민수랑 결혼을 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미혼모라는 과거를 숨기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해야 했기에 가뜩이나

예민해 하던 때다.    

민수 역시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고는 성희를 만나 입 막음을  부탁했다고 했다.

"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

" 모르지, 사람 일이란건..   우리 사귈때도 자기한테 마음이 있던 앤데.. "

" 그랬어?   난 몰랐는데.. "

" 나도 처음엔 몰랐어..   어느날 그러더라,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평생 고생이 될거라고..   그러면서 자기 아빠 회사에

취직을 시키면 어떻겠냐구..   그때 알았어, 성희가 자기한테 관심이 많다는걸.. "

그 당시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엄연히 임자가 있는 진호에게 관심을 두는 성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서야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 다감한 진호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친구의 애인을

가로 챌 기회가 없었던건, 당사자인 진호가 나에게만 꽂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성희가 홀로 된 진호를 다시 찾아온 이유가 있을것이기에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해 진다.

" 야 ~ 경치 그만이다.. "

" 나도 여기가 제일 마음에 들더라.. "

노을이 지기 시작한 한강이 붉게 물들어 보기에 아름다웠다.     양옥집의 이층에 올라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 중이다.

 

" 누나..  이만 가야지.. "

" 조금만 더 있다 가자.. " 

집 구경을 끝내고 하우스에 왔더니 치영이와 수경이가 사이좋게 화분들을 나르고 있다.

이미 해가 져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넘었지만 진호와 수경이,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보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선영이다.

" 늦은거 아냐?   괜히 트집 잡힐라.. "

" 내가 알아서 해..  어머니한테 저녁 한끼 지어 드릴래.. "

유난히 생선찌게 종류를 좋아하셨던 시어머니를 위해, 백화점에서 사온 해물들을 넣고 매운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을 졸이기도 했지만,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를 낳아 준 친정 엄마보다도 며느리를 끔찍하게 챙겨주시던 시어머니의 병세가 깊어 보인다.    

그 분을 위해 내 손으로 따뜻한 저녁 한끼를 대접하면서 눈치까지 봐야 한다는게 싫다.

" 나야, 어디야.. "

~ 회사..  이제 퇴근하려구.. ~~

남편이 집에 오기전에, 이 곳에 있다는걸 미리 알려주는게 옳지 싶었다.

" 치영이랑 수경이 보러 왔어, 늦을거야.. "

~ ....알았어, 천천히 와..   나도 늦게 들어갈께.. ~~

" 진호씨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셔..   따뜻한 밥이라도 차려 드리고 싶어.. "

~ ....맛있게 해 드려..   출발할때 전화주고.. ~~

주방 식탁에 진호와 치영이의 저녁을 차려놓고, 찌게 한대접과 밑반찬 몇가지를 작은 소반에 올려서 시어머니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 어머니, 저녁 드셔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