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22

바라쿠다 2012. 2. 3. 13:08

이 정도로 밝혔던 여자였던가..    미진이의 어깨너머로 끓고 있던 매운탕이, 넘치는 거품으로 인해 가스불마저

꺼져 버렸다.

눈까지 지그시 감고 마주안겨 사랑의 행위에 열중하는 그녀는 열정에 들떠 마지막을 향해 치달리고 있다.

" 자 ~갸 ~~ 나 ~ 몰 ~라 ~ 하아 ~~ "

가스가 샐까봐 걱정이 되지만, 그녀의 기분을 깨뜨리기가 뭣 해 앙증스런 어깨를 감싸쥐고 마주쳐 올렸다.

내 목을 끌어안고는 위아래로 오르락거리는 미진이의 입이 벌어져 단내가 풍겨나온다.

" 여 ~보 ~~ 아 ~~~ 하 ~~ 어 ~떠 ~케 ~ "

한참 몸이 달아올라 절구질을 하던 미진이의 비음이 차츰 잦아들더니, 깍지 낀 내 목을 의지하고는 젖무덤으로 숨을

고르는 중이다.

" 이대로 있고 싶어, 진작에 자기를 만났더라면.. "

젖은 땀이 식을때까지 한참을 붙어있던 미진이가 혼자말을 뇌까린다.

그저 달궈 주는대로 자신의 감정을 부끄럽게 끌어내던 미진이의 내면에 변화가 일어난 듯 하다.

어차피 인연이 닿지 않을바엔 참고 잊으려고 해야 맞거늘, 어쩌자고 힘든 애정의 끈을 놓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더불어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줄수 없는 나 역시 편치가 않은지라, 지켜만 봐야 하는것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 술이나 한잔하게 안주나 가져와.. "

그제서야 무릎 위에서 내려온 그녀가 가스렌지 쪽으로 다가가서는, 냄비 위에서 거품에 젖은 자신의 팬티를 주워 든다.

" 이게 하필이면 냄비 위로 떨어질게 뭐람,호호.. "

매운탕을 식탁위에 올려 놓고선 마주앉아 술을 따른다.     쾌감을 일궈낸 미진이의 얼굴에 보기좋게 윤기마저 흐른다.

" 오늘 보기 좋더라, 원래가 부끄럼이 없었던 사람처럼.후후.. "

" 지금 놀리는거지, 밝힌다구.. "

" 그건 아냐, 여자도 적극적인게 보기좋아. "

실지로 여자가 기분을 끌어내는 모습을 정직하게 표현을 해야, 몰아치는 남자의 내면에도 자신감이 붙어 도리를 한 것

같은 뿌듯함이 이는것이다.    

그저 행위중임에도 부끄럽다고 감추려고만 한다면, 아까운 힘만 소진하게 되는듯 개운치가 못하다.

" 아까 니 팬티가 빠져서 그런지 매운탕 맛이 어째 찝질하다..

" 오빠 ~ 자꾸 놀릴거야.. 그냥 먹어 둬, 그것도 일종의 보약이니까.호호.. "

초저녁에 볼때보다는 기분이 많이 풀어졌는지 장단을 맞춰 농담까지 하는 미진이다.

" 내일 개업식인데 손님이 많이 올까? "

자신의 가게는 아니라도 수정이와 같이 꾸려가야 함이 불안한지 나에게 묻는다.

" 나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엮이게 됐는지..   아는 사람 몇몇한테 얘기를 했으니까 기본 매상은 올리겠지, 그 사람들을

빼놓고 어느정도나 팔릴지 두고 보자..   그리고 참, 너를 좋아하는 민식이도 올텐데.후후.. "

" 또 그런다.  오빠 친구니까 그냥 같이 술 마신거지..  이번에도 나한테 껄떡거리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그리고 오빠는

뭐가 그렇게 재밌어?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걸 그런식으로 가볍게 보지마, 진짜 화낼지 몰라. "

그저 농담을 했을 뿐인데, 미진이의 눈에 파랗게 불꽃이 인다.

 

11시 정도에 일어나 미진이가 차려준 아침을 먹은후에 국밥집으로 향했다.     

단란주점 '이차선 다리'가 개업하기 전에 낮시간 동안 국밥집이 장사가 잘 되는지 지켜봐야 했다.     안주로 나오는

엉덩이 찜이 손님들한테 어느 정도인지 호응을 보고서 정식 안주메뉴로 올려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당분간 두곳을 번갈아 다녀야 할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심란스럽다.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방울소리가 나도록

바삐 오가야 하는지, 스스로가 한심하다.

점심시간이라 소영이까지 나와서 홀을 바쁘게 누빈다.     일하는 아주머니까지 여자 넷이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중이다.

테이블 6개가 꽉 차고 한켠에는 간이 의자가 놓여져 있어, 합석까지 했는데도 앉을 자리가 없다.

" 에고 ~ 우리 딸이 고생이 많구나, 진짜로 랍스타 먹으러 가야겠네.후후.. "

" 어 ~ 아빠.  별로 안 힘들어..  근데 앉을데가 없는데 어떡해, 식사를 하셔야 되잖어.. "

정신이 없을텐데도 밝게 웃는것이 고맙다.      제 또래들이라면 입이 댓발이 나와 억지로 하는척만 할텐데 생각이

깊은 아이다.

