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17

바라쿠다 2012. 1. 10. 10:04

가슴위를 누르는 답답함에 눈을 뜨고 보니, 성미가 내 가슴에 턱을 괴고 내려다 본다.

" 자기는 좋겠다..  소영이가 학교에 간다고 아빠한테 인사한대.호호. "

소영이가 들어오더니 지 엄마가 보고 있는데도 내 뺨에 뽀뽀를 한다.     알몸인지라 이불자락만 쥐고 있었다.

" 아빠~ 막내딸이 학교에 간다는데 내다 보지도 않네.. "

" 야, 임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빠는 홀랑 벗고 있는데..  다 큰 처녀가 창피한 것도 모르냐.. "

" 피~ 어때.. 아빤데, 히히.. "

붙임성이 있어 새록새록 이쁘게 정이 쌓인다.      어찌 보면 지 엄마보다도 애교가 넘친다.

학교에 늦었는지 현관에서 신을 신는 소리부터, 바쁘게 현관문을 닫더니 계단을 뛰어가는 소리까지 들린다.

담임이 지 엄마를 호출을 해서 못 볼 꼴을 당할뻔 했을 어제와는, 천양지차로 밝아진 것에 내 마음이 다 후련하다.

저녁에 선생을 만나 나눌 대화를 머리속에 담아 두려는데 성미가 들어와 아침을 먹잔다.

" 너는 어째 딸보다 애교가 없냐,  소영이한테 좀 배워라, 배워.. "

" 그까짓 뽀뽀가 뭐라구..  어제밤에도 기분좋게 해 줬구만.. "

" 그건 아니지, 섹스하고 뽀뽀는 맛 자체가 틀린거야.. "

" 치~ 대신에 소영이가 해 주잖어. "

" 야, 임마.  소영이는 딸이니까 재롱을 떠는게고, 니가 뽀뽀하는것 하고는 틀리다니까.. "

" 알았어, 앞으로 해줄께..  에이그~ 욕심은.호호.. "

성미가 아침을 먹은후에 가게문을 연다고 집을 나가자, 홀로 빈둥거리다가 할수없이 현장을 들렸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목수와 전기업자에게 음료수를 사다주고 나오는데 입구에서 미진이와 마주쳤다.

" 어~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냐. "      

" 혹시나 했어,  그러고 보면 내가 신끼가 있나보다.호호.. "

" 아침부터 흰소리는..  볼일이 있어 나온게 아니고 나를 보러 나왔다는거야? "

" 응, 아침에 운동 다녀와서 궁금하더라구..  그냥 와 보고 싶었어.. "

" 일단, 어디로 들어가자.. "

전철역 앞 2 층에 커피 전문점이 보여 들어서니 시간이 일러선지 한가하다.     창가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 너무해,  아무리 그렇다고 잘 있냐구 물어봐 주지도 못하냐..  서운해 하는 수정이년이 이해가 되더라.. "

지 남편과 이혼을 하고는 나랑 어찌 해 보자고 했지만, 이미 물건너 간 얘기가 아니던가.

" 그럼, 나보러 어쩌라구..   나도 맘이 안좋아, 차라리 안 보는게 맘이 편하지. "

" 진짜로 날 좋아 하긴 한거야?    이럴때 보면 오빠를 알수가 없어. "

이럴때가 제일 힘들다.       아차피 인연이 아니라면 굳이 만나서 서로간에 가슴 아플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내가 타고난 제비도 아니지만, 여자의 몸뚱아리만 탐을 낸들 무슨 복을 받겠다고 인연의 끈을 이어간단 말인가.

" 복잡한건 싫다, 너를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내가 그랬잖어, 그 전에 너한테 마음이 있었다고..  하지만 남편이

이혼을 안 해준다는데 달리 방법도 없고.. "

" 수정이년하고 결혼할건 아니잖어.. "

" 그거야 그렇지, 내가 못나서 그런거지만 저렇게 돈까지 싸들고 다니는데 냉정하게 뿌리치기도 어렵고.. "

" 나도 할래, 기회를 줘.   오빠가 수정이하고 결혼할게 아니라면, 나만 뒤에서 오빠를 바라만 본다는것도 형평성에

어긋나..     혹시 알어..  나중에라도 남편이 이혼을 해줄지..   그때 까지는 수정이랑 똑같이 대해주면 되잖어. "

이래서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잘 생긴 여자만 보면 껄떡이는 내 거시기가 문제다.

