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 56
시간이 흘러 희정이의 가게가 오픈하는 날이다.
장사를 하던 곳이라 내부 수리는 필요없기로 지난 며칠간 그녀의 잔심부름이나마 도왔다.
" 이거 어디 놓을까.. "
" 응, 문 앞에.. "
" 사람들 많이 와? "
" 몇 안돼. "
비록 작은 가게지만 주변 친구들이나 아는 지인들도 올 것이기에 소소하게 챙길게 많다.
오늘도 아침부터 부지런 떨며 희정이의 눈에 들고자 했던 국진이다.
" 대충 됐네, 여보야도 이따 저녁때 와. "
" 에이, 그냥 있어도 되는데.. "
" 근데 이 사람이.. 식당만 쳐다보고 놀거야? "
" 그건 아니지. "
" 빨리 가, 한푼이라도 벌어야지. "
누가 짠순이 아니랄까 봐 돈만 밝히는게 걱정이다.
못된 습성은 고쳐줘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지 싶다.
" 알써, 이따 올께. "
" 응, 이따 봐. "
한 세상 살아감에 있어 재물이나 명예가 중요한게 아니다.
어려서부터 꿈 꾼 희망이 이워졌다 한들 그건 보잘것 없는 한줌일 뿐이다.
그런 이치를 모르고 눈 앞의 이득에 따라 희비가 교차된다.
지켜보는 나로서는 그네들의 욕심이 아귀다툼으로 보인다.
하늘에서 점지되어 이 땅에 왔다면 보다 참된 기쁨을 즐겼으면 한다.
아둥바둥 해 봐야 원초적인 운세는 바뀔리가 없는 법이다.
" 오빠, 어디 가.. "
" 응, 약속있어. "
다른 직원들은 퇴근하고 용호와 둘이 사무실을 지킨 지연이다.
요즘 들어 수상한 기미를 자주 보인다.
아무래도 엄마를 계속 만나는 듯 하다.
지지리도 눈이 낮은지 싱싱한 나를 제쳐두고 엄마라니..
" 할 얘기 있어. "
" 그건 다음에.. "
" 엄마 만나러 가는거지. "
" ..응? "
지가 아무리 머리를 써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놀래는거 보니 예감이 들어 맞는다.
나와 엄마까지 번갈아 만나는 이중 플레이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
" 다 알어, 엄마친구 개업하는거.. "
" ..그걸.. "
며칠전부터 친한 친구가 개업한다며 엄마까지 들 떠 있었다.
혹시나 해서 퇴근하지 않고 감시하고자 했다.
물증이 확실한만큼 용호의 고삐를 단단이 조일 필요가 있다.
" 오늘 나랑 얘기 좀 해. "
" ..................... "
그날 이후로 두번이나 밤을 지새웠고 좋아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대충 넘어가 준다면 계속 엄마를 만날 인간이다.
내 물건에 손대는게 엄마일지라도 그런 꼴은 도저히 못 본다.
" 따라 와. "
" 따라 와. "
지연이에게 당당하지 못하고 영등포 호프집까지 끌려 오고야 만 용호다.
제 엄마의 일까지 꿰고 있는 그녀에게 버틴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못난 어른이지만 그녀를 따를수밖에 없는 자신이다.
" 앞으로 엄마 만나지 마. "
" ..그게.. "
" 말이 되니? 엄마하고 나랑 번갈아 자는게.. "
" ..................... "
겉으로 보기에 인아보다 그녀의 딸 지연이가 훨씬 이쁜건 사실이다.
지연이도 지연이지만 인아에게 끌리는 이유가 있다.
" 내가 이뻐, 엄마가 이뻐.. "
" ..지연이가 이쁘지.. "
" 내가 먼저야, 엄마가 먼저야.. "
" ...................... "
이쁘고 통통 튀는 지연이와 있을때는 나름 그녀가 주는 기쁨이 있지만, 인아에게는 편안하게 기댈수 있는 아늑함이란게
있다.
자기만을 이뻐해야 하고 수시로 맘에 드는 선물까지 조르는게 지연이라면, 친구처럼 인생을 논할수 있고 뉴스를 보며
정치의 험담까지 하는 동질감마저 드는 인아다.
" 드르르..... "
" 손 대지마~ "
테이블 위에 놔 둔 핸폰 수신음이 떨어대자 자기것인 양 지연이가 채 간다.
( 쓰벌~ 주머니에 놔 둘걸.. )
" 이것 봐, 엄마네.. "
액정을 들여다 보던 지연이가 핸폰을 고쳐 쥐고 만지작 거린다.
" 못 간다고 메시지 보냈어. "
그런 지연이에게 할말이 있지만서도 주눅이 든 용호가 대꾸나마 한다는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 오늘 집에 가지 마. "
" ...................... "
" 에휴~ 믿을수가 있어야지. "
아무리 젊고 이쁘다한들 점점 부담이 되기에 마음에 동요가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