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공간

[스크랩] [김행 칼럼] 달걀이 뭐라고... 난 울었다

바라쿠다 2014. 8. 6. 08:32

조선일보 2014.08.05

[김행 칼럼]

달걀이 뭐라고... 난 울었다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사진
김행(원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신문 가운데 끼여 배달된 대형 마트 전단. 달걀이 30개, 한 판에 3980원이다. 싸다. 순간 오래된 일이 생각나 웃음이 터졌다. 30년 전쯤, 어린 나이(?)에 콩깍지가 씌어 결혼하자마자 시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친정 엄마는 시집살이라면 무조건 결사반대하는 분이셨다. 당신이 '고초 당초'보다 더 매운 시집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철없이 들어간 시댁은 낯설고 물설었다. 시어머니는 아침마다 달걀부침을 했다. 접시에 담아 항상 남편 쪽으로 바짝 놓았다. 달걀부침을 좋아하지도 않고 남편 앞까지 팔 길게 뻗어 먹기도 민망해 잘 먹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식사. 갑자기 설움이 북받쳤다. 방으로 들어가 엄마에게 전화했다. "나 시집와서 계란도 못 먹어." "그러게 시집가지 말랬지? 남편이 큰아들도 아닌데 웬 시집살이냐?"며 난리 났다. "전세방 구할 돈이 없어 시댁으로 들어왔다"고 했다간 부지깽이 들고 뛰어오실 양반이다. 야단만 실컷 맞고 울다 설핏 잠이 들었다.

전화가 왔다. "엄마다. 집 앞 공중전화다. 계란 사다 놨으니 실컷 먹어라." 대문 밖에 나가 보니 달걀이 무려 열 판이나 빨간 나일론 끈에 묶여 있다. 달걀 사 들고 서울 잠실역에서 인천 제물포역까지 지하철 타고 한달음에 오신 것. 시어머니 어려워서 대문 앞에 놓고 그대로 서울로 가셨다. 이 얘기 지금까지 시어머니와 남편도 모르는 30년 된 비밀이다. 산책 나갔다가 동네 가게에서 사왔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사일언 칼럼 일러스트

살다 보니 시어머니는 '귀한 음식은 남자부터'가 체화되신 분이다. 당신 입엔 귀한 음식 마다하신다. 스무 살에 시집와 무려 74년을 그렇게 사셨다. 1922년생이시니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고 또 아들은 얼마나 귀했었나. 지금도 우리 집은 고기나 생선을 구우면 시어머니와 남편이 수도 없이 접시를 밀고 당긴다. 서로 양보하느라고.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면 친정 엄마도 귀한 음식은 아들 먼저다. 친정 올케 보기가 미안하다. 그렇게 살아오신 어머니들,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할까?



출처 :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05/2014080500099.html?csmain
출처 : 오늘, 아름다운 날
글쓴이 : 이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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