" 그러다 수정이라도 눈치채면 어쩌려구,  나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니네 둘은 오랜 친구잖어. "

" 친구는 무슨 얼어죽을..   그 년하고 친구하기 싫은지 오래됐어, 옛날에도 내 남자를 가로채 갔던 년인데 뭐땜에

오빠까지 양보해야 되냐구..   내가 그 년보다 못한게 뭔데.. "

정말로 골치가 아프게 생겼다.    당분간은 단란주점을 챙겨줘야 할텐데, 미진이와 수정이를 계속 볼수밖에 없으니

대략 난감한 지경에 빠지게 생긴것이다.

" 난 모르겠다,  니들이 어떻게 나오든 시끄러워 지면 떠나 버릴테니까.. "

" 조심만 하면 눈치는 못 챌거야, 오빠만 잘 하면 돼. "

팔자가 여자한테 팔려다니는 사주인지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아무 생각없이 살수있는 팔자는 못되지 싶다. 

 

미진이를 그냥 보내기도 뭣해서 먼저번에 갔었던 칼국수 집에 앉아, 대충 점심을 때우고는 국밥집으로 향했다.

일찍 학교에서 돌아온 소영이가 홀에서 지 엄마일을 도와주고 있다가 나를 반긴다.

" 아빠~ 다녀 오셨어요, 히히..  오늘 우리 담샘 몇시에 만날거야? "

" 모르겠다.  끝나는대로 아빠 후배가 핸폰하기로 했으니까.. "

" 만나서 뭐 먹을건데,  난 바다가재가 먹고 싶더라.히히.. "

" 조년이 입만 살아 가지고선..  지금 우리가 그 비싼걸 어떻게 먹는다구.. "      

아직은 애들이라 오늘 자리가 자기땜에 만들어진 것에 대한 미안함은 이미 없는듯 하다.

" 우리 막내딸이 바다가재를 좋아하는구나,후후..   그건 이번 일요일에 엄마랑 같이 가서 먹자..  오늘은 어른들끼리

만나는 자리라 너는 못 데려가.. "

" 근데, 우리샘이 아빠가 옛날에 은행 지점장이었냐구 물어보길래 걍 그렇다고 했어. "

아마도 후배 녀석이 소영이 담임에게 미주알고주알 떠들었지 싶다.     그때 핸폰이 울려 받아보니 근처 부동산이다.

" 소영아~ 아빠랑 이사갈 집이나 보러가자..   내 핸폰에 니 번호를 2번으로 저장해 주고.. "

소영이에게 내 핸폰을 맡기고 앞서 걸었다.     주위에 있는 음식점에 손님들이 있는지 기웃거리게 된다.

부동산에 들려 그쪽에서 보여주는 집을 3군데나 소영이와 둘러봤다.     연립주택 2채와 아파트를 봤는데, 그중에서

아파트가 맘에 들긴 하지만 월세를 한달에 150씩이나 내야 한단다.

소영이 눈치도 아파트를 좋아하는듯 싶고, 당분간은 가지고 있는 돈으로 한 2년간은 버티지 싶다.

국밥 장사만으로도 벌충은 되지 싶어, 성미의 의견도 묻지 않고 가계약을 해 버렸다.

국밥집에 들러 소영이가 지엄마에게 아파트 계약건을 얘기 했을텐데도, 평시 같았으면 바가지를 긁어 대면서 난리를

칠 성미가 의외로 차분하게 일에만 열중이다.

단골 손님이라고 나이가 지긋한 영감들이 오시자, 맛을 보라며 엉덩이 찜을 내 줬는데 맛있다며 칭찬들이 대단하다.

 

후배가 나를 편하게 한답시고 집 근처인 반포 삼거리 회집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나 보다.

