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30

바라쿠다 2016. 12. 25. 23:17

" 언제쯤 될까요. "

" 모르지 나도, 한번 찾아가려구. "

" 걍 맡기라니까, 도사님인데.. "

정애가 도장을 받아야 하는 세사람의 서류를 가져 왔었고, 그 중 두사람이 인감을 찍어 줬다.

어찌되는지 묻길래 핑계거리를 찾는 연숙이까지 셋이 만난 폭이다.

그 지역 부동산업자가 두사람의 도장을 받아줬지만 나머지 한사람의 거주지가 인천으로 돼 있기에 일간 직접 움직여야지

싶다.

" 나는.. "

" 내일 통화하세나. "

정애가 화장실 간 틈에 제 남편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한다.

일요일에 CCTV를 수거해 집에서 화면을 봤고, 며칠간의 바람피는 장면을 하나 더 녹화했다.

연숙이의 일이야 대충 끝난 폭이지만, 나머지 일처리는 그녀가 마무리해야 하는데 워낙 믿을수가 없어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

" 출장비 내놔. "

" 출장비? "

" 이 시주 대머리 까지겠네, 심부름 값은 줘야지. "

" ..얼마나.. "

" 넉넉하게 드려 얘. "

그 땅을 팔아먹기 위한 부동산업자가 공짜로 해 준 셈이지만, 그녀들에게는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런 일이 애매한 것은 이처럼 정해진 수고비라는게 없기 때문이다.

" 계좌번호 알려 주세요. "

" 메시지함세. "

연숙이야 정애랑 내가 엮여질까 봐 핸폰번호를 숨기고자 한 게지만 그깟 번호 따는게 무슨 대수련가.

그나저나 우리 희정이는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그래서 둘이 놀러간거야? "

" 더 있었지. "

" 근데 왜 둘이 찍은거 뿐이야. "

" 나 사진 안좋아 하잖어. "

미리 얘기하고 다녀 왔지만 어디서 막걸리를 쳐 마셨는지 주사를 떤다.

애들이 들을까 봐 소리 죽여 얘기하고 싶은데, 이 웬수 눈알이 돌아간 듯 초점이 없다.

" 이런 쓰발~ 거짓부렁을.. "

" 정신차려 인간아, 그리 술마시면 뒈져. "

술만 마시면 정신줄을 놓는 인간이 방안에 있는 주전자까지 던지며 행패를 부린다.

" 좃까~ 고양이 쥐 생각하고 자빠졌네, 걸레같은 년이.. "

" 이 씨발놈이 어디다 대고 욕찌거리야. "

" 왜 못하냐 개년아, 내꺼 내가 챙기는데.. "

" 꽈~당~ "

닫혀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큰 놈이 들어 선다.

" 에이~ 쓰벌. 뭐 잘했다고 지랄이야~ "

" ..................... "

" 우장~창~ "

방안에 있는 티비를 들어서는 유리창에 냅다 던져 버린다.

유리창이 부서져 방바닥에 그 흉한 조각들이 널린다.

" 다 뒤지자구, 좆같은 세상 왜 살어~ "

" ................... "

" 씨바~ 좃까네~ "

길길이 날뛰는 녀석때문에 남편과 나는 멍하게 바라볼 뿐이다.

 

한바탕의 소란이 끝난 뒤 집을 나선 희정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남편의 주사가 끝난 후에는 그 뒤치닥거리를 했더랬다.

그 이유는 한가지 뿐, 애들에게 그 꼴을 보여주기 싫어서다.

하지만 오늘은 그 잔해를 그냥 놔 두고는 집을 나섰다.

견디기 힘들어도 참아 내고자 했지만 이제는 그런 삶조차 더 이상 바라보는게 싫다.

이런 기분으로 일하기 싫기에 인아에게 술한잔 사라고 했다.

" 엄마~ "

" ................... "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 큰 녀석이 골목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 미안해. "

" 됐다. "

" 네? "

" 시원하다구. "

온갖 시련을 운명이겠더니 살아 온 지난 날들이지만 오히혀 큰 놈의 무지막지한 행패에 속이 후련하기까지 하다.

능력없는 부모에게서 태어 난 아들 녀석들도 똑같이 허접한 인생을 걸어가리라는 우려마저 있었다.

참지 못할 울분을 터뜨려 낸 녀석의 행동에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희정이다.

" ..그 삼촌 좋은 분 같애. "

" ................... "

" 속 상할때 위로해 달라고 해요. "

" ................... "

" 먼저 갈께. "

휘적휘적 걸어가는 뒷모습에 다 키워냈다는 뿌듯함이 인다.

비참한 인생이지만 허송 세월만은 아니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