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 36
자꾸 잠이 쏟아지길래 바람이나 쐴겸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다.
새벽인지라 다행히 찬바람이 불어 조금은 개운하다.
담배를 꺼내 물고는 밤하늘에 뿜어대니 가로등 밑에서 춤을 춘다.
억울한 귀신이 저런식으로 자유로운 비행을 할 것이다.
" ..저 담배펴도 되나요? "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니 동훈이가 곁에 있다.
" 나이도 됐는데 뭐. "
한가치 건네주고 라이터 불까지 댕겨 줬다.
" 죄송해요. "
한모금 빨더니 손 아래로 담배를 가려 자신의 몸 뒤로 숨긴다.
" 오늘은 봐 줄께. "
" 엄마가 나가 보라고 했어요, 삼촌 말동무 해 드리라고.. "
사람들의 눈이 있어 다가 오진 못 하지만 내 동선을 체크하고 있었지 싶다.
" 괜찮어, 엄마가 힘들겠지. "
" 엄마는 후련할거에요. "
" 그럴리가 있나, 네가 모르는게 있을거야. "
" 내 말이 맞을거에요. "
어릴때부터 생활고 땜에 싸우는 부모를 보고 자랐을테니 그런 마음도 있을게다.
하지만 세상 이치라는게 그리 간단한것만은 아니기에 인생의 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돈이 많다고 행복만 있는게 아니고, 가난하다 해서 웃음이 없는건 아니다.
" 아침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올게야, 경비는 안 줘도 돼. "
" ..감사합니다,삼촌. "
" 네가 가장이야, 엄마한테 힘이 돼 줘야지. "
" ..그러구 싶어요, 잘 될지 모르지만. "
아직 어리지만 눈에 총기가 있어 또래 애들보다는 일찍 깨우치지 싶다.
제대로 된 길을 찾아야 인생살이가 재미있을텐데 그 귀추가 기대 된다.
" 잘 하지 싶다, 너는.. "
"..노력할께요. "
" 그래, 부탁하자. "
몇사람 없는 영안실에 다들 지쳤는지 드러누운 사람과, 허리를 꺽고 꾸벅꾸벅 조는 이들도 있다.
희정이는 그 자리에서 여전히 움직임이 없고, 인아는 그 곁에서 조는 중이다.
아침까지 벽에 기대 버티고자 하는데 입구쪽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장례를 도와주는 도우미들이 들어온다.
남자 한사람과 여자 셋이 한조인 모양으로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
" 안녕하세요. "
" 네, 이리로.. "
졸고있던 인아와 희정이가 그들을 반겼고, 나는 그들을 지켜 볼 뿐이다.
인아야 용호선배에게 들었을테니, 희정이에게도 내용을 얘기했을 것이다.
그들의 도움으로 두여자 모두 발인까지 잠시 쉬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도착한 그들을 쫒아 가족들이 움직이는게 발인 시간이 가깝지 싶다.
그 자리에 기다리기도 뭣해서 밖으로 나왔더니 이미 장례버스가 와 있다.
먼동이 뜨려는듯 하늘이 밝아지려 할 때쯤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에 절반 정도의 조문객만 있는지라 맨 뒤쪽칸에 앉아 잠시 졸았지 싶었는데, 쿨렁대는 기분에 눈을 떳고 버스는
화장장에 도착했다.
가끔 봐야 하는 직업인지라 가족들의 슬픔까지 지켜보는게 그렇지 싶어 내쳐 졸음에 빠졌다.
잠에서 깨어 났을때 버스는 이미 추모공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동훈이가 영정 사진을 들고 앞장을 섰고, 줄 이은 가족들의 맨 뒤를 따르기로 한다.
나름 경건하게 유골함과 사진이 안치가 되고 가족, 조문객들과 함께 다시 버스에 탓다.
" 피곤하죠. "
" 많이 친한가 봐. "
인아가 옆 자리에 앉아 말을 건넨다.
" 없어요, 친구가 쟤 밖에.. "
" 그렇구나. "
" 고마워요. "
" 내가 할 소리를.. "
첫인상이 되바라져 보이기에 그저 그런 여자로 치부했었지만 차츰 속이 보이곤 했다.
용호 선배를 대하는 것도 그렇고, 이번에 중간 역할을 할때도 조심스러운 면을 발견했다.
웬만큼 사람을 궤뚫어 본다고 자부했는데 신빨이 떨어지긴 한 모양이다.
" 다시 봤네요, 제비쯤 봤는데.. "
" 헐~ "
" 처음엔 안 믿었죠, 희정이가 괜찮다고 했어도.. "
사람끼리 부디치는데 어찌 좋은일만 있으며, 굴곡없는 인생 또한 없으리라.
이 나이 먹어 희정이를 만났는데, 그녀의 절개를 따진다는건 말이 안된다.
따지고 보면 여자의 만남을 악세사리 쯤으로 알던 놈이다.
인연이란건 과거를 무시하고, 온전히 지금의 모습이 진실일게다.
" 왜, 그런 놈이 많아서? "
" 순정이 많은 애라.. "
" 나도 순정파라우. "
" 삼우제는 지나야 만날거에요. "
" 내가 전문가네요. "
" 그러네 참. "
희정이의 친구 인아가 편해지기 시작한다.
아직도 희정이 역시 나를 모르는데 하물며 인아가 내 속을 볼수는 없는 일이다.
부단히 내 속을 보여준다면 이슬비에 옷 젖듯 천천히 알게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