" 바쁜데 불러내서 미안하네, 집 식구와 애들은 잘 지내지.. "

소영이 담임과 예약한 일식집 작은방에 앉아 수인사를 했다.      담임이 소영이 엄마 또래인듯 한데, 긴 생머리에 키가

늘씬해서 정장 치마가 잘 어울린다.      첫인상이 뭐랄까, 약간은 운동선수처럼 터프한 느낌이다. 

" 딸아이 담임이신 배선생과는 연수원 동기죠,  마침 아는 처지라 설명하기가 쉬웠어요. "

학교 동창도 아니고 연수원 동기라고 친분을 강조 한다.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친하지 않을 사람도 없을것이다.

" 우리 애 때문에 걱정을 끼쳐 미안합니다. "      

일단은 담임이 소영이를 어찌 보는지 알고 싶었다.

" 웬걸요, 애들이 크다보면 왕왕 있는 일인걸요..    그리고 소영이가 눈치가 빨라서 말썽이 될 일을 만드는 애는 아닌데,

그날은 일진이 나뻤다고 봐야죠.   다행히 일이 크게 번진것도 아니고.. "

그때 주문했던 회가 들어오면서 잠시 말이 끊겼다.      회접시를 나르고 서빙을 하는 여자에게 만원짜리를 건네줬다.

" 회를 좋아하는 분들이니까 맛있는것 좀 부탁해요. "

예전에 직장에 다닐때도 팁을 줘 본적은 있지만, 이런식의 접대는 오랜만이다.

" 금방 일어나야 해요,  처가집에서 내 생일이라고 다들 오셔서..   형님과 약속이 없었다면 벌써 가야 했을텐데.. "

후배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날 태세다.      하기사 안면을 텄으니 더 이상 자리를 지켜주지 않아도 되지싶다.

" 이번에 신세진걸로 하지,  바쁠텐데 얼른 들어가라구.. "

" 네, 형님.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형님과도 한잔해야 하는데..   배선생은 천천히 드시고 가세요,  워낙에 재밌는

형님이라 음식이 코로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후후.. "     

후배녀석이 벽에 걸어 두었던 바바리를 챙겨들고 나간다.

" 우리때와 달리 요즘 애들을 가르치자면 어려운 것도 많으시죠? "

" 다르긴 하지만 똑같은 애들인데요, 뭐.   순수한건 마찬가진것 같애요. "

따라주는 소주를 단숨에 마시고도 표정이 변하지 않는걸로 봐선 제법 주량이 있어 보인다.

" 그래도 신문에 보면 별스런 일도 많길래.. "

" 서로가 마음만 통하면 별 문제 될건 없다고 봐요,  오히려 어른들이 이상한 시각으로 보는게 더 위험할지도 모르고.. "

말하는건 거침이 없고 바른 사람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러운 느낌이 난다.

" 예전에는 선생님이 화장실도 안 가는줄 알았다니까요. "

소영이의 담임이라 되도록이면 띄워줘서 친해지고 싶었다.

" 김선생이 그러시던데..   자유인이라고,호호.. "       

후배에게 무슨말을 전해 들었는지, 나를 보며 웃는게 무슨 뜻이 있지 싶다.

" 나름대로 성격이 맺고 끊는건 있어도 자유인까지야.. "

" 죄송해요.호호..  김선생이 그러는데 예전에 장난끼가 심했다고 하대요..    좋아하는 여자의 집안에서 어른들이 못

만나게 한다고, 밤에 분뇨차를 불러 여자의 집 마당에다 배설물을 쏟는 바람에, 그 주위 사람들이 냄새 때문에 피난까지

갔다고.호호.. "

어릴적 후배이다 보니 별난 얘기까지 지껄이는 바람에, 소영이 담임한테는 첫인상이 유별나게 기억되게 생겼다.

" 김선생이 해서는 안될 얘기까지 한 모양이네요.후후.. "

" 아니예요, 전 정말 재밌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호호..   그 이후로 여자분과 어찌 되셨는지 궁금해요. "

" 어찌 되긴요, 며칠후에 만났는데 그 여자의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길래 말 없이 도망갔죠, 뭐. "

" 어머나,호호.. "       

무슨 재미난 얘기라고 한번 터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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