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 35
" 오셨어요? "
" 그래, 힘들겠다. "
홀로 한잔하는 중에 동훈이가 다가 와 앉는다.
양복입은 모습이 제법 의젓해 보인다.
졸지에 아빠를 잃었기로 짠한 마음이 인다.
" 아뇨. "
" .................... "
" 엄마가 힘들거에요. "
다소 의아스럽긴 했으나 중심을 잡으려는 녀석의 뚝심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어른스레 보이려 한들 그 구색이 맞춰지겠는가.
" 삼촌한테 한잔 따라 줄래? "
" 네. "
녀석의 의젓함이 맘에 들어 한잔 따라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로 그 이전에 먼저 잔을 받았다.
" 회사 잘 다니지. "
" ..들어간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
아직은 애들인지라 길에다 버려 버릴 명색을 따지는게지만 흐뭇한 마음이다.
그만큼 사회에 대한 때가 덜 묻었을테고, 그에 따른 의리는 훌륭하지 싶다.
" 동훈아. "
" 네. "
" 걱정하지 마. 삼촌이 힘은 없는데 거기 사장은 너 못 짤러. "
" ..네. "
" 한잔 받아라, 술 맛은 알지?
" 네. "
" 아빠를 보내는 술이라 생각하고 마셔라. "
몸을 돌려 나름의 예를 취하는게지만 녀석의 마음속이 들여다 보인다.
숨기고자 하지만 아빠를 보낸 뒤 견뎌야 하는 슬픔까지 갈무리하고자 애를 쓴다.
" 손님이 없는것 같은데 발인까지 있으마. "
" ..네, 감사합니다. "
" 손님 오셨어.. "
인아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용호선배가 들어 온다.
" 그만 가 봐라, 삼촌 친구야. "
" ..네. "
" 왔수.. "
" 그래 왔다, 이 도사야. "
이 시간에 나왔으면 바가지 꽤나 긁혔을텐데 미꾸라지 탕으로 보신했지 싶다.
" 헐~ 은혜를 모르고.. "
" 은혜라니.. "
혼자서 영안실에 있으려니 막막했는데 술친구가 왔으니 어찌 아니 기쁠손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배나마 놀려야 덜 심심할게다.
" 보고 싶었잖어, 인아씨가.. "
" 내가 언제.. "
" 다 보여, 형수한테 물어 볼까? "
" 이런 지랄.. "
나이야 4살이나 많지만 순수한 사람인지라 항상 당하면서도 노여움이 없다.
사회생활 하기에 으뜸으로 치는 성실함까지 갖췄고, 남의 아픈 사정은 외면하지 못 한다.
" 나와도 돼?
용호선배를 본 인아가 조용히 다가와 곁에 앉는다.
영안실이지만 나란히 앉은 둘의 모습이 제법 어울린다.
언제까지 인연이 이어질 줄 모르지만 두고 볼 일이다.
" 이 인간이 불러 내잖어. "
" 에라이~ 인아씨 있다니까 헐레벌떡이두만.. "
" 이 엉터리 도사가 누명을.. "
" 인아씨가 있어 싫다는 얘기네. "
" ..내가 언제.. "
" 여기 아무도 없어, 인아씨가 발인때까지 고생할텐데.. "
워낙 발이 넓어 동문회 회장직까지 맡았기로 상가집 도우미 부르는건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다.
그것 역시 제 돈 안쓰고 코를 푸는것처럼 생색이나 내면 될 것이다.
" 그걸 왜 이제사 얘기하누. "
" 여기 와서 나도 안게야. "
" 내일 발인이래요, 어제 발견했기에 내일 아침 나간대요.
용호선배 옆에서 술을 따라주며 챙기던 인아가 보충 설명을 한다.
폰을 쥐어 든 선배가 밖으로 나가는 폼이 영안 절차를 도와 줄 인력을 찾지 싶다.
인아 핑계를 댄 게지만 도와주는 사람없는 희정이에게 힘이 되길 바래 본다.
" 용호씨 직업이 뭔지.. "
" 딱 보면 모르나, 도둑놈이지. "
" 네? "
" 없는 사람 등은 안 쳐요, 창고 두둑한 곳만 털지. "
돈이 급한 영세업자에게 도움을 주지만 비싼 고리를 뜯는 사람이다.
물론 법의 테두리에서 하는게지만 인아에게 알려 줄 얘기는 아니다.
스스로 알게 되던지, 선배한테 들어야 할 것이다.
" 그만 갈란다, 계속 있으려면 싸우나 다녀 오든가.. "
" 가요, 난 괜찮으니까. "
새벽 1시가 넘었기로 선배는 귀가를 해야 하지만, 희정이를 두고 내 편안함을 찾는다는건 말이 안 된다.
저렇듯 기운없는 모습으로 영안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어찌 혼자 피곤을 풀겠다고 뒤를 보이겠는가.
" 인아씨가 바래다 주지. "
" 다녀올께요. "
그네들이 나간 후 잠시 몸 둘 곳을 찾았으나 워낙 영안실이 좁아 마땅치 않다.
초점없는 눈으로 바닥만 바라보는 희정이 때문이라도 밤을 새워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