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23

바라쿠다 2012. 10. 18. 12:48

" 어디 갔었어, 메시지까지 씹고.. "

선우가 유치원에 간 뒤 초인종이 울렸다.    이틀 동안이나 깜깜 무소식이었던 준호였다.

" 걱정은 됐어요?

"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걱정되지.. "

" 난, 뭐죠?      정희씨한테 뭐냐구요? "

" ...................... "

" 그냥 장난감인가요? "

갑자기 변해 버린 준호의 반응에 할 말을 잃은 정희다.     여지껏 이렇듯 냉담했던 적이 없었다.

" 왜 그래, 무슨일 있었어? "

" 그게 궁금은 해요?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는 싶어요?

" 그러지 마, 준호씨..  나 무서워.. "

힘든 시점에서 묵묵히 자신을 감싸주던 사람이었다.     남편의 거듭된 멸시속에서도 한줄기 빛이 되던 사람이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토록 얌전했던 사람이 매몰찬 말로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다.

준호가 이렇게 변하리라곤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어찌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 정희씨는 뭣 땜에 살죠?     어린 선우가 멸시를 받는데도 아무렇지 않아요?      그렇게 참고 살면 아저씨가 변하기라도

한대요? "

" ...................... "

" 당신 바보죠?     멍청하죠? "

" 준호씨..   왜 그래, 그러지 마.. "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뭐가 뭔지 아득할 뿐이다.     갑작스런 준호의 질타에 서러움이 밀려온다.

" 젊은 여자한테 빠져서 임신까지 시켰는데, 그런 남편이 뭐가 이쁘다고 참고 사냐구요? "

" 젊은 여자?   임신? "

벼락을 맞은 기분이다.      무슨 뜻인지조차 한참을 되뇌여야 했다.

 

" 참말이야, 그게? "

" .................... "

"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

" 그게 중요해요?     어찌 그다지도 신경이 둔해요? "

자꾸만 화가 났다.     그런 남자를 믿고, 그가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그녀를 이해할수가 없었다.

" ................... "

" 벌써 2년이나 됐다고 하던데.. "

" 확실한 얘기야? "

" 다음달이 산달이래요.. "

" 준호씨가 직접 봤어? "

" 그 집도 알아요.. "

" ................... "

가타부타 말이 없는 그녀가 답답스러워 보였다.      남편의 허물을 듣고서도 반응이 없는 그녀에게 다시금 화가 난다.

" 이제 어쩔거에요? "

" ................... "

" 그냥 이대로 살거냐구요? "

" 잠깐..  잠깐만.. "

안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녀가 몸을 돌려 휴게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그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삼바파티'였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방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아, 방문을 열어보니 자신의 무릎을 감싸고 쇼파위에 웅크리고

있다. 

묵묵히 무릎을 감싼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를 보자니 측은한 생각마저 인다.

그녀의 옆에 앉아 어깨를 감싸 안았다.     CD가 한바퀴 돌아 첫곡이 다시 나올때까지, 그대로 돌처럼 굳어 있어야 했다.

 

선우가 왔기에 다락방으로 올라와야 했다.

대충 옷을 싸 두기로 했다.     저렇듯 자신의 남편의 잘못을 알고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그녀 곁에 머문다는 것이

싫어졌다.

" 뿌 ~ 우 ~ "

핸폰이 떨어댄다.

~ 뭐 해? ~~

선희의 메시지였다.

~ 일하는 중.. ~~

~ 저녁에 시간있어? ~~

~ 글쎄요.. ~~

~ 보고싶어.. ~~

~ 나중에 핸폰 할께요.. ~~

옷 가방을 두개씩이나 들고 나설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     이런 모양새로 선희를 만난다는 것도 망설여진다.

" 뿌 ~ 우 ~ "

~ 뭐 해? ~~

이번에는 정희의 메시지다.

~ 그냥 있어요.. ~~

~ 지금 올라갈께.. ~~

 

" 이게 다 뭐야? "

" 나가려구요, 정희씨가 내 생활을 찾으라면서요.. "

다락방에 올라 온 정희가 옷 가방을 보고는 궁금해 한다.    그런 그녀에게 이 곳을 나가겠다고 통보를 했다.

" ...................... "

" 그동안 주제넘게 참견해서 미안했어요.. "

" 그 여자를 만나게 해 줘.. "

" 누구..  임신한 여자요? "

" 그래..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

" 내가 먼저 나가서 핸폰할께요.. "

옷 가방을 놔 둔채 나와야 했다.     일단 남편이 있는 회사 근처로 왔다.

몇번 갔던 카페에 앉아 커피를 시키고 선희한테 핸폰을 했다.

~ 일 끝났어? ~~

" 아뇨, 아직..   오늘은 일 안해요? "

~ 일찍 끝낼거야, 미스홍이 사장한테 결론을 내자고 했대..   사장이 나가면 나도 퇴근하려구.. ~~

" 난, 좀 늦을건데..  일 끝나면 핸폰 할께요.. "

~ 빨리 끝내..  보고싶어.. ~~

" 네, 그럴께요.. "

한시간 남짓 됐을까, 남편의 차문이 열리는 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