지지리도 복이 없는 에미밑에서 여러가지 마음 고생을 했을 어린 것이, 활기차게 장사가 되는것이 신명이 나는 것

일게다.

" 괜찮다, 아침 먹은지 얼마 안됐어..  신경쓰지 말고 어여 일하거라. "

" 뭐해요, 왔으면 도와줘야지..  바쁜거 안보여, 장승처럼 서 있기는.. "

주방에서 음식을 들고 나오던 성미가 보자마자 들이댄다.

" 엄마는 또 왜그래..  식당에서 아빠한테 일 시키지 말라니까, 대신 내가 나와서 하잖어.. "

어째 엄마와 딸인데도 입장이 서로 바뀐 듯, 어린것의 마음 씀씀이가 더 어른스럽다.

복잡한 가게를 나와 잠시 근처를 거닐며 손님들이 모이는 방향을 지켜보며 서 있는데 핸폰이 울린다.

" 선배님, 오랜만이네요..  한번쯤 불러서 술이라도 사 줄줄 알았는데 영 매너가 꽝이네요,호호.. "

소영이의 담임인 인숙이다.      그저 소영이의 담임으로만 대했을 뿐인데, 어지간히 술친구가 없지 싶다.

" 아, 미안..  요즘 좀 바쁘게 다니느라 연락도 못했구만.. "

소영이의 담임인지라 쌀쌀맞게 대할수 없는 입장이긴 하지만, 마주앉아 술을 마시면 말이 통하는 타입이다.

" 오늘 후배가 한가하거든요, 더군다나 치마도 입었는데.킥~ "

먼저번에 헐렁한 옷에 가리워진 몸매가 이쁠거라고 칭찬을 했더니, 작정을 하고 술 약속을 받아 내려는 낌새다.

" 마침 오늘 친구가 단란주점을 오픈해서 거기를 가봐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도 상관없으면 그곳에서

만나면 어떨까.. "

조금 게름찍하지만, 그렇다고 따로 만나 술마실 시간도 없는터라 솔직하게 얘기할수 밖에 없었다.

" 아무려면 어때요, 난 원래 털털하니까 괜찮아요.   선배만 불편하지 않으면.. "

" 내가 불편할게 뭐 있누, 후배한테 맛있는걸 사 주지 못해 마음이 쓰려 그러지. "

결국, 개업하는 '이차선 다리'에 인숙이를 부를수밖에 없었다.    곱지않은 시선으로 볼 수정이와 미진이 얼굴이 크로즈업

되어 다가온다.

 

오후 3시가 되자 국밥집이 조금 한가해 진다.     밖에서 오가는 손님들과, 가게안을 들여다 보며 손발이 잘 맞는지

대충 눈대중을 하고 있는데, 소영이가 가게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부른다.

" 아빠 ~ 엄마가 커피 한잔 하시래요. "

이제는 아빠라는게 입에 배어 자연스럽다.     소영이만 놓고 봤을때도 정말로 막내딸을 삼고 싶을만큼 착착 감긴다.

제 엄마의 허물까지 다독일줄 아는, 심지 깊은 아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 남자라고 폼만 잡을려고 한다니까, 바쁠때 거들어주면 뭐라도 떨어진다든.. "

가게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싶어서 소영이를 빗대어 흰소리를 해 댄다.

" 진짜로 엄마는 못 말린다니까, 난 아빠가 가게에서 일하는거 보기 싫단 말이야. "

" 어째 엄마가 돼 가지고 딸보다 못하냐, 먹여 살린다고 큰소리만 뻥뻥치고..   에고 ~ 가게에서 쟁반까지 나르고 얻어

먹느니 차라리 굶을란다. "

" 누가 밥 얻어 먹으라고 도와 달라는거야?    자기는 내가 딸하고 땀까지 흘리는게 불쌍하지도 않냐.. "

소영이가 이뻐서 딸을 삼겠다니까 자연스럽게 덤으로 따라오는 격이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그나마 대견해 보여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 우리 이쁜 딸까지 부려 먹는데 뭐가 불쌍해, 그저 조금만 틈을 주면 상투까지 잡을려고.. " 

" 하여간에 말을 해도 밉상스런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  소영이만 불쌍하고 나는 당연히 궂은일을 해야 한다는거야.. "

" 소영이가 당신을 안 닮은게 그나마 다행일세,  어째 여자가 지 남자 아까운줄 모르고 쟁반을 들라고 하냐..  소영아 ~

안되겠다.    요번에 외식하러 갈땐 니 엄마 빼놓고 우리 둘이 가자꾸나.흐흐.. "

" 그래요, 아빠.   꽉 막힌 엄마랑 같이 먹으면 소화도 안될거야.히히.. "

" 또 ~ 둘이 죽이 맞아설랑..  진짜로 이번에도 둘이 가기만 해봐, 가만 있지 않을테니까.. "

먼저번에 저만 빼놓고 백화점에 다녀온게 서운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